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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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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콘사 RGM 영웅의 진격에서
연재소설

<장편 이민 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22회

안동일 작

/ “왜 돈 때문인가? 자네 연봉 정도 라면 돈에 궁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는 하지요, 그래도 월급장이야 맨날 그 타령이죠.”
“흠, 꿈이 있다면 돈은 따르게 돼, 어떤 꿈을 갖느냐가 문제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이 미국이란 사회가 너무 꽉짜여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미국만이 자네의 무대라고 생각하는가?”
윌리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강숙정은 왕대인에게서 떨어져 좌중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왕노인도 그녀와 구면인듯 손을 가볍게 잡은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청년 하나가 줄없는 마이크를 그녀에게 건냈고 그녀는 살며시 왕노인의 손을 놓고는 테이블에서는 약간 떨어진 무대로 올라갔다.
대 스타 답게 그녀는 시종 웃으면서 전혀 쑥스러움 같은 것은 나타내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고 이쪽을 향하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도 매혹적으로 보였다. 아마 노래라도 한 곡조 부르려나 싶었다. 뒷쪽의 밴드와 그녀에게 조명이 비쳐져 있었다.
그녀가 빠른 광동어로 말하기 시작 했다. 윌리는 표준어인 맨더린이라면 그런대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 이었지만 광동어는 간신히 인사말이나 하는 정도 였다.
왕노사란 말이 나오고 샹강이란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홍콩에서도 뵙기 어려운 왕대인을 이곳 뉴욕에 까지 와서 생신을 축하라게 되어 기쁘다, 재주는 없지만 오늘 밤 즐거운 시간으로 모시고 싶다는 얘기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의 말 끝에 제임스 흥 오빠라는 단어가 튀어 나와 윌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마 이런 모임에 오게 해 준 제임스 흥 오빠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 말을 하면서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 가운데 한명을 쳐다봤다. 그 사내가 손을 살짝 들어 아는 체를 했다. 윌리와는 조금 떨어져 앉아 있는 큰키에 날카롭게 생긴 사내였다. 사내가 바로 제임스 흥 이었던 것이다. 카니의 옛 애인, 푹칭 파의 보스 제임스 흥이 바로 그 사내였던 것이다.
윌리는 아무래도 긴장을 해야 했다. 왜 이가영은 제임스도 이자리에 와 있다는 말을 안했을까 또 한번 원망 스러웠다.
제임스 흥이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는 영어로 말했다.
“우리 강소저가 마침 영화 촬영차 뉴욕에 왔길래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노사님의 생일을 축하하고 가라고 했습니다. 아시다 시피 강소저가 노래를 잘합니다. 요즘 동맹서룡 주제가가 홍콩이며 대륙에서 인기 차트 1위 아닙니까?”
윌리는 이가영을 쳐다 봤다. 윌리의 눈과 마주치자 가영은 찡긋 하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그만이었다.사람들이 요란하게 박수를 쳤고 강숙정이 노래를 시작 했다.
최근 들어 차이나 타운에 올때 마다 들었던 그 노래였다. 거리의 카세트 장사 손수레에서도 나이트 클럽에서도 하다못해 이발소를 지나치면서도 들었던 그 노래였다.
‘안개가 짙어지는 밤 떠난 사랑을 생각 하면서 부두를 걷는다. 위스키는 가슴을 찌른다. 어째서 사람은 죽어야 하는가. 죽은 애인을 그리워 하는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지만 멜로디는 경쾌했다. 그런데 가사 가운데 재미 있는 부분은 ’인간이 영리한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되기까지 일만년이 걸렸다는데 그 일만년을 기다려서라도 나는 사랑을 만나고 싶다‘는 끝 부분이었다.
강숙정은 ‘죽음과 사랑’을 부른 뒤에도 좌중의 성화에 못이겨 한곡을 더 불렀다. 그녀가 신인 시절 임청하와 함께 나왔던 동방불패의 주제곡을 불렀다.
박수가 요란하게 터졌다.
노래를 마친 강숙정이 왕대인 옆으로 왔다. 왕노인은 박수를 치던 손을 그대로 벌려 그녀를 맞았다. 강숙정이 왕대인의 목을 끌어 안고 또 다시 볼에 키스를 퍼 부었다. 왕노인은 싫지 않은 기색으로 어깨를 흔들었다. 인사를 마치고도 그녀는 왕노사 옆에 그대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윌리와 눈이 마주치자 생끗하고 웃었다.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윌리가 자리를 내주려고 일어서려 하자 가영의 백부가 손을 들어 말리면서 왕노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큰 자리로 옮기시죠, 젊은 사람들도 들어오게 하고…”
“그렇게 하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왕노인의 팔을 숙정이 부축 했고, 일행은 홀 중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앙에는 이미 극장식의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다. 한 테이블에 다섯명쯤 앉게 되어 있었고 스테이지 쪽을 향해 반원 형태로 놓여 있는 의자는 푹신한 소파 스타일이었다. 왕대인이 가운데 테이블에 앉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아까의 식탁에서의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적당한 테이블을 차지 하기 시작했다. 윌리가 엉거주춤 왕노인 곁에 서있는데 제임스 흥이 그쪽으로 다가 왔다. 숙정도 있고 하니 자신이 왕노인 옆에 앉으려 하는 기세였다. 윌리가 가영이 있는 테이블로 가려하자 왕대인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윌리는 나하고 여기 앉지.”
제임스 흥의 얼굴에 묘한 경련이 이는 것을 윌리는 놓치지 않았다.
“잠깐 인사들좀 하고 오겠습니다.”
이왕 일어선 김이라 윌리가 다정하게 나란히 앉은 왕노인과 강숙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윌리는 가영쪽으로 가면서 눈짓을 했고 가영이 일어났다.
윌리가 가영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 짖굳은 친구야, 영감 생일이라고 얘기나 해주지.”
“노인 한테야 자네가 가장 큰 선물일텐데 뭐…”
함께 주변의 몇 테이블을 돌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대개들 윌리와 악수를 나누며 왼손으로 손등을 툭툭 치는 등의 반갑다는 제스쳐들을 아끼지 않았으나 제임스 흥은 떱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특별한 내색이나 말은 없었다. 테이블을 도는 사이 웨이터 들에 의해 술이 날라져 왔고 한결 같이 쭉 빠진 미인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와 테이블에 두명 꼴로 앉았다.
윌리가 다시 왕노인의 테이블로 갔을때 왕노인은 강숙정에게 윌리를 소개했다.
“뉴욕에 있는 내 손자야. 자네 예일 대학이라고 알지? 거기 나온 일류 변호사지.”
윌리도 노인이 껄껄 웃으며 농담 처럼 던지는 말에 놀라야 했다.손자라니…그만큼 노인은 윌리에게 정을 주고 있었다.
윌리는 강숙정이 내미는 손을 가볍게 잡고 미소만 던졌다.숙정의 손 역시 작고 부두러웠다.
본격적인 여흥이 시작 됐다.
가수가 무대에 올라와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왕노사가 자신보다 한뼘 쯤 키가큰 숙정을 안고 도는 모습이 우스꽝 스러웠다. 그러나 노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윌리 자네 춤 잘추나? 난 요즘에야 춤을 배웠는데, 어땠어? 내 스탭.”
자리에 돌아온 노인이 윌리와 숙정을 번갈아 보면서 유쾌한 듯 물었다. 노인의 이마에는 땀방울 까지 맺혀 있었다.
노인의 권유에 따라 윌리도 숙정과 춤을 췄다. 별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숙정의 영어가 짧았기에 맨더린을 섞어 가며 간신히 몇마디 나눴을 뿐인데도 숙정은 윌리에게 대단한 호감을 느끼는지 바짝 안겨 오는 기색이 역력했다. 숙정은 구김살 없는 밝은 여자 였다.
자리에 돌아 왔을때 시끄러운 가운데도 노인은 윌리에게 계속 이야기를 시켜왔다.
“아까 하던 애기 계속인데 빌리, 자네도 아직 꿈을 가지고 있겠지?”
“네, 그런데 점점 꿈이 작아져 가고 있습니다.”
어쩐지 왕노인 에게 라면 응석 처럼 하소연을 해도 될것 같았다.
“왜 돈 때문인가? 자네 연봉 정도 라면 돈에 궁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는 하지요, 그래도 월급장이야 맨날 그 타령이죠.”
“흠, 꿈이 있다면 돈은 따르게 돼, 어떤 꿈을 갖느냐가 문제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이 미국이란 사회가 너무 꽉짜여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미국만이 자네의 무대라고 생각하는가?”
윌리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면 미국에서 조차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더 큰 곳을 쳐다 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카지노나 다니고 그러는가? 자네 겜블을 그렇게 잘한다면서? 지난번에 2십만불이나 땄다고.”
윌리는 깜짝 놀라야 했다. 이가영에게도 액수 까지는 얘기 않했는데…
“노사께서 그걸 어떻게?”
“왜 늙은 스승이 모르는게 있는것 같은가?”
“그땐 운이 좋았던 거죠, 다음날 도로 다 잃었습니다.”
“그래 그처럼 돈이란 들어왔다가도 나가는거야, 특히 그런 돈들은..”
그때 누군가와 춤을 추던 숙정이 자리로 돌아 오는 바람에 대화가 잠시 중단 돼야 했다.
왕노사는 윌리와 숙정앞에 있는 유리잔에 코르바이저 코냑을 가득 따르면서 한마디 했다.
“오늘 모처럼 유쾌한 날인데 한잔씩 쭉 들라고, 자네들 같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까 나도 젊어 지는것 같아, 내 꿈은 이제 이룬거야, 안그런가? 빌리.”
“아직 정정 하신데요. 뭐 저는 오늘 처음 뵈면서 예순살 정도 밖에 안잡수신줄 알았습니다. 일흔 셋이시라니, 깜작 놀랐습니다.”
“이친구 그런 찬사도 할 줄 아는 군.”
“손자 라면서 오늘 처음 뵈었어요?”
강숙정이 놀란 눈으로 윌리를 쳐다봤다.
“숨겨둔 손자니까 그렇지, 자네도 숨겨놓은 애인 있잖아?”
왕노사가 우정 작은 눈을 부라리며 숙정에게 들이 댔다.
“대인은, 제가 어디 숨겨놓은 애인 있습니까? 큰일 날 소리 마세요.”
“그러면 내가 애인하나 소개해도 되겠군.”
노인이 윌리를 빤히 쳐다 보면서 그렇게 말하는 통에 윌리가 당황해야 했다.
“그래도 애인이야 제가 골라야죠.”
“그런가?”
노인이 껄걸 웃었고 두 젊은 남녀도 따라 웃었다.
왕대인은 강숙정의 데뷔 작품이며 주요 성공작의 제작비를 댄 제작사의 실제 오너 였기에 강숙정은 각별히 노인을 떠 받들고 있다고 했다. 좌중에서 노래를 한곡 더 하라는 요청이 빗발 쳤기에 숙정이 스테이지로 올라 가야 했다.
“어떤가? 카니하고는 전혀 다르지?”
그녀의 뒷모습을 눈짓으로 가리키면서 왕노인이 윌리에게 말했다.
“네?”
윌리는 정말 깜짝 놀라야 했다. 노인이 카니까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카니는 요즘 내가 데리고 있네, 그아이가 그래도 장사수완이 보통이 아니야.”
“그랬군요.”
노인은 윌리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또 제임스가 카니를 함부로 하지 못했고 그리 쉽게 홍콩으로 돌아가는 선에서 일이 해결 될 수 있었던 것도 카니의 뒤에 왕노인과 같은 든든한 후견인이 있었기 때문이구나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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