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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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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이민 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21회

안동일 작

/ “이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말일세.”
“요즘이야 돈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좀더 세련된 대답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공연히 군자연 한다는게 더 속 들여다 보일것 같아 그즈음 자신의 심경을 떠다니는 생각을 그대로 말해 버렸다.
그랬더니 왕노사는 빙긋이 웃었다./

 

상하이 클럽 앞에는 이가영이 직접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오는군.”
“사람 시키겠다고 하고선 어떻게 직접 나와 있지?”
“그럼 누가 오시는데…”
“말도 말게, 빠져 나오느라 진땀을 뺐지. 클라이언트 대할 때는 시간이 돈이라고 하면서도 자기들끼리는 어찌나 꾸물대는지.. ”
“그러니까 때려치라고 그러 잖아.”
“회사 때려치면 자네가 책임 질텐가?”
“그럼 책임지고 말고.”
“나더러 돈 심부름이나 하게 하려고?”
“왜 이러시지. 잘난 에스콰이어 께서…”
“잘난것 하나 없네…”
윌리는 가영을 따라 모트가를 걸었다. 지나던 청년들이 가영에게 깍듯이 목례를 했다. 가영은 그들에게 꼭 손을 들어 아는체를 했다.
“왕대인은 와 계신가?”
“응, 다들 모여 있는데, 자네한데 미리 해 둘 말이 있어서 내가 나온거야.”
“뭔데?”
“오늘 낮 부터 영감하고 같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확실 한가봐, 뉴욕에 크게 투자를 하겠다는거야, 그래서 오늘 영감께서 자네를 떠 볼텐데 마음 준비 단단히 하라구…”
“뭘 어떻게 준비 하라는 건지, 모르겠는데.그리고 영감이 왜 나를 떠본단 말인가?”
“왜 이래, 엄청난 기회야, 자네에 대해선 우리쪽에서 진작 부터 말을 해 놨고 영감도 기대가 큰 모양인데 뭘 하라고 해도 하겠다고 하라고, 알았어?”
“어떻게 뭔지도 모르고 한다고 그래?”
“뭘해도 합법적 사업을 할테니까, 걱정을 말고…”
“아무튼 만나보기나 하자구.”
윌리가 이가영을 따라 들어선 곳은 허스터가에 있는 중국 식당이었다. 희상봉(喜相逢)대주루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최고급 식당이었다. 1층 로비에는 검은 양복을 빼입은 청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가영과 윌리가 들어서자 모두들 정중하게 인사를 보냈다. 식당은 4층 건물 모두를 쓰고 있었는데 모임은 4층에서 벌어 지고 있었다.
4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웨이터들이며 검은 양복의 청년들이 또 고개를 60도 가까이 숙이는 인사를 보내왔다. 넓은 홀이 비워져 있었고 한쪽 창가 쪽에 여나문 명이 큰 타원형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미국인들도 몇명 눈에 띄었다.
문가에서 가장 먼 주빈석에 앉아 있는 땅딸한 체구에 안경을 낀 동그란 얼굴의 6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왕상문이라고 짐작 됐다. 벌써 몇잔을 마셨는지 얼굴이 붉으레 했다.
그는 옆에 앉은 브루스네 조직의 보스이자 그의 백부인 이전구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영이 그쪽으로 윌리를 안내 했다.
“대인, 이 친구가 말씀드린 빌리 정 입니다.”
노인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어 왔다. 자리에 앉은 채 였다.
“빌리, 근사하지? 희상봉에서 이렇게 즐겁게 만나니까.”
윌리는 깜짝 놀라야 했다. 노인의 영어 억양이며 목소리가 오늘 새벽 꿈에서 들은 노인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 했기 때문이었다. 생김새는 꿈에본 노인 보다 다소 왜소해 보이고 눈매에서 날카로운 인상이 풍겼지만 윌리는 이 노인이 바로 꿈에 나타난 노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야 했다. 어쩌면 ‘하우 나이스’하고 던지는 첫 마디 까지도 똑같단 말인가.노인도 브루스처럼 윌리를 빌리라 부르고 있었다.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대인.”
노인의 손은 의외로 작고 부드러웠다. 윌리가 듣기에 부두의 막노동에서 시작해서 빌리온의 재산을 일군 신화적 인물이라고 했는데 손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단 말인가 싶었다.
“이리 앉지.”
노인은 비어 있는 자신의 왼편 자리를 가리켰다.
윌리는 자리에 앉으며 좌석에 있는 면면들에게 목례를 했다. 몇몇은 아는 얼굴 이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가영은 자신의 자리가 저쪽이었는지 그쪽으로 걸어가 막 자리에 들어서고 있었다.
“바로 제 형제와 다름없는 빌리 정 변호사입니다. 저 친구는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어린시절에 한국에서 미국에 왔는데 대통령은 아직 못됐고 대통령 메달만 세개 탄 친구입니다. ”
가영이 모두에게 윌리를 소개 했다. 누군가 박수를 치자 모두 따라 쳤다. 윌리는 공연히 쑥스러워 졌다.
“늦게 온것도 미안한데 이렇게 환영해 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앞으로는 이런 자리가 있을때 가장 먼저 와서 앉아 있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빌리는 SSM 법률회사에서 날리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대통령이 되기에는 어려울 것 같으니까 일찍 나올 수 있겠지요.”
브루스가 한마디 더 보탰고 사람들이 또 박수를 쳤다.
윌리가 자리에 앉자 웨이트레스가 윌리만을 위한 접시들을 날라왔다. 먼저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이미 끝냈을 상어 지느러미 스푸며 냉채류등이 작은 사발과 접시에 가지런히 담겨져 있었다. 파티를 주선했다는 가영의 배려 일 터였다.
왕대인이 윌리에게 술을 권했다. 백자에 담겨져 있는 특제 마오타이주 였다.
“한번에 비우는 거야.”
왕대인이 술을 따르면서 친근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윌리는 잔을 눈높이 까지 들어올려 중국식으로 하례를 한 뒤 그의 요구대로 한입에 털어 넣었다. 정말 좋은 술이었다. 같은 마오타이 일텐데 이렇게 다를까 싶을 정도로 예전에 먹은 그것들과는 달랐다. 고량의 역한 냄새는 전혀 없고 은은한 향기가 돌았기에 넘기기 쉬웠지만 가슴으로 시작해서 짜르르한 술기운이 금새 전신으로 감미롭게 퍼졌다.
음식은 산해진미가 끝도 없이 날라져 오고 있었다.
로마시대의 황제들이 전 세계의 온갓 요리를 늘어 놓고 조금씩 맛만 보아도 테이블의 반을 돌지 못해, 고통없이 먹은 음식을 토해내는 약초를 만들어낸 의원을 항시 대동하고 있었다는 문화사 시간의 객담이 생각 날 정도 였다.
몇차례의 건배가 있었고 음식은 계속 날라져 왔다.
왕대인이 윌리에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 노인은 윌리의 잔에 아직 술이 남아 있는데도 잔을 채우곤 했다.
“빌리, 이세상을 움직이는게 무엇이라고 생각 하는가?”
“이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라니요? 노사.”
윌리가 반문했다. 정신을 알딸딸하게 하는 감미로운 노주 마오타이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슨 의도로 물어 오는지 전혀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사람들은 왕상문을 대인 이라고도 호칭했고 또 높은 스승이란 뜻의 라오쓰(老師)라고도 불렀기에 윌리도 그 호칭을 한번 사용했다. 물론 뒤에 붙힌 경칭으로 반문을 하는 결례를 커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말일세.”
“요즘이야 돈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좀더 세련된 대답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공연히 군자연 한다는게 더 속 들여다 보일것 같아 그즈음 자신의 심경을 떠다니는 생각을 그대로 말해 버렸다.
그랬더니 왕노사는 빙긋이 웃었다.
“아주 솔직하군, 솔직해. 그런데 말이야 나는 물론 돈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꿈이 이세상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꿈이라니요? 대인.”
윌리는 갑자기 간밤의 꿈을 다시 생각하곤 깜짝 놀라 또 반문해야 했다.
“사나이들의 꿈 말이야, 꿈 , 자신이 뭔가 이루겠다는 그 꿈들이 이세상을 움직이게 하고 있지 않은가? 꿈이 없다고 해봐 세상이 움직여 지겠는가?”
노인이 말하는 꿈은 윌리가 간밤에 꾼 그런 꿈은 아니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아니 실은 윌리 자신도 늘 그렇게 생각 해 왔고 그런 꿈을 가지고 살아 왔었다. 그런데 왜 경박스럽게 돈이라고 대답 했을까 후회 스러워 졌다. 노인은 이미 그런 윌리의 마음을 읽고 있는것 같았다.
“돈이란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있겠지, 그런데 돈이 사나이 들의 꿈의 전부가 돼서는 서글프지 않은가?”
노인은 서글프다는 멋진 표현을 사용했다.
“그거야 노사와 같이 돈이 많은 분들에게야 그렇겠지요, 현실적으로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윌리는 내친김이다 싶어 고집스럽게 대들었다.
“내가 돈이 많다고?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돈은 내 꿈의 전부가 아니었어?”
“그럼 노사의 꿈은 무엇입니까?”
“내 꿈? 젊음이야, 젊음, 자네와 같은 젊음.”
노인은 파안 대소를 하면서 웃었다.

윌리가 뭐라고 한마디 더 하려고 했을때 바로 그때 입구 쪽이 왁짜 지껄 해지는 바람에 시선이 그리로 쏠려야 했기에 말을 멈춰야 했다. 정장의 청년 세사람이 사람키 만한 케이크를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케이크가 왕노인 앞에 멈췄고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해피 버스데이 투유를 불렀다. 언제 들어와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스테이지에서는 악단이 요란하게 반주를 했다. 오늘이 바로 왕노사의 생일 이었던 모양이다.

윌리도 엉거주춤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가영에게 핀잔의 눈짓을 보내며 종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생일이라는 것 전혀 모르고 왔기에 선물도 준비 않했고 축하의 말도 건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영은 뭐가 그리 재미 있는지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그러나 정작 재미 있는 일은 다음 순간 벌어 졌다. 왕노사가 큰 초7개 작은초 3개로 구성돼 있는 케익 위의 촛불을 까치걸음을 하면서 불어 껐을때 갑자기 케익 밑 부분이 갈라 지면서 눈부신 미녀 한명이 튀어 나왔던 것이다. 붉은천에 금박이 수놓아 있는 중국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검은 긴 머리의 여인 이었다. 왕노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박수를 쳤고 여인은 왕노인의 목을 끼어 안고 뺨에 키스를 퍼부어 댔다.
“아니 강숙정이 아니야”
웅성대는 가운데 누군가 한마디 했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는데 케익 속에서 나온 여인이 바로 강숙정이었다. 강숙정은 요즘 홍콩에서 가장 잘나가는 여배우 였다. 윌리도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비데오를 통해 몇편 본적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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