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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콘사 RGM '영웅의 진격'에서
연재소설

<연재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6회

 …아버지는 자신의 말이 조금은 지나쳤다 싶은지 계면쩍은 표정으로 끝을 얼버무리고 있었지만 어린 윌리에게 준 상처는 대단한 것이었다. 주위의 미국인들이 재미 있다는 듯이 웃어 대고 있었다.  윌리는 갑자기 아버지가 다른 사람 처럼 느껴 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재순, 미국 이름 윌리엄 정, 윌리는 윌리엄의 애칭으로 친한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윌리엄의 애칭에는 윌리 말고도 빌리 또는 빌이 있었지만 윌리엄 스스로가 윌리를 고집했기에 사람들은 기꺼이 그를 윌리라고 불렀다. 재순이 미국에 와서 읽은 첫 동화책에 나오는 멋진 주인공 돌고래의 이름이 윌리였다. 소년은 1960년대 중반, 반도의 남쪽, 호랑이로 치면 꼬리에 해당하는 경북 포항에서 태어 났다.
그의 아버지 정 태훈이 그 무렵 막 발주한 제철회사의 기간시설 준비 요원으로 초빙돼 10여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귀국한 무렵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MIT 출신 공학 박사였다.
서울서도 최고의 명문 고교, 명문 대학을 거쳐 미국 유학 까지 마친 정 태훈은 그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젊은 엘리트였다. 그는 아들의 탄생을 너무도 기뻐 했다.
아버지는 아이의 이름을 재순이라 지었다.
여자 이름 같기도 하고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어머니는 어리둥절 했으나 크게 반대 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원래 그랬다. 아버지의 의견을 한번도 꺽지 못했다. 아니 아버지가 엄마의 말을 도통 듣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 하리라.
웬지 그의 아버지는 당시의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만을 지니고 었었다. 그래서 인지 아들 만큼은 최고의 사내로 만들어 내겠다고 다짐 했던 모양으로 윌리에게 각별한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신의 명석한 머리 하나 만으로 그 가난을 이겨낸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생활에 제대로 적응 하지 못했다. 여러가지를 미국과 비교해 말도 안된다며 푸념을 털어 놓기 일쑤 였고 또 밖에서 얻은 짜증과 스트레스를 집에 돌아와 부인인 최씨에게 퍼붇곤 했었다.
오랜 기간 해외 생활을 했던 미국 박사 출신 아버지가 주위의 질시며 국영 기업체였던 직장의 관료적 권모술수 등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작은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최대 불만은 무식하다는 것이었다.아버지와는 달리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탄한 성장기를 거쳐 서울의 적당한 여자 대학을 나왔음에도 윌리 아버지는 언제나 그녀를 무시했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언사를 서슴치 않았다.
윌리는 아버지의 바람 대로 두뇌 명석하고 똑똑한 소년으로 자랐다. 국민학교에 입학 해서 부터 줄곳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또 운동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기에 아버지의 재순에 대한 애정과 자랑은 대단 했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 부터 호시 탐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방도를 궁리했던 모양이다. 도저히 한국이 못마땅해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윌리에게 어려서 부터 영어를 가르쳤고 윌리가 잠깐 서울의 중학교에 다녔을 때는 영어 선생이 윌리를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다 온 학생으로 여겼을 정도 였다.
마침내 윌리의 아버지는 근사한 조건의 미국행 취업 비자를 얻어 냈고 그는 달랑 윌리의 손만을 잡고 미국으로 건너 갔다.
따지고 보면 윌리의 아버지가 미국행을 더 서둔 원인도 윌리에게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단체기합을 받고 엉덩이에 멍이 들어 집으로 오던날 윌리는 아버지에게 학교 못 다니겠다고 푸념했고 아버지는 냉큼 그러면 빨리 미국으로 떠나자고 했던 것이다.
윌리는 아버지와 너무도 죽이 잘 맞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를 따르지 않았고 아버지와 마찬 가지로 엄마를 무시하는 버릇이 어려서 부터 싹트고 있었기에 아버지하고만 미국으로 간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 하지도 개의치도 않았다. 그 무렵 엄마에게는 윌리가 누구에게도 말 못한 비밀스런 사연이 있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얼마 안있어 윌리는 새엄마를 맞았다. 도착 하던날 공항에까지 마중 나왔던 유학생 출신 박사 아줌마였다.
윌리는 한국의 생모와 비교해 새엄마가 훨씬 자신들과 어울린다는 생각 까지 했을 정도 였다.

미국에 와서 처음부터 윌리는 펄펄 날았다. 고기가 물을 만난것 같았다. 그런 윌리를 가장 자랑 스럽게 생각하면서 어깨를 으쓱 했던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음은 물론이다. 또 윌리가 처음 발을 디딘 미 동부의 전형적 중산층 동네 였던 리틀 넥이 다른 곳에 비해 리버럴하며 화기 애애한 동네 였던 것도 윌리의 미국생활을 승승 장구의 국면으로 만들었던 무시못할 요인 이었다.
그토록 죽이 잘맞고 사이가 좋았던 국무장관과 아버지의 사이에 약간의 이상이 생기게 된것은 윌리가 진학할 고등학교를 놓고 생긴 의견 차 때문이었다.
윌리는 공립학교인 시내의 스타이븐센트 고교에 진학 하기를 희망 했고 아버지는 사립 기숙사 학교가 어떠냐고 제안해 왔다. 윌리는 하루종일 학교에 얽매어 살아야 하는 규율 엄한 기숙사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붕어빵 구어내듯 규격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가 권하는 사립 기숙사 학교에 가면 아이비 리그 대학 진학이 거의 보장 되기는 했다. 공립 스타이븐센트는 뉴욕시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상위 20 퍼센트 안에 들어야 아이비리그를 바라 볼 수 있고 나머지 80퍼센트는 다른 곳을 노크해야 했다. 상대적으로 학생수가 적은 사립 기숙사 학교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반대 였다. 그러나 그 학교는 엄청난 학비와 엄청난 규율이 학부모와 학생들의 기를 질리게 하는 곳이 었다. 스타이븐센트가 과학 교육에 중점을 두는 학교 라는 것도 아버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윌리는 스타이븐센트 전형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냈고 또 아버지가 권하는 기숙사 학교의 입학허가도 받아 냈기에 선택 만이 남아 있었는데 윌리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말을 안듣고 공립학교에 가겠다고 우겼다.
일주일 동안 아버지와 말을 하지 않는 엄청난 투쟁 끝에 아버지의 고집을 꺽을 수 있었다.
그 즈음 윌리네 집에서 있었던 일도 그의 일종의 반항심을 부채질 했고 그의 결정에 한 몫 했었다.
윌리의 아버지는 뉴욕 근교 롱아일랜드에 있는 군수산업 연구업체에 일하고 있었다. 그 즈음 아버지는 어느 부서의 장으로 승진을 했는데 이를 기념할겸 자신의 생일 파티를 집에서 열기로 했다. 며칠전 부터 가구를 새로 들여 놓고 집단장을 하는등 부산을 떨어야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그만큼 회사의 중역들이며 아버지 회사와 관련있는 국방성 고위 관리들을 초대한 파티에 신경을 썼던 것이다. 윌리는 웬지 아버지가 너무 하는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파티 당일 동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근사한 차들이 여나문대 몰려 왔고 잘 차려 입은 미국 사람들이 윌리네 집으로 속속 밀려 들어 왔다.
정작 파티는 싱겁기 짝이 없었다. 식당에서 열리는 파티와 별반 다를게 없었기 때문이다. 윌리의 어린 소견으로도 음식 가운데 한두개 쯤은 한국식을 준비 했으면 좋았겠다 싶었는데도 아버지는 근처 유명한 양식당의 출장 서비스를 받았기에 음식은 양식 일색이었다.
어른들은 환하게 웃으며 칵테일 잔을 들고 집안을 돌아 다니며 자기들 끼리 떠들고 있었다.
윌리의 방 침대가 어른들의 코트를 놓는 곳이 돼야 했기에 윌리는 이리저리 쫒겨 다니며 어른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아버지는 윌리가 그동안 타낸 대통령 메달이며 우등생 트로피들을 그들에게 자랑 했지만 어른들은 한번 씩 웃었을 뿐 시쿤둥했다.
아버지는 회사 사장이라는 키큰 남자와 그의 부인, 그리고 국방성의 무슨 차관보라는 사람 옆에 딱 붙어서 계속 웃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표시 하지 않아 윌리가 오히려 민망 했다.
윌리는 이층 계단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의 얘기를 우연히 듣고 충격을 받아야 했다.
“저럴 거면 왜 우리를 불렀지.”
게속 사장 옆에 붙어 있는 윌리 아버지를 보며 한 사내가 말했다.
“놔둬, 그럴줄 몰랐어? 테드가 누군데…”
“테드는 역시 양키가 다 됐어.”
테드는 아버지의 미국 이름 이었다.
“난 수시(초밥)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이게 뭐야.”
한 어른이 자신의 접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 아저씨들은 동양인이었다.
윌리는 아버지 옆으로 갔다.
아버지는 사장이며 주위 사람들과 한국의 정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한창 코리아게이트 사건이라 해서 한국 정부의 미국 관리며 의회 의원들에 대한 뇌물 사건이 메스컴의 각광을 받고 있는 때 였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 보다 한술 더 떠 한국 정부와 지도자를 공격하고 있었다.
“원래 무식한 군인들이 정치를 하니 제대로 될리가 있습니까? 이번에 들어난 일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죠, 계속 파헤쳐야 합니다.그동안 미국이 너무 물렀어요, 서울의 인권 상황을 보십시요 그게 어디 현대 국가입니까? 체육관 선거에서 99퍼센트의 찬성이라니 말이 됩니까? 미국이 더 강경하게 나서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풀어 주면 기어오르는 습성이 있죠. 그런걸 일본 사람들은 엽전 근성이라고 까지 했었죠.”
“엽전 이라니?”
“엽전을 만들때 두들겨야 하거든요, 그리고 한국 엽전은 꼭 끈으로 묶어 놔야 달아 나지 않거든요…”
아버지는 자신의 말이 조금은 지나쳤다 싶은지 계면쩍은 표정으로 끝을 얼버무리고 있었지만 어린 윌리에게 준 상처는 대단한 것이었다. 주위의 미국인들이 재미 있다는 듯이 웃어 대고 있었다.
윌리는 갑자기 아버지가 다른 사람 처럼 느껴 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추선생이라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윌리는 당시 당돌하게도 아버지를 사랑하기는 하되 본받지는 말자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확고하게 내렸다.
추선생은 윌리네 학교 사회 선생이었다. 그는 동양의 미덕에 대해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어른이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수업시간에 무슨 일이 있으면 동양의 예를 자주 들곤 했다. 온화한 목소리로 중국의 역사, 거기에 나타난 위인들의 일화를 들려 줄때면 소년들은 중국의 산하를 그리며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그럴때 윌리는 자신도 동양에서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곤 했었다.
한번은 추선생이 대붕의 얘기를 해준적이 있었다. 윌리가 대통령 메달을 타 가지고 돌아와 신나게 자랑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장자라고 중국의 위대한 철학자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대붕이라는 큰 새가 있었는데 몸집이 아주 큰 이 새는 여간해서 움직이지를 않았죠, 그러니 다른 날렵한 새들이 항상 이새를 놀려 대며 까불고 있었습니다. 날지도 못하는 병신이라고… 그러던 어느날 마른 하늘이었는데도 숲속에는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바람이 일었습니다. 바로 대붕이 날개를 편 것입니다. 날개를 편 대붕은 한번의 날개짓으로 구만리를 날았지요.작은 새들은 대붕의 그림자만 보았을 뿐 입니다.”
그러면서 추선생은 윌리의 얼굴을 골똘히 쳐다 보는 것이었다.
그때 윌리는 자신의 얼굴이 빨개 지고 있음을 느껴야 했다.
“대붕의 뜻은 참새가 알 수 없지요.”
자신이 참새인가 대붕인가 하는 부끄러움 속에 한번 날개를 펴는데 3년이 걸리지만 날개짓을 했다 하면 한번에 구만리를 나는 대붕의 모습은 윌리의 가슴 속에 새겨지게 되었다.   (계속)

  • 삽화: 온라인 롤게임 영웅전설 포스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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