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5
또 벨이 울렸다. 이번에도 뉴욕의 윤호였다.
윤호는 흥분된 목소리로 목소리로 빌리를 바꾸라고 했다.
‘뭐? 그거 찾았다고? 언제 연락 왔어?’
‘그래?’
‘오늘이 무슨 날은 날인가 본데, 연속으로 좋은일이 터지는 구나.’
빌리의 표정은 아까 보다 더 큰 흥분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임선생이 오늘 오후라도 직접 서울로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고, 잘했다. 호텔로 와야지.’
‘정말 잘됐다. 오교수님이 무척 좋아 하시겠는데…’
‘그래 물건을 봐야겠지만, 우리가 보면 뭐 아냐?’
‘알았어, 그래 신나 죽겠다. 이젠 들어가서 자, 계수씨 한테 안부 전하고, 참 세라한테도 전화 해줘라, 현성이 녀석 그 얘기 안하나 옆에서 노려보고 있다, 내일 아침에 출근 할때 크리스 한테 들려서 꽃이라도 놔주고 와라, 이소식 전할겸’
빌리가 헤리를 쳐다보며 씩 웃고는 수화기를 다시 차경웅에게 넘겼다.
“좋은일이 연속해서 터집니다. 어제 오교수님하고 저녁 먹으면서 했던 얘기 있지 않습니까?”
“네, 호태왕비 탁본에 관련된 연구고서 말씀이시죠?”
“네 그래요, 그걸 도꾜에서 입수 했답니다.”
“그래? 어떻게?”
헤리가 물어왔다.
“윤호도 자세히는 못 들었다는데 다께미야의 손자를 통해 구했다나봐, 오늘이라도 임선생이 서울로 가지고 들어오겠데.”
“그거 참 잘됐구나.”
잠시후 빌리가 무슨 생각에 잠겨 입을 다물자 다들 다시 조용해 졌지만 차안에는 흥겨운 분위기가 넘쳐 있었다.
‘오늘 같은밤 비는 오는데 잠은 안오고 그대 그대 생각나.’
별로 흥겨운 가사도 아니었지만 이런 가사까지도 흥겹게 들렸다.
몇시간 뒤 빌리는 광활하게 펼쳐진 태안반도 간척지에 모습을 나타냈다. 시대건설의 젊은 사장이며 이사등과 함께 였다. 태안반도 방조제 지구라 불리우는 이 간척지는 시대건설이 그룹의 명예를 걸고 10여년전 부터 개발한 땅이었다. 서해안의 지도를 바꿨다고 까지 말해지는 대 간척사업으로 해안을 막아 평야를 만들어 내는 공사로 지난 10년 동안 조성된 농토가 무려 5천만평에 이르렀다. 한때 시대그룹이 정부쪽과 사이가 않좋았을때 이 사업도 외압을 받아야 했기에 그 진척이 주춤 했지만 몇년전부터 다시 간척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 됐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상징하는 이 건설은 국민들의 관심과 각광을 받으며 이 일대가 일약 관광 명소로 까지 부상했다.
전망대에 앞에는 현장 소장등이 빌리등을 맞이 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빌리가 차에서 내리자 나와 있던 여직원 하나가 다소곳한 자세로 빌리에게 다가서 꽃다발을 건넸다.주로 인근에 야생하는 들꽃으로 만든 꽃다발 이었다.
“아니 뭐 이렇게 까지…”
그러나 꽃다발을 받는 빌리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흘렀다.
“촌스럽게 사람들도 참…”
오히려 시대건설의 젊은 사장 윤경열이 현장소장을 쳐다보며 어이 없다는 듯이 작은 소리로 한마디 했다.
“귀한 손님 오신다길래…”
중년의 소장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주 좋습니다. 특히 향기가 좋군요.오랜만에 받아 보는 이런 대접입니다.”
빌리는 정말로 꽃다발이 마음에 드는지 전망대에 오르면서도 게속 꽃으로 코를 가져가 향기를 맡았다.
“헤리 너도 한번 맡아 봐, 아주 향기가 좋은데…”
빌리가 헤리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말했다.
“어렸을땐 이런 꽃다발 많이 받았었는데… 참 오랫만이다.”
“한 20년 가까이 이런거 모르고 산것 같은데…”
헤리도 꽃으로 코를 가져가며 한마디 했다.
잠시후 빌리등의 눈앞에 광활한 벌판이 펼쳐졌다. 여간해서는 한반도 땅에서 볼 수 없는 지평선이 이곳에서는 펼쳐져 있었다. 빌리는 이 넓은 땅을 만들어 낸 기상이 그대로 만주로 이어져야 한다는 각오를 다시한번 온몸으로 새기고 있었다.
광활한 벌판에서 불어오는 흙냄새 섞인 바람이 빌리의 손에 들고 있는 들꽃의 향기를 잔잔하게 빌리의 코쪽으로 뿜어 올리고 있었다.
먼 기억의 향기였고 그러면서도 신선하고 싱그런 향기였다.
4.
1975년 초 여름, 꽃향기가 흩 날리는 뉴욕시 동쪽 끝 동네인 리틀 넥서는 동리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새로 지은 동리회관 개관을 기념하고 동리의 경사를 축하하는 잔치였다. 꼬마들 까지도 저마다 예쁜 정장을 차려 입고 나와 미국기며 동네 마스코트 기를 들고 길가에 도열해 있었고오색 풍선이 새로 지어진 회관 마당을 뒤덮고 있었다.
잔치는 동네 어귀에서 출발한 퍼레이드로 시작 됐다. 고등학교 브라스 밴드가 행진곡을 연주하며 퍼레이드 행렬의 맨 앞에 섰고 이지역 출신 의회 의원들이며 시 공무원 마을 유지들이 싱글벙글 대며 걷고 있었다.
그뒤로 캐딜락 무개차가 따르고 있었다. 무개차에는 화환을 목에 건 동양소년 한명과 그의 부모인 듯한 동양인 부부가 타고 있었다.
소년이 탄 차가 지날 때 동리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올렸다.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오색 종이 가루를 던지기도 했다. 소년이 탄 차 앞에는 소년이 미국 대통령 제랄드 포드와 함께 나란히 서 있는 대형 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의 소년은 목에 큼지막한 메달을 걸고 있었다.
동네를 한바퀴 도는 것으로 퍼레이드가 끝났고 공회당 입구에 늘어져 있는 오색 테이프를 자르는 것으로 기념식이 시작 됐다.
테이프가 끊기자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며 공회당 안으로 뛰어 들어 갔고 안에 차려져 있는 다과 테이블 앞에 서서 즐겁게 음식들을 먹었다.
자유로운 파티가 계속되고 있을때 턱시도를 차려입은 사회자가 마이크앞에 서서 잠깐 주목해 줄것을 요청 했다.
커뮤니티 보드 회장이 간단한 인사말을 했고, 지역 출신 연방 하원 의원과 보로장이 축사를 했다. 모두들 경쾌하고 짧은 몇마디로 인사를 대신 했다. 이어 소년이 소개 됐다.
“이자리에서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소개할 자랑스런 우리 동네 소년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파티의 주인공 윌리엄 정 군 입니다.”
홍안의 동양소년이 아버지에게 등을 떠밀려 연단으로 나갔다. 환호가 울렸다.
“전국 중고생 과학 경시대회에서 대통령상을 탄 윌리엄 정군을 자랑스럽게 소개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이 윌리는 지난 3월에 수학 경시 대회에서도 대통령상을 탔었지요. 4개월 사이에 백악관에 두번이나 초대를 받은 이런 천재 소년이 우리 리틀넥에 있다는 것은 동리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또다시 환호가 울렸다.
사회자가 윌리엄에게 연단에 설 것을 요청했고 윌리는 계면쩍은 듯한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동네에 이런 멋진 마을 회관이 서게 된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지난해에 미국에 왔습니다. 태평양 바다건너 있는 작은 나라 한국에서 왔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그리고 자유의 나라라고…그랬는데 미국와서 보니까 집도 크고 차도 크고 사람들도 다리도 길고 모두 모두 크더군요 그래서 나는 작은 다리로 막 뛰었지요, 그랬더니 백악관에 까지 몇차례 달려 가게 된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배꼽을 쥐고 웃었다.
자신을 얻은 윌리가 얘기를 게속 했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습니다. 열심히 뛰어가기만 하면 정말 백악관 까지 갈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같이 외국에서 온 이민자는 백악관에는 손님으로 밖에 갈 수 없다는군요, 그래서 속상합니다.”
사람들이 또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때 커뮤니티 보드 의장 멬킨지영감이 나섰다. 그는 자기 자리에서 선 채 큰 소리로 말했다.
“윌리 걱정하지마, 백악관 주인이 되는 길이 있으니까, 국무 장관이 되는 거야, 국무장관은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데다 대통령 승계권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윌리는 적당히 인사말을 맺고 연단에서 내려 왔고 흥겨운 파티가 계속 됐다. 애들은 집에서는 어른들이 마시지 못하게 하는 콜라를 연방 마셔대며 즐거워 했고 어른들은 계속 펀치 보울을 비워 댔다.
어둑 어둑 해져서야 파티가 끝났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윌리의 기분은 어느때 보다도 좋았다. 아버지도 너무나 흥겨워 했고 엄마도 윌리의 등을 계속 두들겼다.
그날 이후 동리 사람들은 윌리를 국무장관이라고 불렀다. (게속)
삽화 : 웹게임 영웅의 전설 포스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