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제 3회
그날 오후 평소보다 30분 늦은 7시30분에 윤전기를 빠져나온 시대일보 초판은 완전히 윌리엄 정의 기사로 도배했다고 할 정도로 그에 관한 기사로 뒤덮혀 있었다.
1면에는 탑승구를 빠져 나오는 윌리엄의 사진과 함께 도착 기사가 3단 크기로 실렸고 사회면에는 대문짝 만한 그의 인생 스토리가 실렸으며 4면 정치 가십 난에도 7면 경제계단신 난에도 그의 입국에 관한 설왕설래가 소개되어 있었다.
1면에 실린 윌리엄의 사진은 썩 잘된 사진이었다. 습관적으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손을 들었는데 마치 인사를 하는 제스쳐로 여겨지는 자연스러운 포즈로 그려졌고 선그라스며 옷차림, 그리고 옆에 붙어선 헤롤드의 차림새와 표정이 마치 영화 포스터를 보는 듯 했다.
아무래도 독자들의 관심은 이 국제적 인물의 일생을 입지전적으로 기술한 박재순의 기명 박스기사에 쏠렸다. 이날 저녁 시대일보는 지하철이며 가판대에서 스포츠신문보다 더 많이 팔렸다.
재순은 귀빈실에서 나와 입국장 사열대를 빠져나오는 윌리엄에 따라 붙어 몇가지 얘기를 빼내 근사한 인물 기사를 엮어 냈던 것이다. 사회면 한 귀퉁이에 짤막하게 윌리엄의 귀국을 보도했던 다른 신문들은 시대일보의 초판을 보고 부랴부랴 갱판을 해서 윌리엄의 이야기를 키웠지만 시대일보의 기사를 따를 수 없었다. 윌리엄이 들어올 때 입국장에는 몇명의 타사 기자들이 있었지만 시대일보만큼 멋진 사진을 찍은 신문이 없었고 재순 만큼 짬지게 취재를 해낸 기자가 없었다.
당초 편집국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국장은 처음부터 크게 키울 생각 이었지만 데스크의 부장들이 아직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확인도 안된 상태에서 신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그렇게 크게 다룰 수 있겠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나 윌리엄 정의 한국이름이 정재순이고 포항 태생이며 12살때 한국을 떠났으며 그가 예일대 법대를 나온 변호사 출신의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라는 것에 대해 확인했고 빌리라는 애칭으로 더 알려져 있다는 박재순의 연락이 오면서 방향은 급진전 되면서 시대일보는 윌리엄 정을 금의환향한 영웅으로 만들어 냈다.
박재순은 어둠이 짙게 깔린 서소문에서 경찰청으로 향하는 길을 동료기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재순은 밤에 이길을 걸을때면 도시의 골짜기란 말을 떠올리곤 했다. 낮에는 그처럼 붐비는 거리가 해 떨어 지면 그처럼 한산할 수 없었고 고가도로 밑의 침침한 가로등이 그런 스산함을 더하게 했다. 시내에 배달되는 조간 20판 갱판의 기사까지 마감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재순에게는 너무도 급작스레 몰아치듯 뛰어 다닌 정신없는 하루였다. 저녁도 제대로 못먹어 허기도 밀려 왔지만 기분은 날듯이 상쾌 했다.
“박선배,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 ”
박철이 물었다. 정치부에 있는 박철은 재순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입사년도가 늦어 깍듯이 선배로 부르고 있다. 군입대 때문이었다.
“누구 말이야?”
“누구긴 누구야 빌리 정이란 사람 말이지.”
“호텔에 있겠지”
“호텔까지 따라 갔다면서?”
“어째 말이 이상하다.방문 앞에 까지만 갔었다니까.”
“어떻게 그사람 순순히 취재에 응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박선배 아무래도 미인계 쓴것 같아.”
“쓸데 없는 소리 하시네, 내 팔자에 미인계?”
“왜 박선배가 어때서. 박선배야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쓰레기 야적장에 핀 들장미 아니요?”
“문자 쓰시네, 그사람 자기 본명하고 내 이름하고 같은게 주효했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대뜸 검은 세단에 동승 시켜줘서 술술 자신 얘기 해준단 말이야?”
“하긴 나도 순간적으로 당황했었어,밑져야 본전이라고 나도 시내에 가야하니까 함께 타도 되겠냐고 했더니 순순히 그러라고 하잖아.”
재순은 공항에서 시내 까지 윌리엄이 탄 차를 동승 했었다.
윌리엄이 귀빈실에서 나왔을때 입국장에는 다른사의 기자들도 몇명 있었다. 재순이 윌리엄의 뒤를 따라가며 다른 기자들과 섞여 이런 저런 질문을 할때 그는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않겠냐며 미소만 지을뿐 이었다.
공항에는 검은 정장의 건장한 청년들이 캐딜락 세단을 대기 시켜 놓고 윌리엄을 기다리고 있었다. 윌리엄 엔터프라이즈 서울 지사 역할을 맡고 있는 무역회사에서 나왔다는 청년들이었다.
차에 오르려는 윌리엄에게 재순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동승을 요구 하자 윌리엄은 씩 웃으며 헤롤드를 쳐다본 뒤 “그럽시다” 했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재순은 윌리엄이 정확히 26년 만에 고국땅을 밟게 되었다는것, 이번의 방문은 몇가지 사업적인 일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용무가 우선 이라는 것, 1주일 쯤 머물다 중국으로 간다는 것, 윌리엄 엔터프라이즈가 중국 요동과 사할린에 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윌리엄의 본명과 고향을 알아 낸게 최고의 수확이었다. 윌리엄 엔터프라이즈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탈라리아 패션의 모기업이라는 것이 확인 되는 순간, 기사거리는 무궁무진해 졌다.
엄청나게 막혔던 양화대교 남단의 진입로의 교통체증도 재순의 취재에 한몫을 했다.
차가 출발하자 재순이 입을 열기전에 윌리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대일보라면 시대그룹에서 하는 신문사죠?”
“네, 어떻게 잘아시네요.”
“뉴욕에 나와있는 시대건설 분들 몇분 만나본 적이 있죠.”
“그쪽 분들은 잘 몰라요. 시대 건설쪽 하고 함께 하시는일 있으신가 보죠?”
“아직은 뭐, 그래 나에 대해서 알고 싶은게 뭡니까?”
윌리엄이 고개를 돌려 재순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재순은 윌리엄의 날카로운 눈매 속에 의외로 부드러운 전류 같은게 흐르고 있다고 느꼈다.
“모두다요, 하나도 알려져 있는게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하나도 알려져 있는게 없는 사람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뭡니까?”
“알려져 있는게 하나도 없지는 않아요. 정선생님이 뉴욕의 동양계 마피아의 대부같은 존재로 몇 차례 재판까지 받으셨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요.”
“마피아? 후훗”
재순도 마피아 라는 단어를 부지불식간에 쓰면서도 아차 싶었는데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겠지만 윌리엄도 유독 그 단에에 반응을 표시 했다.
“미스 박이라고 했던가요? 이름은 확실히 기억나는데, 재순이죠?”
“네, 기억력이 참 좋으시군요? 맞아요. 박재순 입니다.”
재순은 그때서야 큰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윌리엄에게 건넸다.
“내 이름도 재순입니다. 정 재순, 아주 오랜만에 소리내 보기는 하지만…”
윌리엄이 명함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말했다.
“어머나,그러세요?”
재순은 호들갑에 가까운 반가운 테를 냈다.
윌리엄과의 대화는 이렇게 술술 풀려 나갔다. 자동차가 시내로 접어 들면서 윌리엄은 가끔씩 창밖을 내다 보면서 서울 거리의 달라진 모습을 살펴 보는 기색을 보였지만 재순의 묻는 말에는 순순하게 대답해 주곤 했다.
일행을 태운 차가 호텔 앞에 멎었을 때도 재순은 윌리엄의 옆에 바짝 붙어 연방 질문을 던져 댔으며 아예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붙어 방 문앞 까지 갔었다. 헤롤드는 노골적으로 귀찮아 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윌리엄은 그렇지 않았다.
재순이 엘레베이터에 함께 탈때까지 무심한 표정으로 묻는 말에 때꾸 하곤 했던 윌리엄은 방 문 앞에 서서야 “자 그러면 다음 기회에”하며 미소를 짓더니 방으로 들어 갔다.
참 깜빡 잊어 버릴 뻔 한 일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윌리엄과 함게 귀국한 헤롤드도 화려한 경력의 인물임이 거의 확실하다는 이야기다. 헤롤드의 사진이 초판에 인쇄되어 나가자 체육부의 고참 기자 하나가 국장실로 뛰어와 그가 전설적인 한인 교포 프로골퍼 헤리 오 라고 알려 왔던 것이다.
8년전 플로리다서 열린 U.S 오픈 대회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아깝게 무너져 3위에 그쳐 한국인들을 안타깝게 했던 바로 그 헤리 오가 틀림없다는 것 이었다. 체육부 변차장은 그 대회 이후 헨리 오가 골프계를 떠나 행방이 묘연했는데 그가 윌리엄의 조직원이 됐으며 이번에 함께 귀국 한것이 틀림없다고 당시의 사진 까지 들고와 틀림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박재순이 알아본 바에도 윌리엄과 함께 입국한 헤롤드가 그 헤리일 가능성이 높았다. 두사람 모두 출신 고등학교가 뉴욕의 스타이븐센트 고교였고 졸업년도도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마감이 끝나 신문이 나와 버린 뒤 였고 어차피 윌리엄이 주인공 이었기에 헤리에 대한 취재는 다음날, 체육부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4회에 계속)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소설은 필자가 지난 1996년에 발표했던 소설이다. 거의 3 데케이드, 26년 전의 이야기인 셈이다. 처음에는 대폭 수정하려 했으나
당시의 우리 미국 이민 사회를 그대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소폭 수정과 추후 보충을 하기로 하고 연재를 시작 하기로 결정했다.
발표 했을 당시 한국내 언론에도 ‘우리민족의 해외 이민사를 그린 주목할만한 작품’이라고 소개 된 바있다.
96년 7월 8일자 매일경제 신문 문단소식란에는 ‘재미 소설가 안동일씨가 우리민족의 해외이민사를 다룬 장편소설 “영웅의약속” (전 2권 미래사 간)을 출간했다’고 전하고 있다. 미국에서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교포사업가와 그의 주변에 있는 홍콩 중국 러시아의 한인교포들을 중심으로 숨겨진 이민역사의 명암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소개했다.
물론 이 소설 역시 지어낸 이야기, 허구다. 소설이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것 처럼 묘사하는 것이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 났을때 이를 정리한것이 좋은 ‘다큐’ 아닌가. 이 소설에는 당시 우리 동포들이 많이 종사했던 봉제업이라 불리웠던 가멘트업계의 이야기, 그리고 변호사들의 세계, 또 프로골퍼들의 이야기 또 마피아라 불리는 암흑셰계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주변의 이야기 였고 공들인 취재의 산물이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유리천정이며 보이지 않는 냉소와 냉대 차별이 그것이다. BLM이 그냥 나온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면에서 독자제현, 특히 미주의 동포들의 관심있는 일독을 권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를 회상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라 여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회상과 추억에만 머물 수 없다. 그래서 앞날을 그리려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사회 소설이기도 하고 공상 소설이기도 하다. 우리 싸이트 자유게시판을 통해 독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려 한다. 공동창작한다는 기분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 드린다.
필자와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최근 발표한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의 책날개 적혀있는 필자소개를 그대로 적어본다.
50년대 후반 서울생으로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미국 뉴욕 시립대학 매스커뮤니케이션학과를 수료했고, 뉴저지 페얼리디킨슨대학 국제관계센터 연구교수를 지냈다. 1982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면서 미주동아일보, 세계일보 등 교포 언론계서 활동했으며 서울 민주일보 주미특파원을 지냈다. 그후 국내외 여러 방송 매체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93년 7월, 통일 염원 소설 『해빙』(전 3권)을 발표했으며 이 소설은 그 후 SBS-TV에 의해 16부작 미니시리즈로 드라마화되어 방영되었다. 그 밖에 고구려의 여진족을 새롭게 조명한 역사소설 『장수왕의 나라』, 북한 취재기 『갈라진 45년 가서 본 반쪽』, 만주 문제를 다룬 르뽀 소설 『영웅의 약속』, 조선의 선비가 일본의 사무라이를 제압한 역사를 증언한 『북관대첩비』, 안중근 의사의 유해 찾기를 다룬 『고독한 영웅』 등의 저서,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