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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콘사 RGM 영웅의 진격에서
연재소설

<연재 장편소설> ‘영웅의 약속’

안 동일  지음

연재  제 1 회

비행기는 캄차카 반도 동쪽 상공을 지나 쿠릴열도를 향해 날고 있었다.
양떼의 등들처럼 끝없이 펼쳐진 흰 뭉게구름 위 푸른 창공을 미끌어지듯 날고 있는 비행기의 꼬리에는 태극 마크가 선명했다. 뉴욕발 서울행 KE 026편 B 747-400기였다.
비행기 2층 비지니스 클라스 앞쪽 19A 좌석에는 30대 중반의 동양계 남자가 앉아 있었다. 팔걸이 포켓에 기내용 한글 월간지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인 이었다.
그는 팔걸이에 오른손 팔꿈치를 올려 놓고 턱을 가볍게 받친 채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그런 자세는 여유가 있어 보이면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편하게 입은 듯한 짙은 쑥색 셔츠와 검정색 면 바지 차림이 그의 분위기와 썩 잘 어울렸다. 매끈한 미남형은 아니 었지만 그의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강한 인상을 주는 기품이 있었다. 그의 눈매가 바로 그 기품의 진원지 였다. 날카롭게 무언가 찾는 듯하면서도 우수를 머금고 있는 그런 눈 이었다.
뉴욕 JFK공항을 떠난지 10시간 가까운 비행시간이 흘렀고 이제 3시간여만 있으면 김포공항에 도착하게 될 터였다.
비행기 2층 좌석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장거리 비행에 지루함을 느낀 뒷쪽의 승객들은 진작 부터 몸비듬을 하며 옆좌석과의 팔걸이 간막이를 뽑아 아예 들어눕는 등 갖가지 풀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19A의 사내가 턱을 받치고 있던 손등을 떼어 관자놀이 쪽으로 옮겼을 때 귓볼 바로 밑에서 목 뒷쪽으로 이르는 부분에 어슴프레 흉터가 나타났다. 아주 오래전 무슨 예리한 물건에 베인 자국 같았다. 손을 턱에 고이는 그의 습관은 그 흉터 때문에 생긴 듯 했다.
그의 옆 자리에는 그의 일행인 역시 30대 후반의 남자가 의자를 뒤로 제친 채 눈을 감고 있었다.그의 일행은 그 보다는 키가 조금 더 컸고 체구도 조금 우람했다.
비행중에 두사람은 가끔 서류를 들여다 보며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지만 소란 스럽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두사람 모두 각자 생각에 잠겨 있는듯 침묵하고 있었다. 서로 평상어를 주고 받는 품이랄지 연배로 보아 두사람이 상하관계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덩치 큰 사내가 그를 대하는 태도에는 은근한 존경심이 배어 있었다.
진홍색 유니폼과 옥색 한복 차림의 스튜어디스들이 번갈아 가며 그들의 좌석을 찾아와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가볍게 미소만 보냈을 뿐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승무원들은 그들의 좌석을 찾아 연신 상냥한 웃음을 던지곤 했다. 그들의 좌석이 맨 앞이었던 덕분에 이날 다른 좌석의 승객들이 다른 비행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었다.

“언니, 저 사람들 이름 알아왔어?”
“응.”
“누구야? 누군지 알았어? 어디 신문이나 잡지에서 본것 같은데…”
“잭 다니엘 마시던 손님이 더 그렇지? 이름은 들어본 이름이 아닌 것 같애, 한사람은 윌리엄 정이고 한사람은 해롤드 김이라고 되어 있던데, 미국 이름 쓰고 있는 것으로 봐서 교포들 인가봐.”
“누가 윌리엄이야?”
“복도쪽에 탈라리아 살루트 셔츠 입은 사람.”
“언니도 탈라리아 살루트인지 알았구나.”
“그럼, 너 저사람 뭐 차고 있는지 알아?”
“시계?”
“응, 그게 바로 카티에 크라운 이잖아.”
“그래? 7만불쯤 한다는 시계, 저사람 영화 배우 아니야?”
“아니야. 저런 배우가 어디 있니?”
“재벌 2세쯤 되는가 보지?”
“글쎄,”
“멋있지? 매너도 세련되고…”
“참 혹시… 저 사람 그 윌리엄 정 아니야? 맞다 맞아, 이제 생각 났다.”
한 승무원이 상대의 팔을 가볍게 치면서 말했다.
“누군데?”
“뉴욕의 동양인 마피아 두목, 재작년인가 신문에 났었잖아?”
“아 그사람, 그러고 보니 그렇다, 그때 재판 받는다고 그랬지?”
그녀도 생각이 난 모양이다.
“그러구선 무죄로 판결났지?”
“어머 맞다 맞아, 그사람이다.”
“다시가서 보고 와야지”
승무원들끼리 뒷쪽 커텐 뒤에서 나누는 대화였다.

같은 시각.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이끌어 가는 심장부라 할수있는 청와대.
본관 옆 부속건물 2층은 수석 비서관 집무실이 나란히 있는 곳이다.
오른쪽 세번째 방은 새 정부 들어 청와대의 실세로 알려진 정책기획 수석의 방이었다.
그는 새 대통령을 30년 이상 보필한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정치 탄압을 받았던 대통령과 함께 여러 차레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었고 20여년 전 선거때는 당시 유력한 야당 후보였던 현 대통령의 차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을때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사고로 윤수석은 몇달 병원신세를 져야 했고 대통령은 팔꿈치 골절이 변형돼 지금도 약간 오른손을 쓰는데 불편을 겪고 있었다.
새 대통령의 집권을 놓고 ‘그렇게 돼야 될일 이었다’는 당연론도 있었지만 한국의 정치판 에서나 있을 기적과 같은 의외의 일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아무튼 새정부의 출범으로 윤수석은 생애 최고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윤종민은 새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아래 국정 전반에 걸친 자신의 구상과 소신을 쏟아 놓고 있었다.
윤의 책상위 전화벨이 울렸다. 직통전화 였다.
수화기를 든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누구라고?”
“아 그사람, 응 그래. 왜 오는지는 모르고?”
“박형 의견은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잠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그래 알았어, 의논해 보지.” 하며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여기 저기 구내 전화를 돌렸다.
잠시후 그의 방에 여러 사람이 모였다. 사람들은 소파에 둘러 앉았다. 거의 매일 같이 모이는 이른바 직계그룹에 속하는 면면들이었다.
“음, 이걸루 봐선 대단한데…무엇 때문에 오는지는 모르고?”
민정수석이 조금전 여 사무원이 가져다준 서류를 들여다 보면서 말했다. 팩스로 온 문건이었다. 민정수석 역시 대통령의 수족과도 같은 측근이었다.
“내곡동에서도 아직 그건 모르겠다는군.”
내곡동은 몇년전 남산,이문동시대를 끝내고 이사한 국가안전기획부를 지칭하는 새 별명이었다.
“우리쪽에서 한번 만나보기는 해야 할것 같지?”
윤 수석이 앞에 앉아 있는 민정수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글쎄 좀 미묘하기는 하네, 그냥 모른척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그런 인물 한톄 우리가 먼저 손짓을 하기엔 모양새가 문제 될텐데.”
민정수석이 대답했다.
“이 사람 정말 뭔가 있기는 있는거야? 이거 과장된 거 아니야?”
서류를 건네 받고 훑어보던 의전 수석이 한마디 하고 나섰다.
“제가 알기에도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옆에 있던 외교안보 수석실의 비서관이 대꾸했다. 지난번 선거를 통해 가장 늦게 직계그룹에 가세한 그는 외무부 출신이었다.
“참 함형은 뉴욕에 있었지? 그때도 이사람 알았었나?”
유종민이 물었다.
“직접 만나 보지는 않았지만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뉴욕 에서는 확고한 위치를 굳힌 인물이었죠. 마피아며 중국 갱단과도 연결을 갖고 큰 인물이라는데 재작년에 재판 받을때는 교포사회가 떠들썩 했었죠. 그런데 그땐 중국게라라고 했었는데 얼마전에야 한국인이라고 확실하게 알려 졌죠.”
“윌리엄 엔터프라이즈라… 이건 뭐 하는 회사야? 실제 매출액이 정말 이정도 되는거야? 돈 세탁용 유령회사 아니야?”
김 수석이 다시 물었다.
“아무래도 돈세탁을 하기는 하겠지만 유령회사 라고는 할 수 없고 일종의 물류 유통회사죠, 탈라리아 패션이라고 아시죠? 우리 탈을 상표로 해서 바바리코트하고 티셔츠 만들어내는 회사 말입니다. 그회사의 실제적인 모기업이기도 하죠.모델 에이전시도 하고 그외에도 운송이 큰 부분이고 요즘엔 러시아 무역을 크게 하고 있다는데 그 규모가 꽤 큰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 탈 브랜드가 그사람 회사에서 나온다는 애기야.”
“사할린 개발이며 요동 개발 얘기는 전에도 언젠가 나온적 있었잖아. 그게 바로 이사람이 추진 하는 거라는 말이야? 홍콩쪽 교포가 중심이 돼 있다고 하더니.”
“알고 보니 바로 이사람이 중심 인물이라는군. 그 개발들은 근거없는 첩보 차원의 소문만은 아니라는게 내곡동 얘기야.”
“이것 참 어떻게 해야 하나? 내곡동에서는 어떻게 할 생각이래?”
“아직은 그쪽도 방침이 있겠나, 그냥 주시만 해야겠지, 그쪽에서도 섯불리 접촉을 시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박차장 얘기는 우리쪽에서 만나보는게 어떻겠냐는건데.”
“실장 한테는 얘기 했어?”
“실장 지금 없잖아, 댐 문제 때문에 일찍 나가던데. 이따 오후에 들어오면 얘기하지.”
“아직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잖아? 몇시에 도착한다고?”
“오후 4시.”
“일단 윌리엄이란 사람 들어와서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방향을 정해야 할것 같은데.”
“그래야겠군 뭐.”
“참 언론에선 알고 있을까?”
“알겠지.어떤 사람들인데.”
“그쪽에도 한번 연락해 보면 뭐 얘기 좀 나오지 않겠습니까?”
“신문에선 크게 다룰 만 하겠는데, 사업가로 변신한 세계적 주먹보스의 30년 만의 귀향, 그거 뉴스 벨류가 있지.”
“글쎄 너무 떠들어도 모양이 이상한것 아니야?”
“요동의 고구려단지 건설이며, 시베리아, 사할린 개발이라, 대단한 일은 일인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거기까지 관심을 같게 됐지.”
“그래 말이야, 어떤 사람인지 개인적으로도 궁금해지기는 하는데…”
“자 그럼 오후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모처럼 구내식당으로 점심이나 하러가지.”
“난 시내 나가야 돼, 약속이 있어”
몇사람은 빠지고 비서관들이 우르르 몰려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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