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창이가 된 팰팍 주민 단톡방
한 리서치 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현대인은 하루 평균 스마트폰을 약 2,600번 터치한단다. 아침에 일어나서 알람을 끄고 날씨를 확인하고, 출근할 때도 업무 중에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과 함께하니 2천 6백번도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매일 스마트폰으로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고 다량의 정보를 습득하니 때때로 자신이 대단히 ‘스마트’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지만 중독의 길로 빠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이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지난 금요일 부터 1박 2일간 워싱턴 디시에 위치한 하이유에스 코리아 본사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맞이한 주일, 오랜만의 장거리 여행의 여독이 온전히 풀리진 않았으나 본당 교중 미사 참례를 마치고 나니 일상의 모든 루틴이 제자리로 돌아 온 것 같았다.
그러나 미사 동안 혹시 와있을지도 모르는 메세지들 쳌업과 무음모드 해제를 위해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순간 카톡 아이콘 위에 매달린 안 읽은 메세지를 나타내는 숫자에 다시 한번 눈이 동그래졌다. 2백 84개…
오늘은 그나마 주일이라 숫자가 저만하다. 주중엔 안 읽은 메세지의 숫자가 기본이 3백, 4백 이상 달리곤 한다.
스마트폰과 한 몸이 되어 살면서 이런 세자리 숫자가 카톡 아이콘에 달린 적은 요즘이 이번 생에 처음이다. 이런 숫자의 경험은 기자 뿐만 아니라 이 동네, 미동부 최대 한인 타운이라는 팰팍과 그 인근에 거주하며 ‘마이빌리지 팰팍’ , ‘뉴저지 한인회’ 단톡방(단체카톡방)에 가입된 주민들이라면 언젠가 부터 경험해 온 것들이다.
‘마이빌리지 팰팍’으로 대표 되는 주민 단톡방의 본래 취지는 팰팍 거주 주민들이 타운내 이슈들을 공유하며 생각을 나누고 더 나은 타운을 만들기 위한 소통의 창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이 주민 단톡방들이 타운내 이슈, 한국 정치 상황 관련해 의견과 편이 갈리면서 빛의 속도로 ‘흑화’ 되고 있다.
요즘 팰팍 주민 단톡방은 자정 능력을 아예 상실한 것 같다. 한국 정치 기준으로 좌우 각각에 있는 듯한 A씨와 B씨가 주민 단톡방에서 서로를 비방하고 뭉개는 그 수위가 얼마 전 부터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쪽은 토착왜구 한쪽은 쌩 빨갱이로 대표되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쌍욕들로 이뤄진 인신공격성 발언들과 사진들의 무차별 도배질은 동포사회에서 각 진영의 주민들에게도 결코 환영 받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기나 할까. 이들은 우주적으로 저급한 이 싸움을 뉴저지 한인회장 선거를 하면서 만들어진 단톡방에 까지 끌고와 주민들에게 정신적 피로를 배가시켰다.
단톡방에서의 다툼과 무차별 도배질이 도를 넘어서자 일요일 저녁, 보다 못한 이창헌 뉴저지 한인회장이 “ 본래 이 방의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은 글로 인해 단톡방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며 “이런 비방이 계속 될 경우 모든 대화자들을 퇴장하도록 안내하고 단톡방을 폐지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경고 메세지 이후 A,B씨 두사람은 뉴저지 한인회 단톡방에서의 싸움을 멈추고 원래의 방인 마이빌리지 팰팍 방에서 오후 11시 30분인 지금 까지도 300여개가 넘는 문자와 사진들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악마화는 동시에 ‘나’를 악마화
전엔 어땠을 지 모르나 기자가 작년 9월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경험한 팰팍 주민 단톡방을 보면 교육위원 및 시의원 선거, 뉴저지 한인회장 선거, 팰팍 한인회장 선거, 팰팍 상공회 회장선거 그리고 얼마전 치러진 팰팍 시장 예비선거 까지 그곳에선 각 후보들과 타운 내 관련 이슈를 놓고 현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했고 정보가 있었다. 한국 정치와 관련해 비효율적인 논쟁이 있기는 했지만. 오가는 대화를 살펴 보면 간혹 피로감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 방을 나가기도 어려웠던 것이 기자로서 종종 타운 관련 소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간 기자가 주민 단톡방을 관찰하며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상대방에 대한 악마화’이다. 자신이 하는 일 또는 의견에 대한 정당화, 합리화를 강력히 하고자 할때 상대를 악마화 하는 경우를 일상에서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주민 단톡방 속의 상대방에 대한 악마화를 통해 이미 우리 타운에는 사탄(?)으로 규정된 목사도 있고 기득권들도 있고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다.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서로 ‘지향’하는 바와 ‘지양’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그 다른 부분에 대해 내 생각을 어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각자의 역린, 최소한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뉴욕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이와 관련해 그의 저서 ‘올바른 마음 ( The Righteous Mind)’에서 상대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신성 모독’은 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고언이다.
“의견이 다른 진보와 보수가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수준의 ‘조건’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지 않고 서로의 ‘바른 마음’을 이해한다면 독선과 무조건적인 증오을 줄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문명의 이기를 넘어 ‘디지털 탯줄’처럼 현대인의 생활을 속박하고 있다고 분석되는 이즈음,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메일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등을 통해 끊임없이 타인의 반응을 기다리는 ‘디지털 조급증’이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되는 이즈음, 진정한 스마트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정말로 스마트 해져야만 한다.
뉴욕 안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