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세이즈팍 시장 민주당 예비선거 후보 ‘종 폴김’ 인터뷰
한마디로 폴김은 잘 만든 리조또 같은 사람이다. 그냥 찬밥에 크림소스와 해물을 넣고 비빈다고 리조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해본 사람들은 잘 안다. 그런데 폴 김 의원의 경우, 이곳 펠팍 타운의 경우, 리조또가 이탈리안 음식이라는 것도 우연치 않다. 재선 시의원인 그는 지금 펠팍 타운의 가장 뜨거운 이슈 메이커의 한 사람이다. 그는 오는 6월 7일 실시되는 펠팍 시장 민주당 경선에서 현직 크리스 정 시장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기존 이탈리안 유력자들의 영향력이 아직 크게 남아있는 지역 민주당 위원회는 일찌감치 그를 지지한다고 공표 했다. 그러자 발끈한 크리스 정 시장은 이탈리안 민주당 토호들의 부정 부패(?)를 발본 색원 하겠다고 나섰다. 양측은 동포 언론 광고를 통해 자신들 입장을 홍보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종’ 폴 김 후보를 27일 오후 타운내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인 임을 부각하기 위해 이번 선거전 부터 한국이름 종한의 ‘종’자를 강조하고 있다.
연일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열띤 선거 운동을 벌이는 영향인지 그전 보다 살도 빠지고 얼굴도 햇빛에 그을러 있었다.
그에게 쏠리는 의문은 과연 그가 펠팍 타운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기존 이탈리아계 민주당 토호(?) 들의 영향력에서 얼마나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며 그간의 문제점들을 얼만큼 해결 할 수 있는지에 집약되고 있는 것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일부 유권자들은 그간의 행태로 보아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얘기하며 일부는 그를 통해서만이 점진적이며 합리적인 변화와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몸에 밴 봉사활동, 정치 입문의 계기
“지난 3년반 동안 우리 펠팍 타운은 행정의 수반인 시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였습니다. 리더쉽은 실종돼 있었고 시의회는 분열돼 있었습니다. 시장은 기득권 세력의 꼭두각시였습니다.”
자신이 왜 시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주민들의 세금은 오남용 됐고 타운 학군은 카운티 최하위권으로 전락해있습니다. 주민들, 유권자들은 제대로된 정치인을 원하고 있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보지않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장을 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의 한국 말 솜씨는 기자가 보기에도 일취월장 하고 있었다.
그는 전형적인 바이링구얼 1.5세다.
1974년생인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부터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고 있었던 엄마의 교육열에 일찌감치 서울 외국인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고 중학교 때 본격 이민을 와서 테너플라이 고등학교를 거쳐 NYU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다. 학부 졸업 이후에는 CJ 바이오 아메리카에서 비즈니스 개발 매니져로 근무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몸소 겪어야 했던 차별이며 문화 차이에 대한 극복의 욕구도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몸에 배었던 봉사활동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정치를 딱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봉사’ 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서울의 강남권에서 유명 호텔을 경영했던 그의 어머니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었다. 어머니는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계절 마다 필요한 것들을 끊임 없이 도네이션 하시고 직접 연탄도 날라 주곤 했는데 그럴때 마다 막내인 종한을 꼭 동행했단다. 다른 특별한 말은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봉사를 배운것 같다.
“지금 보다도 훨씬 젊었을 때, 봉사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성당에서 활동을 하면서 타운 안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들이 보이는 것 보다도 훨씬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습니다.”
정치를 하게 된 계기 중 가장 큰 하나가 주민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실제 처음에는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성당의 원로들이며 전직 상록회장 등도 그와 그의 부인 김보라 변호사의 성심을 다한 봉사에 그를 다시 보았고 지금은 열렬 지지자가 되어있다.
그는 2000년대 팰팍으로 이사와 교육위원을 거친 재선 시의원이다.
그는 더 큰 봉사를 하기 위해 시장이 되려 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하이뉴욕코리아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