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 센터 대표)
11월 3일, 오늘 하루 동안 연방 하원 435석 전부와 상원 35석, 36개 주의 주지사, 그리고 골목골목의 삶을 좌우할 수많은 지방 공직의 주인이 가려진다.
한때 미국의 선거는 국경을 넘어 인류 전체가 지켜보던 ‘민주주의의 올림픽’이었다. 유권자들은 “누가 더 위대한 비전과 품격을 지녔는가”를 두고 행복한 고민을 했고, 결과가 나온 뒤에는 승복과 축하로 내일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2026년 오늘의 풍경은 그렇지 못하다. 축제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끝을 모르는 양극화와 진영 대결, 경제적 불안과 체제에 대한 피로감이 들어찼다.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청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극단의 시대, 선거는 희망의 축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존립을 걱정하는 ‘불안의시간’이 되었다. 민주주의라는 엔진이 안팎에서 삐걱거리는 지금, 우리는 어떤 나침반을 들고 투표소로 향해야 하는가.
우선 유권자의 시선부터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투표가 후보자의 화려한 언변과 스타성을 점찍는 일이었다면, 오늘 우리의 투표는 ‘민주주의 제도의 안전핀’을 채우는 결단이어야 한다.
기준은 파란색(민주당)이나 빨간색(공화당) 깃발이 아니다.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을 존중하는가?” “정파의 승리를 위해 사법부와 선거 제도 자체를 흠집 내지 않는가?” “분노와 혐오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대신,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갈등을 풀 실용적 지혜를 지녔는가?” 위기의 시대에 던지는 한 표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다. 폭주하는 권력을 멈춰 세우고, 상식의 바닥을 지탱하는 가장 엄중한 헌정적 브레이크다.
미국 인구 3억 4천만 명 중 미주 한인은 약 200만 명, 고작 0.6% 남짓이다. ‘소수 중의 소수’라는 수치상의 한계는 오랫동안 우리를 주류 정치의 변방으로 밀어냈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표를 던진들 거대한 미국 정치가 눈 하나 깜짝하겠는가”라며 지레 손을 놓았다.
하지만 정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치인이 선거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인구수’가 아니라 ‘실제로 투표소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숫자’다. 미국 중간선거의 평균 투표율은 대개 50% 안팎이다.
이 헐거운 틈새야말로 소수계가 파고들 수 있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다. 수백 표, 수십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시의원·교육위원 선거는 부지기수다. 0.6%에 불과한 한인이 70%, 80%의 경이로운 투표율을 기록하며 똘똘 뭉쳐 투표소로 쏟아져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우리는 무시해도되는 ‘소수자’에서, 선거 판세를 쥐락펴락하는 무서운 ‘캐스팅보터’로 단숨에 체급이 올라간다.
숫자의 열세는 높은 투표율이라는 무기로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힘을 어디에 써야 할까? 특정 정당에 맹목적으로 표를 몰아주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정치권에서 한쪽에 고정된 표는 “어차피 우리 편”이라며 홀대받고, 반대편에서는 “어차피 안 줄 표”라며 외면당하는 ‘잡힌 물고기’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민주주의 원칙에는 단호하되, 정당 선택에서는 영리한 상인처럼 유연해야 한다. 소상공인 지원, 공교육 정상화와 차세대 육성, 치안 강화와 아시안 증오범죄 근절, 그리고 한미 동맹의 올바른 발전까지. 우리의 생업과 안전, 자녀의 미래에 직결된 이 현실적 의제에 고개 끄덕이고 답을 내놓는 후보라면 진영을 불문하고 손을 잡아야 한다. 반대로 우리를 들러리 세우고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인에게는 다음 선거에서 가차 없이 낙선의 쓴잔을 안겨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리한 소수의 ‘생존 전략’이다.
물론 한인의 힘만으로는 외연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다. 담장 안에 갇힌 소수 커뮤니티는 고립될 뿐이다. 물가, 치안, 주거, 학교 문제는 흑인도, 히스패닉도, 백인 이웃도 똑같이 겪는 일상의 고통이다. 이 보편적인 민생의 전선에서 다른 커뮤니티와 연대하고 지역사회의 궂은일에 앞장설 때, 한인은 비로소 ‘낯선 이방인’의 껍질을 벗고 ‘가장 든든한 이웃’이자 리더로 인정받게 된다.
아울러 정치 지망생들이 교육위원회와 시의회, 주 의회라는 풀뿌리 정치의 토양에서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지갑을 열고 발품을 파는 일상적인 멘토링이 이어져야 한다. 준비된 한인 2세, 3세가 공직에 설 때, 한인의 목소리는 비로소 미국의 상식이 된다.
민주주의는 결코 요란한 쿠데타로만 무너지지 않는다. 주권자가 “투표해 봤자 소용없다”며 냉소와 무관심 속에 권리를 내려놓을 때, 제도는 안쪽부터 소리 없이 썩어 들어간다.
오늘 우리가 쥐고 있는 투표용지는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아니다. 그것은 표류하는 미국의 상식을 바로잡는 묵직한 닻이며, 보이지 않는 인종적 천장을 뚫고 당당히 이 땅의 주인이 되겠노라 외치는 한인 사회의 존재 증명서다. 침묵하며 불평하는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투표로 판을 흔드는 당당한 주권자가 될 것인가.
모든 질문의 마침표는 오늘, 가족과 이웃의 손을 잡고 투표소로 향하는 우리의 단단한 발걸음 끝에 찍힌다. (동찬 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