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전 오사카 총영사)
‘비전투 지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난감한 상황
양극단적 찬반 논리에 갇히지 말고 실리 위한 정교한 해법 모색 해야
국회 동의 절차 이용한 시간 벌기, 해상안보 연합체 참여 등
중동의 군사충돌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 문제가 우리 외교안보의 중대한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오는 11월 3일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진퇴양난에 빠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에 이어 최근 또다시 11월 말을 시한으로 제시하며 한국 정부에 호르무즈 파병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한편에서는 한미동맹의 결속을 강조하며 “어려울 때 미국을 돕는 것은 마땅한 보은의 덕목”이라거나, “파병을 통해 북·미 대화와 관세, 핵추진잠수함 등 안보 협상의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식의 참전 실리론을 펼치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유엔헌장 제2조 4항 무력행사 금지 원칙과 무기거래조약(ATT) 등 국제 규범적 가치를 들어 ‘어떠한 형태의 군사적 자산도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불가론으로 팽팽하게 맞선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헌법 제5조 제1항은 침략적 전쟁을 명백히 부인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는 물론 미 의회의 무력사용승인(AUMF)조차 없는 불법적 전쟁에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일방적 파병 요청에 응해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위를 도박판에 올리는 것은 냉철한 국익 계산을 완전히 도외시한 낡고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미국의 안보 협박에 가까운 무리한 파병 요구에 한 번 굴복하기 시작하면 향후 사태 악화 시 추가적인 전력 투입을 지속적으로 강요받는 구조적 악순환에 빠져들 뿐이다. 더욱이 북·미 대화 재개나 관세 협상은 트럼프 행정부 자신의 정치적 필요와 경제적 셈법에 따라 움직이는 독자적 영역이다. 따라서 이 현안들을 호르무즈 파병과 섣불리 연계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에게 한국을 길들일 새로운 압박 지렛대만 쥐여주는 치명적인 자충수가 된다.
파병 반대 여론 속 고심 깊어지는 정부
안팎의 거센 압박 속에서 파병에 대한 국내 민심은 대단히 싸늘하다. 최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파병 반대(45%)가 찬성(36%)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여당 지지층 내 반대 여론이 55%에 달할 정도로 국내의 반발 기류는 심각하다. 명분 없는 전쟁에 우리 군 장병을 내몰 수 없다는 국민적 뜻이 확고하게 드러난 것이다.
14일 발표된 ‘여론조사꽃’ 조사(9월 11일~12일 양일간 실시)에서 호르무즈 파병에 대해 전화면접조사와 ARS 조사 모두에서 파병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화면접조사에서는 파병 반대 60.6%, 파병 찬성 32.2%(격차 28.4%p), ARS 조사에서도 파병 반대 51.6%, 파병 찬성 30.7%(격차20.9%p)로 집계됐다. 조사 방식과 관계없이 국민 10명 중 5~6명은 호르무즈 파병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14일 발표된 ‘여론조사꽃’ 조사(9월 11일~12일 양일간 실시)에서 호르무즈 파병에 대해 전화면접조사와 ARS 조사 모두에서 파병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화면접조사에서는 파병 반대 60.6%, 파병 찬성 32.2%(격차 28.4%p), ARS 조사에서도 파병 반대 51.6%, 파병 찬성 30.7%(격차20.9%p)로 집계됐다. 조사 방식과 관계없이 국민 10명 중 5~6명은 호르무즈 파병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거듭된 압박 속에서 파병의 여부와 방식을 둘러싸고 깊은 고심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 실무진은 지난 9월 5~6일 국방부 현지조사단을 아랍에미리트(UAE)로 급파해 미 공군 중부사령부가 주둔하는 아부다비 알 다프라 공군기지와 바레인의 미 해군 5함대 기지의 정비·보급 여건 등을 점검하고 9월 10일 귀국했다.
현지 점검 이후 정부는 P-8A 포세이돈 해상초계기와 1만 1000톤급 군수지원함 소양함, 해군 특수전전단 폭발물처리반(EOD)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비전투 지원 전력’ 파병안을 실무 차원에서 구체화하고 있다. 직접적인 교전 임무를 피하고 해상 감시와 군수 지원 등 제한적 역할에 한정함으로써 대미 동맹 관계를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실무진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 및 상임위 논의 일정을 저울질하는 모양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23년 전 2003년 이라크 파병 당시와 전혀 다른 국가적 체급을 가졌다. 경제력과 독자적 군사력이 비약적으로 커졌고, 반도체·배터리·원전 등 글로벌 공급망의 전략적 가치도 막강해졌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과거와 같은 진영 논리나 양극단적 찬반론에 갇혀서는 안 되며, 국가의 총체적 실리를 지켜내기 위한 정교하고 독자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란은 ‘비전투 지원’도 교전국으로 규정
일각에서는 2003년의 전례처럼 ‘비전투 지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의 지적처럼 우리 정부가 말한 ‘항행 안전 기여’가 곧바로 군사적 파병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사적 자산이 분쟁 수역에 전개되는 순간 냉혹한 전장의 논리는 우리의 주관적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우리가 비전투 지원이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교전 상대인 이란 측도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전무하다.
정부는 전투 참여가 아닌 감시·수색과 군수지원 목적의 제한적 기여라고 주장하겠지만, 현대 해상 복합전의 핵심은 C4ISR(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감시·정찰) 체계에 있다. P-8A 초계기가 수집한 해상레이더와 음향탐지(소나) 데이터가 미 해군 타격자산으로 넘어가고 군수지원함이 미 함대에 유류와 탄약을 보급하는 순간, 우리 군은 미군의 대(對)이란 공격 체계의 센서이자 핵심 후방 지원전력으로 편입된다. 현대전에서 이는 명백한 교전 당사국 참여와 다름없다.
더욱이 이번 사태를 국가적 생존 전쟁으로 규정한 이란의 대응 의지는 극도로 완강하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례적으로 직접 한글 성명까지 발표하며 “타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 지원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며 “위험한 선택에는 반드시 가혹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좁은 해협 통로에서 케슘섬 등 연안 기지에 포진한 이란 정규해군과 혁명수비대(IRGC)의 대함 순항미사일, 자폭 드론, 지능형 기뢰망의 조준선은 우리 유조선과 상선을 향하게 된다. 단순한 보은이나 진영 논리에 휩쓸려 미국 주도의 국제해상안보연합(IMSC)에 섣불리 얽혀 들어간다면, 60여 년간 쌓아온 이란과의 외교적 신뢰는 무너지고 국가 에너지 수송로 전체가 인질로 잡히는 파국을 자초하게 된다.
동맹국들의 엇갈린 대응과 현실적 교훈
오늘날 국제질서는 미국이 세계의 안보 부담을 홀로 짊어지지 않는 각자도생의 구조로 재편되었으며, 동맹 의무 역시 자동적 집단방위가 아닌 전략적 자율성의 영역으로 전환되었다. 실제로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이 군함 파견을 요구했을 때,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일본·캐나다 등 7개 동맹국들은 봉쇄 규탄 성명을 내면서도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데는 일제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현실의 역학관계를 도외시한 채 정면 거부를 고집했던 국가들은 상당한 외교적 리스크에 직면했다. 미국의 호르무즈 군사작전 참여 요청을 정면 거부했던 스페인은 통상 중단과 나토(NATO) 배제 위협을 겪고 있고, 캐나다 역시 파병 거부 이후 통상 보복관세와 안보협의 배제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독일 또한 이란전 동참을 공식 거부했다가 주독미군 감축 위협 등 양국 관계가 급랭했다. 반면 호주는 초계기와 호위함을 조기 파견해 미국 주도의 IMSC에 결합하는 현실주의적 선택을 내렸다.
유럽 주요국들의 구체적인 대응을 살펴보면 분화 양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유럽연합 핵심국들은 미국의 작전망에 종속되는 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홍해와 인접 해역에서 상선 호송만을 위한 ‘아스피데스 작전’을 펴거나 프랑스 주도의 호르무즈 호위작전(EMASOH) 틀을 활용했다.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등은 아부다비 기지를 거점으로 호위함과 초계기를 파견하되 미군의 공세적 타격망과 철저히 분리된 방어적 통항 감시 명분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원유 의존도가 절대적인 일본의 정교한 접근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평화헌법 제9조를 방패 삼아 미·이란 휴전 성립, 이란과의 원활한 외교 소통, 현장 위협 저하라는 ‘3대 전제 조건’을 공식화하며 교전 중의 군사 개입을 차단했다. 대신 방위성 설치법상 독자적 ‘조사·연구’ 목적 운용과 정전 후 평화적 소해 작업으로 역할을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미일동맹을 관리하면서도 이란 외교 관계와 수송로 안전을 동시에 지켜냈다.

미 중간선거까지 국회 동의 절차 이용한 시간 벌기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외교 성과에 목마른 트럼프의 압박은 거세지겠지만, 우리에게는 이를 정당하게 방어할 제도적 완충장치가 존재한다. 헌법 제60조 제2항은 국군의 해외파병 시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파병동의안의 첫 관문인 국회 국방위원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극심한 의사결정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회 국방위원 17명 전원 전수조사 결과는 한국 의회의 신중함을 잘 보여준다. 찬성 입장을 표명한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 3명에 불과했으며, 집권 민주당 소속 9명 전원은 “정부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당론 찬성(118명)으로 이라크 파병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헌법적 동의권을 쥔 국회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들조차 이견이 두드러진 상황에서, 2003년 이라크 파병 당시 노무현 정부가 1·2차 정부합동현지조사단을 파견해 면밀한 평가를 거쳤던 전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현지에 다녀온 국방부 실사단의 조사 결과에 머무르지 말고, 이란의 미사일·드론·기뢰 위협 속에서 장병 생존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민관군 합동 안전실사단’의 추가 파견과 국회 상임위 심의 일정을 외교적 명분으로 당당히 내세워야 한다.
여기에 더해 최근 국제 외교 무대의 중대한 구조적 변화 역시 파병 절차를 합법적으로 유예할 명분을 제공한다. 지난 9월 9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는 미신고 핵물질 조사 비협조 등을 이유로 2006년 이후 20년 만에 이란 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공식 회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란 핵 갈등이 마침내 유엔이라는 다자주의 외교 틀로 넘어간 것이다.
상임이사국인 중·러의 거부권 행사 여부와 안보리 제재 결의 채택 가능성, 다자 협상 추이를 지켜보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로서 지극히 마땅한 태도다. 안보리 논의 추이를 지켜보며 정책 결정을 11월 3일 미 중간선거 이후로 지연시키는 것은 대미 마찰을 줄이며 시간을 벌 수 있는 결정적 명분이 된다.
다국적 해상안보 연합체 참여는 최후의 카드
우리의 최우선 목표이자 최선책은 불필요한 군사적 얽힘을 피하고 한반도 안보와 평화적 외교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특유의 톱다운 방식과 맞물려 관세와 반도체 등 대미 통상 압박, 방위비 분담금, 한미 연합훈련 등 복합적 안보 현안이 한미동맹 전반에 얽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이 단독으로 미국의 공세적 전선에 서기보다는 국제적 틀 안에서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70%에 달하는 해상 원유 수송로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최악의 미국발 외교 리스크를 피하고자 한다면, 프랑스와 영국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는 다국적 해상안보 연합체 참여라는 차선책을 최후의 카드로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한다. 이 구상은 영·프 양국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우방국들을 규합해 추진하는 다자간 해상임무 틀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4월 영국 노스우드 상설합동본부 군사회의에 참여하고 나토 파트너십 채널을 통해 유럽국들과 긴밀히 소통해 왔다.
영·프 주도의 다국적 해상안보 연합체는 미국 주도의 IMSC과 궤를 달리한다. 이 연합체 구상은 2020년 프랑스 주도로 출범했던 EMASOH를 기반으로 민간 선박의 안전 통항 감시와 해협 내 기뢰 제거 등 평화적이고 방어적인 임무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전쟁 상태가 아닌 ‘허용적 환경(permissive environment)’ 속에서 상선 통항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미군 지휘망에 예속되지 않은 독자적 감시 자산을 통해 불필요한 긴장 고조를 피하면서 국제 규범에 따라 해상수송로를 다자주의적으로 관리하려는 틀이다.
얼마 전 한·프랑스 정상회담에서도 양국 정상은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과 안정을 위한 다자간 협력 필요성에 동의했다. 만약 한국이 호르무즈 평화에 기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미국의 일방적 작전망에 편입되는 최악의 선택을 피하고 영·프가 이끄는 다국적 해상임무 틀에 결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는 미국에는 해협 안전 기여 명분을 주면서도 중동 국가들에게는 상선 보호와 평화 유지를 위한 순수 다자 협력임을 설득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다.
진정한 실용외교는 이란과의 군사 충돌과 한미동맹 균열을 동시에 피하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국회 심의와 현지 실사, 그리고 20년 만의 IAEA 안보리 회부라는 다자적 국면을 지렛대 삼아 11월 3일 미 중간선거까지 치밀하게 시간을 벌고, 영·프 주도의 다자간 해상안보 연합체라는 최후의 카드를 준비한다면 동맹의 신뢰와 국가의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성렬 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