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AI 붐이 수십년 경쟁 관계 바꿔”
SK하이닉스·삼성 HBM에 TSMC 파운드리·패키징 결합
한국과 대만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오랜 경쟁 관계를 넘어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대만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첨단 패키징을, 한국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각각 주도하면서 AI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는 고성능 반도체인 ‘AI 가속기’ 생산에서 상호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18일 CNN에 따르면 생성형 AI 확산으로 AI 가속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이 갈수록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사진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6월 3일 대만에서 웨이저자(C.C. Wei) TSMC 회장과 회동한 모습.
도쿄 게이오대의 성수 에릭 김 특별초빙교수는 “이런 구시대적인 갈등에 매달릴 시간이 없다”며 “수요가 너무 많기 때문에 우선 협력해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개발을 위해 막대한 컴퓨팅 자원을 투입하면서 전 세계 AI 인프라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에 엔비디아와 AMD 등이 설계한 AI 가속기 수요가 생산 능력을 압박하면서 한국과 대만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AI 가속기 생산에는 양국의 핵심 기술이 모두 필요하다. 엔비디아 AI 서버의 경우 대만 TSMC가 생산한 연산용 반도체와 SK하이닉스·삼성전자가 공급하는 HBM을 첨단 패키징 기술로 결합해 AI 가속기를 만든다. 이후 대만 업체들이 이를 냉각 시스템 등을 갖춘 서버 랙으로 조립한다.
공급 부족이 이어지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에서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웨이퍼에 “더 많이 만들어달라(Please make more)”는 메시지를 직접 적기도 했다.
한국과 대만은 그동안 전자·반도체 산업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과거에는 삼성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수직계열화한 한국이 앞섰지만, 이후 TSMC를 중심으로 한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경쟁 구도도 달라졌다.
한국과 달리 대만은 제조공정별 전문업체들이 촘촘한 공급망을 구축했다. 이 같은 산업 구조는 AI 시대에 강점으로 부각되면서 대만 업체들은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뿐 아니라 전원공급장치, 냉각 시스템 등 AI 하드웨어 공급망의 주요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노무라는 지난 5월 보고서에서 대만이 AI 하드웨어 생산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韓은 HBM·대만은 파운드리…AI 시대 ‘프레너미’ 된 두 나라
그러나 AI 붐은 양국의 경쟁과 동시에 상호 의존도도 높이고 있다. 대만이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에서 우위를 점한 반면 한국은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HBM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전 세계 HBM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 한국에서 생산된 HBM은 TSMC의 연산용 반도체와 결합돼 AI 가속기로 완성된다. 이 같은 공급망 구조에 힘입어 한국은 지난해 대만과의 무역에서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노무라의 박정우 이코노미스트는 “두 나라는 갈수록 서로 보완적인 관계가 되고 있다”며 대만의 파운드리와 한국의 메모리 모두 AI 공급망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만 기술 전문 미디어·리서치업체 디지타임스의 콜리 황 회장은 양국 관계를 ‘프레너미(frenemy·친구이자 적)’로 표현했다. 그는 “양국 사이에 호의는 거의 없다”며 “서로 상대방을 경쟁자로 보고 있고 이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AI 수요가 양국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묶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