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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컬럼> 규칙을 바꾸려는 자, 누구를 위한 공정인가

김동찬 (뉴욕 시민참여 센터 대표)

우리 동네에는 유난히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 목수 일을 하는 이웃은 너무 일에 몰두한 나머지 직원들의 커피까지 사들고 출근했다가 일요일인 것을 뒤늦게 알아챌 정도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또 다른 이웃은 매니저가 쉬어야 한다며 토·일요일과 공휴일에는 반드시 일찍 출근한다. 남들보다 더 일하고 더 희생하면서도 불공정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이 가장 강렬하게, 그리고 가장 본능적으로 분노하는 감정의 뿌리는 불공정과 차별, 그리고 무시(Disrespect)다.  상황이 힘들고 불편한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왜 나만? 왜 저 사람은 안 되는데 나는 돼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인간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규칙(Rule)이고, 그 규칙이 정교해지면서 법(Law)이 탄생했다. 규칙과 법이 발달하면서 스포츠가 꽃을 피웠고, 초기의 정글 같던 자본주의도 질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규칙과 법이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를 우리는 선진 문명국이라 부른다.

2026년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선거 방식과 투표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입법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표면적인 명분은 선거 공정성 강화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화당이 주도해 하원을 통과한 SAVE Act는 유권자 등록과 투표 시 여권, 시민권증서,출생증명서 등 연방 발급 신분증을 반드시 제시하도록 요구한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각 주에서 발급된 운전면허증은 인정되지 않는다. 언뜻 합리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숫자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미국 성인 중 유효한 여권을 보유한 비율은 48~53%, 즉 2명 중 1명꼴이다. 초당적 정책센터와 브레넌 정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즉시 제출하지 못하는 성인이 전체의 9~12%, 약 2,100만~2,800만 명에 달한다. 출생증명서가 아예 없거나, 분실했거나, 부모님 댁이나 은행 금고 깊숙이 잠들어 있는 경우다. 화재나 홍수로 서류 자체가 사라진 경우도 무려 380만 명이나 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미국 여성의 약 84%는 결혼 후 남편의 성(姓)을 따른다. 그 순간 출생증명서의 이름과 현재 법적 이름이 달라진다. 서류로서의 출생증명서는 사실상 무효가 된다. 트랜스젠더 시민도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결국 이 법안이 실질적으로 참정권을 제한하게 되는 대상은 뚜렷하다. 집을 떠나 자주 이사 다니는 대학생과 청년층, 서류를 갖추기 어려운 저소득층, 그리고 결혼으로 성이 바뀐 수천만 명의 여성들이다.

이와 함께 논의되는 MEGA Act는 우편투표를 매번 별도로 신청하게 하고, 선거재정 낭비 방지와 행정 효율을 위해 도입된 순위선택투표(Ranked-Choice Voting)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상원까지 통과된다면, 42개 주에서 운영 중인 온라인 유권자 등록 시스템이 멈추고, 현장 투표만 가능해지는 사태가 벌어진다.

규칙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더 나은 공정성을 위한 규칙의 진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의 규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국민의 합의 없이 새로운 규칙을 힘으로 관철하려 할 때, 역사는 언제나 같은 결말을 보여주었다. 조용히 흐르던 강물도 막히면 굉음을 내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홍수가 된다. 분노한 민심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

현재 상원의 구조상 SAVE Act의 통과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화당과 보수층은 이 의제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불법 이민자의 투표를 허용하기 위해 선거 공정성을 막고 있다는 프레임은, 팩트와 무관하게 보수 표심을 결집하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된다.
그리고 선관위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선거 결과가 근소한 표차로 갈릴 경우, 곳곳에서 선거 결과 불복종이 일어날 수 있다. 규칙은 참여하는 자의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 동네 목수가 일요일에 커피를 사 들고 출근하는 것은,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인 커뮤니티의 목소리는, 한인들이 의지의 표현을 위하여 투표함 앞에 설 때 비로소 존재한다. (동찬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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