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봄이 오면 만물이 싹을 틔우고, 여름이 되면 모든 생명이 제 성장을 위해 쉼 없이 경쟁한다. 가을에는 결실을 거두고, 겨울에는 쇠퇴와 소멸이 찾아온다. 사람의 인생도, 사회 조직도, 국가도 이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역사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내가 역사의 어느 계절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무엇을 준비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 대제국들의 흥망을 보면 묘한 패턴이 반복된다. 처음 100년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 다음 100년은 팽창과 도약, 그다음 100년은 찬란한 문화의 절정기다. 그러나 절정은 곧 균열의 시작이다. 외부로의 과도한 팽창이 실패로 돌아오면, 분노와 책임은 반드시 안으로 향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내부의 소수자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테네다. 지중해 민주주의의 종주국 아테네는 시칠리아 원정에서 참패한 뒤, 민주정이 과두 쿠데타에 무너지고 재판 없는 처형과 재산 몰수가 일상화되었다.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고발자가 되었다.
2,400년 뒤 오스만 제국도 같은 수순을 밟았다. 1914~15년 겨울 러시아와의 사리카미시 전투에서 대참패한 직후, 그 패전의 책임은 내부 아르메니아인에게 전가되었다. 100만 명 이상이 학살당하고 추방되었다.
2026년 1월 3일, 미군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신속하게 생포했다. 그 기세를 몰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초기 공습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하는 등 군사적 성과는 컸다.
그러나 이란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란은 중동 전역의 미군 기지와 동맹국 시설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고,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5%, LNG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현재 미국의 해상봉쇄와 이란의 해협봉쇄가 맞서는 이중봉쇄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4월에 2주 휴전이 합의되었지만 협상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에너지 가격 급등, 글로벌 물류 차질, 막대한 전비 부담이 쌓여가고 있다.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이 그랬던 것처럼, 긁어 부스럼을 만든 형국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전쟁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제국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내부의 희생양을 찾았다. 반이민·반소수계 기치를 내걸고 집권한 현 정부 하에서, 전쟁 실패의 책임이 내부로 전가될 경우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역사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미주 한인 커뮤니티는 이민자다. 소수계다.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계해야 할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가시화(可視化)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이 집단수용소에 끌려간 것은 그들이 정치·사회적으로 비가시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얼마나 가시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가 위기 시 우리를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된다.
둘째, 연대(連帶)다. 소수자는 혼자 싸워서 이길 수 없다. 여러 소수계 커뮤니티가 서로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연대할 때, 비로소 정치적 무게를 가질 수 있다. 커뮤니티 내부의 결속은 물론이고, 타 소수계 및 주류 시민사회와의 폭넓은 연대망을 지금 이 순간 구축해야 한다.
셋째, 정치적 주체화(主體化)다. 경제적 성공에만 집중하는 커뮤니티는 정치적으로 취약하다. 유권자 등록, 선거 참여, 지방 공직 진출, 법적 지원 네트워크를 조직해야 한다.
지금 미국의 팽창 에너지는 소진되어 가고, 내부의 분열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소수자에게 필요한 것은 준비다. 아테네의 소수파들이, 오스만의 아르메니아인들이 그 계절의 변화를 미리 읽지 못했다면, 그런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동찬 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