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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컬럼> 늦봄에 피는 5월의 장미를 보면서

긴 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모란이 지고, 아카시아 향이 바람에 실리며, 장미가 만개하는 5월의 마지막 주다.  흔히 장미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말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장미가 5월에 피는 이유는 땅의 온도, 햇빛의 길이, 벌과 나비의 활동이 맞물리는 바로 그 시기, 씨앗을 만들기에 가장 유리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자신이 서 있는 조건을 계산하며 산다. 이것이 ‘철이 든다’는 말의 본래 의미다.
선가에는 이런 화두가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앞선 이의 길을 그대로 따라서는 결코 자신의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들의 길을 이해하되, 지금 이 시대와 이 조건 위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미주 한인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민 1세대의 생존 방식이 오늘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할 시점에 서 있다. 미주 한인은 한국인도, 단순한 미국인도 아니다. 북향 담벼락의 장미와 남향 언덕의 장미가 같은 종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피어나듯, 우리는 두 문화의 문법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이것은 혼란이 아니라 자산이다. 두 세계를 동시에 이해하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강력한 경쟁력이자 미국사회를 더욱 살찌게 만드는 새로운 영양소다.

문제는 그 자산을 우리는 얼마나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가에 있다.
이민 1세대는 생존에 집중했다. 혹독한 환경을 뚫고 피어난 3월의 매화와 같았다. 1.5세와 2세는 그 위에서 4월의 벚꽃처럼 미국 사회 전반으로 진입하며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다. 정치, 교육, 전문직, 기업, 문화 전반에서 그 존재감을 확장해왔다.

지금은 5월의 마지막 주다. 늦봄의 장미는 단순히 아름답기 위해 피지 않는다. 씨앗을 만들기 위해 핀다. 그 씨앗은 여름을 견디고, 가을에 새로운 땅으로 확장된다. 한인이민 120여 년의 시간은 이제 ‘씨앗을 준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씨앗을 만들고 있는가.

첫째, 다음 세대 교육이다.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두 문화 사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 교육이 핵심이다. 언어와 역사, 문화적 자의식이 결합되지 않은 성공은 지속되지 않는다.
둘째, 지식과 자산의 전승이다. 1세대와 2세가 축적한 경험, 네트워크, 자본을 어떻게 다음 세대로 구조화해 전달할 것인가. 커뮤니티 내부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이 단계에서 결정적이다.
셋째, 정치적 기반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국 사회에서 안정적인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제도적 힘이 필요하다. 높은 유권자 등록률과 투표율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전문직의 경계를 허물고 사회 구조를 재편하는 이 시점에서, 다음 세대가 설 자리는 자연스럽게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그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꽃은 곧 진다. 그러나 씨앗은 남는다.

눈에 보이는 것은 꽃이지만, 실제로 중요한 일은 그 뒤에서 조용히 진행된다.  5월의 끝자락에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의 꽃 뒤에서, 지금 어떤 씨앗이 익어가고 있는가. (동찬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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