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한데 모인 달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 계절이 되면 꽃다발을 들고 부모님을 찾고 아이들과 나들이를 떠나는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미주 한인 이민자에게 5월은 단순한 기념의 달이 아니다. 두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다시 들여다보고, 개인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이민 생활은 가족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언어의 장벽, 문화적 낯섦,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가족은 단순히 함께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생존과 회복의 기반이 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족 안에 걸리는 압박은 다른 어디서보다 무겁다.
1세대 부모는 자녀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자녀들은 또래 미국인과 다르지 않게 살고 싶어 한다. 부부 사이에서는 낯선 땅에서의 생계 부담이 쉽게 갈등의 불씨가 된다. 모국에 두고 온 노부모에 대한 죄책감은 마음 한 켠을 늘 무겁게 짓누른다. 이 모든 압박이 동시에, 한 지붕 아래서 작동한다.
이런 복합적인 현실 앞에서 가족이니까 당연히 참아야 한다는 오래된 논리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참는 것이 덕목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서로 다른 필요를 말하고 조율하는 것이 가족을 지키는 방식이 되었다.
한인 1.5세, 2세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의 소통 방식은 이미 1세대 때와 달라져 있다. 그런데 많은 가정에서 부모는 여전히 과거의 문법으로 말하고, 자녀는 새로운 문법으로 듣는다.
이 어긋남이 쌓이면 단순한 세대 갈등을 넘어, 자녀가 뿌리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권위로 이끌던 수직적 관계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로 풀어가는 수평적 관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은 부모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설명하고 경청하는 부모를 자녀는 더 깊이 신뢰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엔 다 그랬다는 말로 갈등을 덮어두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와의 연결을 스스로 끊는 일이다.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민 초기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생존을 가능하게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균열을 만든다. 함께 벌고, 함께 돌보고, 함께 결정하는 동반자 모델은 단순히 '현대적 이상'이 아니다. 이민 생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실질적으로 더 안정적인 구조다. 한쪽의 소진은 결국 가족 전체의 위기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미주 한인 사회의 진정한 강점은 공동체에 있다. 교회, 각종 협회, 한인회, 학부모 모임, 한글학교의 연결망은 단순한 친목 이상이다.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돌봄과 정서적 지지를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이 구조가 이민 사회를 지탱해 온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한인 공동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젊은 세대는 한인 공동체를 점점 나와 상관없는 공간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왜인가? 공동체의 언어가 여전히 1세대 중심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구조, 행사 방식, 소통 채널, 이 모든 것이 1.5세와 2세에게 문턱이 된다.
젊은 세대를 공동체로 끌어들이려면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혈연과 지연으로 엮인 과거형 공동체가 아닌, 가치와 경험을 나누는 선택적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거창한 변화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5월 이 한 달,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자.
개인의 차원에서 — 일주일에 한 번, 휴대폰을 내려놓고 가족과 10분간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부모와 자녀 사이라면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쓰며 서로의 언어로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어색하더라도, 그 어색함을 함께 웃어넘기는 순간이 이미 연결의 시작이다.
가족의 차원에서 — 가족 안에 쌓인 감정적 부채를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전문 상담을 받는 것에 열린 태도를 갖자. 한인 커뮤니티 내 가족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가족을 지키려는 용기 있는 선택이다. 위기가 닥쳐서 찾는 상담보다, 예방적으로 찾는 상담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지킬 수 있다.
공동체의 차원에서 — 자신이 속한 한인 모임에서 1.5세와 2세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 점검해보자. 그리고 그 모임이 새로운 세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함께 논의해보자. 공동체는 과거를 보존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탱하는 살아 있는 구조여야 한다.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두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그 균형의 중심에 가족이 있고, 가족을 지탱하는 힘은 공동체에서 나온다.
가족은 주어지지만, 좋은 가족은 매일 선택하고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5월, 꽃이 만발한 이 계절에 우리 각자가 그 선택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조금 더 용감하게 해 나가기를 바란다. 그
선택들이 모여, 미주 한인 사회의 다음 세대가 뿌리와 날개를 동시에 갖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이다. (동찬 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