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놓고 120년 동안 싸운 끝에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순간 로마는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승리가 로마 공화정을 내부에서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문제의 핵심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 이후의 분배였다. 전쟁에서 돌아온 시민 병사들이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다. 농토는 방치되어 황폐해졌고, 빚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 있었다. 땅은 귀족들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귀족들은 전쟁 포로로 얻은 노예들을 대거 투입해 거대한 대농장, 라티푼디움을 운영했다. 노예 노동은 시민의 노동을 대체했다. 시민은 일자리를 잃었다. 생산수단을 잃은 시민은 곧바로 빈곤층이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계층이 프롤레타리아, 무산계급이다. 이들은 더 이상 경제적 독립을 가진 시민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정치인에게 표를 팔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공화정의 토대였던 중산 자영농이 사라지자, 로마의 공화정도 함께 흔들렸다. 그라쿠스 형제가 토지 재분배를 시도했지만, 기득권의 저항 앞에서 두 사람 모두 살해당했다.
개혁은 좌절됐고, 불평등은 고착됐다. 결국 로마는 공화정을 잃고 카이사르의 1인 지배 체제인 제정 로마로 넘어갔다. 공화정 로마는 외부의 적에게 패배해서 망한 것이 아니다. 내부의 경제 붕괴로 스스로 무너졌다.
이 장면은 오늘날과 섬뜩할 정도로 닮아 있다. 로마의 노예가 값싼 노동력이었다면, 지금의 AI와 로봇은 임금도, 휴식도 필요 없는 초저비용 노동력이다. 이미 대량 해고는 일상이 되고 있다. 사무직, 회계, 번역, 디자인, 프로그래밍까지 안전지대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 “열심히 공부하면 안정된 직업을 얻는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구조의 변화다. 기술은 폭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있지만, 그 성과는 노동자가 아니라 소수의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로마에서 토지가 귀족에게 집중됐던 것처럼, 오늘날의 데이터와 알고리즘, 플랫폼은 빅테크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이 흐름이 지속되면 어떤 사회가 되는가. 상층부는 기술 자본을 소유한 소수. 하층부는 불안정 노동과 실업을 오가는 다수. 중산층이 붕괴된 사회다. 중산층이 사라진 사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실제 권력은 돈이 지배하게 된다. 로마가 그랬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발전을 막는 것이 아니라, 분배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첫째, AI와 자동화가 만들어내는 부에 반드시 사회적 환수 장치를 걸어야 한다. 로봇세, AI 수익 과세, 디지털 초과이윤세 같은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를 재원으로 기본소득과 강력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노동의 기준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노동 방식만이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돌봄 노동, 공동체 활동, 창작, 교육, 사회 서비스는 모두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노동이다. 이 영역을 제도적으로 보상하지 않으면 대량 실업 사회는 피할 수 없다.
셋째, 데이터는 개인과 사회의 자산이라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AI는 인류 전체의 지식과 경험을 학습해 성장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소수 기업의 독점물이 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대한 공공 통제와 민주적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소수계로 살아가는 한인 공동체는 이 변화의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 노동, 기술, 복지 정책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갖고 정치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 침묵은 곧 배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시된 경고는 형태만 바꿔 다시 나타난다. 로마가 무너진 이유는 노동이 없어서가 아니다. 부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진짜 선택지는 이것이다. 기술이 모두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소수만을 위한 제국을 만들 것인가. 그 갈림길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동찬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