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케도니안과 미국 선교 본부
– 언덕 위의 도시 –
안동일 작
워싱턴 포스트는 후버와 닉슨을 퀘이커 교도로 분류 하고 있다. 감독교는 영국 국교회 성공회를 뜻한다. 단성교는 삼위일체론을 부정 하는 유니테리안을 말한다. 의외로 유니테리언으로 분류되는 대통령이 아담스 부자(2대, 6대) 를 비롯해 근세의 태프트 등 4명이나 된다. 이들은 하느님의 단일성(Unity)을 주장하며, 예수는 신이 아니라 빼어난 인간 지도자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이같은 유니테리어니즘(Unitarianism)은 종교개혁 후 약 반세기가 지나서 나타나 한때 유럽을 풍미했었다. 미국서는 영국에서 이주해 온 ‘프리스틀리’에 의해 필라델피아에 처음으로 유니테리언 교회가 세워졌고 윌리엄 채닝이 1825년에 미국유니테리언 협회를 설립했다. 살펴 본 대로 퀘이커교 또한 기독교 핵심교리인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Trinity) 교리에 반대한다. 그렇다면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6명은 정통 기독교 인들과는 다른 신앙을 가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중요치 않다. 요체는 대통령들의 가슴에 어떤 기독교 종파를 가졌다 할 지라도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분명한 신앙의 뿌리가 있었다는 것과 그런 뿌리에서 나오는 확신을 가지고 겸양과 타협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신 앞에 선 약한 인간’이라는 명제를 근간으로 독선과 아집에 빠지지 않고 묻고 또 묻고 깨우치면서 미국을 강건하게 만들어 오늘이 있게 했던것이다. 대통령들마다 취임기도 말미에 “하느님! 도와주소서!” 했다. 이말을 한번 되뇌어 보라. 전능한 신 앞에 겸손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설사 그 전 까지는 한없이 교만 했더라도 …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789년 4월 30일 뉴욕에서 취임 선서를 할 때 성경에 손을 올리고 이 기도, 이 말 “하나님! 도와주소서!”(So help me God)라고 했다. 그 후부터 대통령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신의 축복을 구하는 이 기도는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2009년, 마이클 뉴도우 라는 이와 무신론자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해 1월 취임식을 가졌을 때 “하나님!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을 놓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특정 관점을 선전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미 대법원은 심리 끝에 대통령 취임식 때 하나님에게 한 기도는 신임 대통령의 표현의 자유와 권리행사에 해당된다고 합헌이라고 판시 했다(Newdow v. Roberts 2010).
최근인 2025년 1월 21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각료회의가 백악관에서 기도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대표 기도자로 소개한 스콧 터너 주택도시개발장관이 기도에 나섰다. 그는 트럼프 뒤에 서서 “주님,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역할에서 겸손한 자세로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방식대로 이끌고 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며 “성경에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높이며 주님을 마땅히 계셔야 할 자리에 모십니다”라고 기도했다.

터너 장관은 이어 “하나님, 이 나라의 신앙을 회복할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미국 국민에게 축복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오늘 회의에서도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했다.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참석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기도한 뒤 ‘아멘’으로 마쳤다.
트럼프는 “스콧, 정말 훌륭한 기도를 했다. 우리 모두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고 터너를 칭찬했다.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출신인 터너는 텍사스주에 있는 프레스턴우드 침례교회에서 부목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트럼프도 강건한 신앙을 과시하려는 기독교 신자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는 감리교회에 다녔으나 근자에 독립교단 으로 적을 옮겼다고 밣혔다. 유명한 휴스턴의 레이크우드 교회가 독립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다. 한번 예배에 5만명이 모인다는 이 초대형 교회는 감리교, 장로교 등 어느 교파에도 속하지 않고 오직 성경 만으로 하나님을 직접 만나다고 호언하고 있는 교회다. (맨 위 사진)
트럼프는 이번 취임 선서에 두 권의 성경을 사용했다. 1955년 주일학교 졸업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개인 성경과 의회도서관서 빌려온 링컨 성경 두 권을 놓고 선서했던 것이다. 한 권만으로는 자신의 드 높은 신앙심을 나타내기 어렵다고 생각 했던 모양이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것은 헌법상 의무는 아니나, 초대 워싱턴 때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전통이다. 대통령들에게 인류 역사상 최대 최고의 베스트 셀러 성경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조지 워싱턴 성경 (St. John’s Lodge No. 1 Bible)은 1789년 초대 대통령 취임식 때 뉴욕의 한 프리메이슨(석공조합) 지부에서 빌려 사용한 성경이다. 의회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이후 워런 하딩,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지미 카터, 조지 H.W. 부시 대통령 등이 이 성경을 다시 사용했다.
1861년 링컨이 사용한 에이브러햄 링컨 성경 역시 의회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최근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사용했다.
조 바이든 (2021년 제46대)은 1893년부터 바이든 가문이 소장해 온 12.7cm 두께의 고색 창연하고 거대한 가문 성경을 사용해 눈길을 끌었었다. 오바마는 링컨 성경과 함께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성경을 함께 사용했다. 트럼프도 2025년 1월 20일 취임식에서 링컨 성경을 자신의 개인 성경과 함께 사용했다. 특이 하게도 선서 당시 성경 위에 손을 직접 얹지는 않았으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이를 들고 곁에 섰다.
대통령들은 선서 시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를 담기 위해 특정 성경 구절을 펼쳐 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지 워싱턴은 창세기 49장(야곱의 유언)을,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네 번의 취임식 모두 고린도전서 13장(사랑장)을 선택했다.
국교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국가로 꼽히는 미국이 지난 세월동안 순탄하지는 않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종교가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어느 한계를 넘지 않았기에 이를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부인 힐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선봉에 어느 순간이건 크건 작건 대통령과 그들의 영향력과 신앙이 있었다.
미국 개신교의 주요 교파에 대해 살펴본다. 미국 기독교의 주요 교파인 회중교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는 식민지 시대부터 독립 이후까지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발전하며 미국의 종교 지형을 형성했다.
미국내에서의 역사는 당연히 회중파가 먼저였고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순으로 태동했고 발전 했다. 아다시피 당초 청교도는 특정 교파라기보다 신앙 운동의 성격이 강했다. 청교도는 영국 국교회의 가톨릭적 요소를 제거하고 성경 중심의 ‘순결한’ 교회를 만들려던 광범위한 개혁 운동가들을 일컫는 용어이며, 이들 중 상당수가 칼뱅 장로교의 신학과 제도를 따랐다. 청교도 이 안에는 각 지교회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회중파(Congregationalists)와 노회 중심의 질서를 강조하는 장로파(Presbyterians)가 공존했다.
두 집단 모두 칼뱅의 개혁주의 신학을 따랐으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 1640년대 영국에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장로교와 청교도(회중파) 모두가 공유하는 신앙의 표준이 되었다. 초기 미국 선교 현장에서는 두 파벌의 경계가 모호하여 협력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합쳐 프레스비가셔널(Presbygational):부르기도 했다.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초기 청교도들은 대부분 회중파였으나, 뒤 이어 영국에서 건너와 코네티컷 등에 정착한 이들 중에는 장로교 제도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았다. 말 한대로 주요 차이점은 치리라 부르는 교회 정치 체제에 있었다. 장로교는 개별 교회가 노회(Presbytery)라는 상위 기구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고 지역 교회들의 연합과 질서를 중시했다. 반면 회중파 청교도틀 각 개별 교회의 자치권을 우선으로 하며, 외부 기구의 강제적인 권위를 거부했다.
회중교회(會衆敎會)는 말 그대로 전체 회중의 의견에 따라 교회의 결정과 정치가 이루어지는 교회이다. 이를 조합교회(組合敎會)라고도 한다. 17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운동의 목표는 영국 교회에서 종교개혁을 완성하는데 있었다. 이 가운데 회중주의자들은 특히 종교개혁의 모토인 만인사제론을 실천하는데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 이었다.
실제 회중교회주의의 이런 만인사제론이며 성경 제일 주의가 공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발전한 것은 미국에서였다. 이 주역이 바로 플리머스 식민지의 순례자들로, 자신들의 교회정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영국 국교회를 이탈해 신대륙으로 건너와 뜻을 이뤘다. 이들 회중교회 인들은 성서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선교에 항상 중요성을 뒀다.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가 그렇듯이 세례와 주의 만찬을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정된 성례전으로 간주했다. 또한 유아세례도 인정한다.
청교도 회중교회인들은 프리머스 필그림을 필두로 계속해서 영국에서 건 너왔는데 이들은 미국으로 건너 오자 마자 메사츄세스 각지에서 교회를 세우고 1646년 9월 1일 최초의 노회를 설립했는데, 그것이 케임브리지 노회이다. 이 노회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대체적ㅇ,로 원용한 케임브리지 헌장(1648년) 회중교회 신조로 삼았다. 다만 교회 조직과 행정은 기존의 회중교회 독립 형식을 취했다.
개체 교회는 신앙고백이나 교리 문제에 있어 대체로 자유로워 타 교회나 노회의 간섭을 받지 않았고, 개체 교회의 행정은 독립에 가까운 것이었다. 처음에는 직제를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했으나, 나중에는 교사와 장로의 직제가 없어졌다.
한때 개신교중 가장 교세가 컸던 미국의 회중교회는 장로교나 감리교에 비해 크게 번창하지 못했다. 특별한 개성이 없이 점잖기만 한것이 그 요인으로 지적 된다. 당초 종교와 민주주의는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역사 내내 다른 교회 교파들과 연합에 힘썼다. 19세기 초에는 장로교도들과 연합하기도 하고, 1871년에는 ‘전국회중교회협의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이 협의회는 1931년 ‘그리스도교회총회’와 연합하고, 또 1961년에는 복음주의 개혁파 교회와 연합하여 ‘연합그리스도교회’를 탄생시켰다. 아무튼 미국의 회중교회는 전세계적인 교회로 발전하지는 못했으나 영어권의 모든 나라에는 전파되어 존속하고 있다.
장로교 (Presbyterian Church)는 주로 그 발상지로 꼽히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스코트-아일리시) 이민자들을 통해 전파되었다. 1640년대부터 뉴잉글랜드와 중부 식민지에 장로교 제도를 채택한 청교도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장로교는 신학적으로는 회중교회와 거의 동일하나 교회를 조직하고 다스리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다.
장로교의 특징은 그 이름에도 나오듯이 장로가 중심이 되는 교회라는 점이다. 가톨릭 교회가 교황과 주교가 중심이 되어 목회자를 개교회에 보내는 중앙집권적 체제인데 반해 장로교회는 개교회가 목회자를 초청하고 장로회의가 최고 의사결정권을 갖는 개교회중심의 교회체제다.
장로교의 가장 큰 특징은 “예정론”에 있다. 몇차례 언급 했다시피 구원에 관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이론이다. 만세 전에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를 미리 예정하시고,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가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보존의 은총을 주시고, 마지막에는 실제 구원을 얻도록 이끄신다는 것이다. 이 교리는 구원의 영역에서 인간의 자만심이 들어갈 여지를 없애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한다는 장점이 있다.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뉴욕 펜실베니어 등 각지에서 교세를 닦은 장로교는 1706년 필라델피아에서 최초의 노회를 설립해 미국 장로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편 감리교(Methodist Church)는 역시 영국 국교회 내의 갱신 개혁 운동으로 시작된 교파로 식민시대를 거쳐 독립 전쟁 이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교파 중 하나다. 회중교회나 장로교 보다는 한참 뒤인 1730년대 영국에서 존 웨슬리(John Wesley) 형제의 활동에서 시작되었으며, 1740년대부터 미국에 평신도 설교자들이 유입되며 전파되었다. 1784년 볼티모어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컨퍼런스를 통해 ‘미국 감리감독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가 공식 조직되었다. 순회 설교자(Circuit Riders) 제도를 도입하여 서부 개척지 구석구석까지 복음을 전하며 19세기 미국 최대 교단으로 부상했다.
감리교가 장로교와 다른 점은 예정론의 해석에 있다. 성경에는 예정론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감리교의 입장이다. .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다 예정된 것이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아담을 벌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원래 지옥 가기로 예정된 사람은 예수 믿어도 소용없단 말인가?
예정론이 설명해주지 못하는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이 감리교의 신학이다.
감리교는 “복음적 신인협동설”을 가르친다. 즉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일한다는 이론인데, 하나님이 먼저 사람에게 복음에 응답할 수 있는 예비적 은총을 주시면, 그는 그 은총에 힘입어 자신의 의지력을 발동해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구원의 은총을 주신다는 것이다.

감리교의 두 번째 특징은 성서와 이성과 전통과 경험의 조화에 기초한 신앙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성서가 신앙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되지만 성서를 독단적으로 해석하면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므로 균형 잡힌 성서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강요한다면 여자는 교회에서 입도 뻥긋 하지 말고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이성과 전통과 경험에 비추어 이해하면 성령의 의도에 맞는 올바른 해석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침례교(Baptist Church)는 개인의 회심 경험과 성인 침례를 강조하며 미국 내에서 거의 자생적으로 성장했다. 화란 스콧트랜드에 침례파들이 있었지만 초기 단게에 그쪽과 큰 연계는 없었다.
앞서 살펴 본 대로 1638년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가 로드아일랜드에 미국 최초의 교회를 세웠으며, 초기에는 교세가 미약했지만 18세기 중반 제1차 대각성 운동을 거치며 뜨거운 복음주의적 열정으로 급 성장했다.
침례교파의 특징은 강력한 개별 교회 자치주의를 바탕으로 남부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으며, 19세기 중반 감리교와 함께 미국 개신교의 양대 산맥을 이루게 된다. 특히 제2차 대각성 운동 (1790~1840년대)시기에 감리교와 침례교는 대중적인 부흥 집회를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장로교의 교세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침례교는 개인적 신앙의 결단을 가장 중요한 원리로 가르치는 교단이다. 그래서 교회의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정교분리의 원칙) 유아세례의 가치를 부정한다. 또 침례교는 국가교회의 개념을 거부했다.
침례교인들은 신앙을 철저히 개인적인 선택사항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국가종교의 개념을 거부했고, 그래서 많은 국가에서 이단자로 박해를 받았다. 또한 침례교는 다른 교단들과는 달리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아는 개인적인 신앙의 결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신앙의 배경 때문에 현재 침례교에서는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혹은 신앙의 자유를 대단히 중요시 여기고 철저히 개교회 중심으로 교회를 치리한다.
2025년 말 현재, 침례교는 미국내에서 가장 많은 신도 수를 자랑하는 개신교 수위 교단이다. 어떻게 해서 침례교가 미국 개신교 최대 교단이 되었는지는 다음에 살펴 보기로 한다.
이들 미국 개신교 주요 3 교단은 1840~50년대에 노예제를 놓고 갈등을 빚게 되는데 노예제 찬반 문제로 인해 세 교단 모두 남북으로 분열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이는 미국 내전(남북전쟁)의 전조가 되기도 했다.
미국 독립전쟁(1775~1783) 당시 미국 내 기독교 교단들은 신학적 신념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취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