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트럼프 대통령 또 만나는 마영애 총재
11일, 워싱턴서 열리는 대통령 갈라 디너에 초청 받아
꿀벌은 슬퍼 할 틈이 없단다. 열심히 꿀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꼭 해야 할일이 있는 사람이 그렇다. 북한 인권 활동가 마영애 국제 북한 인권 연맹 총재는 요즘 적잖이 들떠 있다. 오는 11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로 돼 있기 때문이다. 마총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은 몇 차례 되지만 이번은 특별하다. 꼭 해야 할일이 있기 때문이다.
마 총재는 최근 이스라엘 동맹 재단 (Israel Allies Foundation)이 여는 갈라 어워즈 디너(Gala Awards Dinner) 에 초청 받았다. 이 행사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정치·종교 지도자들을 네트워킹하고 후원하는 미국 기반 단체가 매년 여는 고급 기부 모금 갈라(fundraising gala)다. 특히 올해(2025년) 행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주최자이자 초청자(Honoree)로 세운 디너 이벤트다. 마총재는 그간 미국에서 받은 은혜를 보답한다는 의미로서 소정의 액수의 기부금을 기꺼이 준비했다.
오는 12월 11일 워싱턴의 메리옷 호텔서 열리는 것으로 돼 있지만 보안상 확정은 아니란다.
이스라엘 동맹 재단 (IAF)은 2007년 워싱턴 D.C.에서 설립된 국제 비영리단체로,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을 연결하여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의회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IAF는 미국과 유럽·남미 등 50개국 이상에서 의원 연대체(Caucus)를 운영하며, 이스라엘 안보·예루살렘 문제·종교 자유 등 핵심 정책을 지지하는 외교·정책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유태인 재단이다.
대통령이 주최하는 행사인 만큼 신원조회가 필수 인데 신원조회가 끝났기에 이제 입고 갈 옷만 고르면 된다.

“나의 옷차림은 한복입니다. 태극기 문양이 있는 한복을 입고 입장할 겁니다. 독재의 땅을 탈출한 마영애, 자유대한에서 마영애를 받아주셨던 논산 금당을 잊지못하는 충청도의 딸 마영애가 한복을 입고 12월11일 미국 대통령 행사장에 당당히 들어섭니다.”
그녀가 이번 행사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탈북민 문제와 625 참전 용사들의 유해 반환 문제다. 중국이 탈북민 북송을 더 못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도와달라는 것과 아직도 북녁 땅에 산재 돼 있는 참전 용사들의 유해 송환에 더 힘을 써 달라는 얘기다.
트럼프대통령을 만나면 이 얘기를 꼭 하겠다고 한다.
”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나셨고 또 앞으로도 만날 기회가 있으시다는데, 중국의 탈북민 강제 북송을 꼭 막아 주십시오, 대통령님이라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노벨 평화상도 한층 가까와 지십니다. ”
잘 아는 대로 탈북민에 대한 그녀의 걱정과 성원, 그리고 후원은 진심이다. 지난 7월 17일 오전 버겐카운티 클로스터 헤링턴 에브뉴와 니커보코 로드 교차로 소 공원에 탈북 과정 중 희생된 1만여 명의 탈북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마침내 건립 됐다. 이 프로젝트는 해외 최초로 진행된 탈북자 추모비 사업으로, 그 의미와 상징성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추모비는 단지 과거를 기리는 상징을 넘어, 현재도 자유를 찾아 생명을 건 여정을 이어가는 수많은 탈북자들, 그리고 북한 내부에서 고통 받는 2천5백만 동포의 인권 회복과 국제사회의 각성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다.
마 총재에 따르면 현재 약 30만~40만 명의 탈북자가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에서 신분을 숨긴 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단다. 반면, 대한민국에 입국해 공식적인 신분을 회복하고 정착한 탈북자, 새터민은 약 3만5천 명 정도. 인권 단체와 주요 언론의 보고서에는 자유를 찾아 탈북을 시도했으나 중국, 몽골,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제3국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망했거나 강제 북송 후 처형된 사례는 약 1만 건에 달한다고 기록 되어 있단다. 이번 추모비는 바로 이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탈북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기억하기 위한 상징이다.
이 기념비 건립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후원이 컸다. 마박사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몇 차례 만나 격려를 받는 등 인연이 깊은데 트럼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이던 지난 2021년에도 그의 마라라고 별장에 초청을 받아 두 시간 동안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마박사는 이 기념비 제작 프로젝트도 트럼프 대통령의 격려와 지지에 큰 힘을 받아 추진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추모비는 탈북민 인권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각별한 당부와 탈북민들의 염원과 눈물로 제작됐다”며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기에 이 프로젝트가 이루어져 그 의미는 이루말 할 수 없다”고 마 박사는 말했었다.
추모비 건립 프로젝트에는 많은 비용이 투입되었는데 이 모든 비용은 국제 북한 인권 연맹 단체와 마박사 본인의 사비를 함께 출연했다. 추모비는 한국에서 제작되어 뉴욕 항만 세관 통관 절차를 밟았다.
마박사는 제막식에서 “반북 극좌 성향의 단체와 일부 개인의 방해와 음해, 그리고 민원 제기로 인해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에 불구하고 국제 북한 인권 연맹의 핵심 멤버들과 뉴욕·뉴저지의 구국동지회, 지역 한인회 관계자, 지역 공무원, 미국인 유명 정치인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이 일이 가능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녀가 참전용사 유해 발굴에 진심을 쏟고 있는 것은 자신이 군 출신 이라는 이유 말고도 개인적으로는 시아버지가 국군 참전 용사이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 국군의 많은 6.25 참전 용사 유해가 아직 북에 있습니다. 포로가 된 뒤 조국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시아버님의 아픔을 절감하고 있기에 트럼프 대통령님을 만나 악수하게되면 , 그분의 손을 꼭 잡고 대한민국 6.25참전용사들과, 포로들의 유해, 그리고 미군 청년들의 유해와 UN 참전 용사들의 유해를 꼭 자국의 고향 (대한민국과 미국, UN 참전국)으로 올 수있게 북한 김정은에게 강요해 달라고, 노력 해달라고 꼭 말씀드릴 것 입니다.”
마총재는 활동하는 한인들 중에 자기만큼 트럼프 대통령을 많이 만나고 소통하는 사람은 또 없을거라며 자부심과 자랑이 대단 하다. 트럼프 1기 때 마라라고에 초대받아 격려를 받았고 2기 때 트럼프 타워에 초대 받았었고 취임식에도 초대 받아 밖이 아닌 안에서 행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최자가 되는 이스라엘 행사에 초대 받아 대통령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게 된다.. .
“지역사회와 미국 국민을 위해 봉사해 주신 귀하의 지속적인 헌신에 감사드린다. 귀하께서는 미국과 미국 국민을 위한 더 강한 미래를 위해 계속 봉사하고 헌신해 줄 것으로 믿는다.”
마영애 총재가 지난 2018년 12월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평생 공로상’과 상패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그녀의 활동이 강한 미국을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 유난히 눈에 뜨인다.
마영애 총재는 탈북 난민인권협회 미주대표, 미주탈북자선교회 대표 뉴욕 구국동지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자유, 탈북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투쟁해 오고 있다.
마영애 박사는 도미 후 2004년 종교 선교학 박사 학위를 받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1천8백회 이상의 찬양, 간증 집회를 열고 탈북 인권 선교사로활동 해 왔다. 동시에 사업가로도 성공적인 길을 걸었는데 (주)마스 코리안 소세지를 설립하여 “평양순대” 라는 브랜드를 런칭, 미주 약 30여개의 거래처 에 납품하여 탄탄한 강소기업으로 우뚝 서 탈북민 자립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는다.
2007년에는 ‘미주 탈북자 선교회’를, 2015년에는 ‘국제 탈북민 인권연대’를 설립했고, 기업 수익 일부를 탈북자 구출과 한인 2세 장학 사업에 꾸준히 사용해 왔다.
그 결실로 2024년 8월 14일,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비영리단체 지위를 공식 승인받아 ‘국제 북한 인권 연맹의 위상을 높이는 데 성공했으며, 도전한국인 운동본부 에서 제정한 국제 인권상을 비롯해 탈북민 최초로 한미동맹 70주년 여성포럼 연맹 단체에서 평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인민군 예술단으로 9년여 복무한 그녀는 지금도 북한에서의 군 생활을 자신 인생의 변곡점 터닝 포인트였다고 말한다.
마영애씨와 기자의 인연은 묘하다. 1990년대 중반 기자는 전방 철책 사단의 대북 방송 요원으로 군 생활을 했는데 그 시기 마영애 씨도 북쪽 철책 사단에 한시적으로 시찰을 나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전연 지대에서 근무하는 인민군 하전사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밤, 추위 속에서 전연 지대 경계근무를 서느라 오빠들은 얼마나 고생이 많으실까요. 잠깐이지만 옥희(기자의 당시 가명)의 목소리와 함께 하며 고생과 시름 잊으시길 바래요.” 로 시작되는 내 방송을 분명히 들었다고 우긴다.
그러면서 자신의 후일 탈북에 내 책임도 일정 부분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군 생황의 경험이 자신의 인생에서 불굴의 투지와 난관을 극복하는 용기를 준 터닝포인트 였다는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미국에 정착하게 된 사연도 마찬가지이다. 2004년 그녀는 공화당 의원들의 초청으로 미국 의회에 북한의 인권상황을 증언하기 위해 서울서 만나 재혼한 탈북민 출신 남편과 함께 미국에 왔다. 그 무렵은 북한과의 관계를 신경 많이 쓰던 한국의 진보 정권 시절로 북한의 인권 상황을 규탄하는 미 의회 보수계 청문회에 참석차 떠나는 그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극력 만류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그녀는 북에 대해 심한 말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 가지 쓰고 오게 됐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질리 없었고 그녀는 동행한 정부요원과 대판 싸운 끝에 여권을 집어던지고 미국에 주저 앉았다.
“그렇게 되고 나니 하릴 없는 무국적자에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내 여권이 말소돼 신분을 증명 할 수 없으니 미국 내에서 무슨 수속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당시 나를 초청했던 공화당 의원들도 너무나 안타가워했죠. ”
그 뒤로 그녀는 뉴욕 플러싱에서 시작해 버지니아 LA등 미 전역을 남편과 함께 떠돌며 갖은 고생을 다 했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만나 신학교를 다녔던 것이 인생의 나침반이 됐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던 사이 한국엔 보수 정권이 들어서 마침내 그녀의 신분 문제가 해결이 됐다. 이명박 정부 때는 직권으로 대한민국 여권을 재발급 받았고 박근혜 정권땐 미국 내에서의 신분 문제가 완전 해결 됐단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매일 같이 유엔 북한 대표부 앞에서 1인 시위하며 최고 존엄을 타도하라고 외쳤던 ‘독종, 마영애’.
그녀가 순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LA에서부터 시작해 연원이 있다. 처음부터 호평을 받아 비즈니스가 잘됐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정통 평양식으로 멥쌀과 찹쌀을 넣어 순대를 만들었는데 맛은 있다면서도 사람들이 사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동부 쪽으로 다시 와 사업을 확장하면서 서울식으로 당면을 넣어봤더니 이게 먹힌겁네다.”
그렇다고해서 무조건 당면만 넣었다고 호평 받은 건 아니다. 그녀가 웃으면서 말해주지 않은 네 가지 비밀 레시피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뉴욕 뉴저지에서 그녀의 순대를 안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전설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또 하나, 그녀의 사업 번창의 비밀.
“우리 마 사장님 같은 사람 또 없습니다. 제가 미국에 30년 살면서 식당일 등 안해 본 일 없는데 이런 사장님 못봤어요.”
한남 마트 순대 매장에서 수 년째 일하고 있는 한 이모의 증언이다. “우리 사장님이요, 단 한번도 급여 날짜 어긴 적 없고 월급만 딸랑 준적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순대집에서는 파는 것 보다 사장님이 전화해서 누구 오면 순대 좀 넉넉히 썰어주라고 한게 더 많습니다.”
퍼주면 퍼줄수록 하나님이 더 주신다는 마 사장의 얘기는 우리는 실천을 못할 뿐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특히 탈북민들이야 우리가 상상도 못한 고생을 했겠지만 그중에서도 미국 까지 와서도 계속된 그녀의 고생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누구보다도 크다. 특히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에 대해선 인종도 국적도 정치성향도 불문인 것이 그녀의 철칙이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곤 한다. 특히 같은 탈북민들이나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그럴 때면 더 서운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다 같이 돕고 살아야죠’ 하며 활짝 웃는다.
손도 큰 그녀는 이제는 탈북민들을 돕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미국 내 우리 동포뿐만 아니라 타민족 가운데서도 생활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이 마음 놓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장학재단 설립을 준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던 무국적자, 신분도 안정적이지 않았던 내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엄지척 하는 ‘노스코리안 영애마, 넘버원 비즈니스 우먼’이 되기까지는 미국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겁니다. 이제는 내가 미국으로 받은 은혜를 사회에 환원할 때입니다.”
” 탈북자 중국 소환 문제와 6.25참전 국군 포로, 미군 유해 송환문제는 놓칠수 가 없는 겁니다. 안기자님 정말 기사에 관심을 넣어주시리요. 영애 마 언니가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철책선 언니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편지도 작성 중에 있단다. 행사장에서의 독대 시간도 갖게 되도록 작업 중이란다.
그녀에 의하면 이번 갈라에는 미국 내에서도 보수계 인권 운동을 하는 박사들 중심으로 초청을 받았는데 자기도 이번에는 목청 큰 거리의 탈북민 활동가 보다는 인정받는 ‘마영애 박사‘로 초대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통일 조국을 꿈꾸며 화려하게 태극기가 디자인 된 한복을 입고 행사에 참여할거라고…
그녀의 건투를 독자들과 함께 진심으로 빈다. (안지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