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줄 잇고 있지만…
미국의 주요 서방 동맹국인 영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했다. 한국과 일본은 합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반대하는 미국을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21일 방송 연설에서 “평화와 두 국가 해결책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기 위해 영국은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 이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포르투갈도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다. 프랑스는 22일 국가 인정을 선언한다. (…) 미국은 여전히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반대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당국자는 21일 “우리의 초점은 보여주기식 제스처가 아닌 진지한 외교에 있다”며 서방 주요국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보여주기”라고 비난했다.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22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한 여러 국가들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서 진지하고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도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 “일본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 문제와 관련해 일관되게 ‘두 국가’ 해결 방안을 지지해온 만큼, 국가 승인 자체는 문제가 아니며 언제 승인할 것인지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아사히신문은 “미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을 보류하도록 일본 정부에 비공식 요청을 했다”고 보도했다.
Q.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의 의미와 ‘두 국가 해법’은 무엇인가?
A.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들과 기존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그 땅을 놓고 다퉈온 것이 팔레스타인 분쟁이다. 유대인들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에 이어 팔레스타인 전역을 점령했으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고 난민으로 살아왔다.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을 분할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라는 유엔 결의안 181호 등으로 팔레스타인에도 국가 건설을 인정했다.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2개의 국가가 있다는 두 국가 해법이 국제사회에서 공인됐으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점령을 확대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막았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들과 4차례 전쟁을 했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투쟁에 봉착하자, 1993년에 미국의 중재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한다는 오슬로평화협정을 맺었다. 두 국가 해법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이 협정을 주도한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극우세력에 암살되고,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반대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 등 강경 우파 세력들이 집권하면서 두 국가 해법은 다시 표류했다. 오슬로평화협정 이후 많은 국가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두 국가 해법을 인정하면서도,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은 미뤄왔다. 팔레스타인 독립국이 실질적으로 건국될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2023년 10월7일 가자 전쟁이 발발했다. 휴전을 거부해온 이스라엘이 지난 8월부터 ‘기드온의 전차 2’ 작전으로 가자지구를 완전히 점령하려는 동시에 서안에서도 점령지를 확대하자, 서방 국가들도 그동안 미루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나선 것이다. 이스라엘의 점령을 방관한다면, 두 국가 해법의 근거가 말살될 것이라는 판단에 더해 이스라엘에 대한 외교적 압력을 높이려는 의도이다.
Q.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이 처음이 아니다. 왜 이번에 영국 등의 인정이 중요한가?
A. 21일 팔레스타인을 인정한 국가는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포르투갈이다. 프랑스도 유엔 총회가 열리는 22일에 동참했다.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주요 서방국가이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유엔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무엇보다도,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이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로 최고로 긴밀한 동맹국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편들던 미국에는 큰 외교적 압력이다. 이제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150개국 이상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게 됐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 안 하는 나라는 미국 뿐이다.
특히, 영국은 1917년 당시 아서 밸푸어 장관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허용하는 이른바 밸푸어 선언을 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제 문제로 만든 장본인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만든 장본인인 영국이 이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문제가 역사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Q.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나 분쟁 해결에 획기적 진전이 되는가?
A.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스라엘이 절대로 수용하지 않고, 미국도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조처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가속화하고 굳힐 우려가 크다.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온 네타냐후 총리는 21일 “우리는 유대와 사마리아(서안)에서 유대 정착촌 건설을 배가했고, 그 길로 계속 갈 것”이라며 “우리 영토의 심장부에서 우리에게 테러 국가를 강요하는 최근의 시도에 대한 대응은 내가 미국을 방문한 뒤 나올 것이다. 기다려라”라고 말했다.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즉각적인 대항책이 요구된다”며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주권” 인정을 위한 제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극우 성향 재무장관인 베잘렐 스모트히리는 지난 8월14일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개념을 “묻어버릴” 서안에서 정착촌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그가 발표한 ‘E1 지역 정착촌 프로젝트’는 서안에서 추가적으로 3400호의 정착촌 주택을 건설하고, 동예루살렘과 서안의 나머지 지역을 완전히 단절시키는 한편 서안의 80% 이상을 완전히 점령하는 구상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서안에서 61%를 완전히 점령하고 있고, 21%에서는 치안권을 갖고 있다. 치안권을 가진 지역도 완전히 점령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번 영국 등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도 가자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이런 점령 확대에 촉발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네타냐후의 공언처럼 오히려 가자와 서안에서 점령 확대로 팔레스타인 국가의 싹을 완전히 자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국제적 고립 등 대외관계의 위기는 깊어질 것이다.
Q. 이스라엘에 미치는 영향을 무엇인가?
A. 이스라엘이 점령 지역을 확대할 것이 확실시된다. 국제사회는 이제 그런 이스라엘의 침략과 대량학살에 대해 더이상 외교적 수사로만 머무는 것이 힘들게 됐다.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함으로써, 국제법적으로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행동을 불법으로 보고 대응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2023년 스페인을 시작으로 네덜란드·벨기에·이탈리아·슬로베니아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했고, 유럽 국가 중 이스라엘에 가장 우호적이던 독일도 지난 8월 동참했다. 또, 유럽연합(EU)은 지난 9월 무역 혜택 중단, 극우 각료 제재 등 이스라엘에 대한 포괄적인 제재를 제안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최근 연일 대규모 반이스라엘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 추진해온 아브라함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해온 아랍 국가들도 최근 이스라엘의 카타르 공습 이후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포기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스라엘의 서안 점령이 금지선을 넘는 것이라며,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를 격하시킬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스라엘은 가자 전쟁 이후 레바논·시리아·이란·예멘에 이어 카타르까지 공격해왔다.
네타냐후는 지난 15일 “이건 일종의 고립이다. 자급자족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앞으로 수년간 우린 아테네나 슈퍼 스파르타가 될 것이다. 다른 선택이 없다”고 연설했다.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으니, 과거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처럼 강한 국방력과 폐쇄적 경제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증시는 2% 폭락하는 등 이스라엘 내에서 우려와 반발이 일었다.
Q. 팔레스타인으로서도 국가의 건설과 말살의 기로에 선 것이 아닌가?
A. 중대한 국면이다. 네타냐후는 전쟁을 포기하지 않고, 차제에 점령을 지속하려 할 것이다. 그는 가자 전쟁을 막지 못한 책임을 피하려고 그동안 전쟁을 확대해왔다. 전쟁을 중단하는 순간 정권에서 물러나야 한다. 정기 총선은 내년 10월이다. 네타냐후는 가자지구를 점령하고서는 총선에서 다시 정권 유지를 호소할 것이 분명하다. 한가지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서 이스라엘과 가자 전쟁에 대한 염증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네타냐후에 끌려다니며 그의 전쟁 확대를 추인해왔다. 미국도 내년 11월이 중간선거여서 그때까지 트럼프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운명이 네타냐후와 트럼프의 정권 계산에 좌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