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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컬럼> 길리건의 경고와 현재 미국

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 센터 대표)

미국의 선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최고의 요인은 경제상황이다. 그래서 대선과 중간선거에서 실업율과 주가 그리고 이자율은 초미의 관심이 된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요인과 자살 간의 관계를 사회학적으로 정립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Émile Durkheim)은 1897년 “아노미적 자살(Anomic Suicide)”이라는 개념을 설명하였다. 이는 사회가 급격한 경제적 변화를 겪을 때, 기존의 규범과 가치가 무너져 개인이 혼란과 무규범 상태(아노미)에 빠지면서 자살율이 증가한다고 했다.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였던 정신과 전문의 제임스 길리건(James Gilligan) 박사는 2011년 그의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를 통해 정치 성향과 인간의 죽음 사이에 충격적인 상관관계가 있음을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 100년 이상의 미국 공식 통계를 분석한 결과, 보수 정당이 집권할 때마다 살인율과 자살율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경향성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길리건은 자살과 살인을 개인의 정신 질환이 아닌, 사회적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한다. 길리건은 굴욕감(Humiliation)이 폭력의 가장 강력한 원인이라고 본다. 주로 복지 축소, 규제 완화, 세금 감면을 통한 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초래한 정책들이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에게 경제적 실패와 사회적 무시라는 형태의 굴욕을 안겨주기 때문이라 했다.
그리고 이 굴욕감으로 인한 분노와 절망이 사회 바깥으로 표출되면 살인이 되고,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면 자살이 된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살인율과 자살율이 동시에 움직이는 경향이 보인 것은 이 두 극단적인 행위가 동일한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에서 비롯됨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즉,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립과 무한 경쟁이 사회적 안전망을 해체하고,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을 극한의 스트레스와 고립 상태로 내몰았다는 결론이다. 길리건에게 덜 해로운 정치란 사회 구성원의 굴욕감을 최소화하고 경제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치인 셈이다.
길리건의 연구는 2007년까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후의 미국 사회에서도 그의 경고는 소름 끼치도록 유효하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 내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극단화되었다. 이로 인해 청년층과 중년층 사이에서 약물 과다복용, 알코올 관련 질환, 자살을 포괄하는 이른바 절망의 죽음(Deaths of Despair)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길리건이 지적한 경제적 불안정, 사회적 고립, 굴욕감이 이 현상의 핵심원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길리건이 말한 아노미(Anomie, 무규범 상태)를 전 세계적으로 극대화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부의 대응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고, 경제적 기반이 취약했던 계층은 직격탄을 맞았다. 사회적 유대와 규범이 무너진 상태에서 길리건이 경고한 폭력 증가 가능성은 현실이 되었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는 길리건이 분석했던 사회적 응집력 약화를 상징한다. 정당 간의 단순한 정책 대립을 넘어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와 비인간화가 만연하면서 길리건이 우려했던 분노의 사회적 표출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는 &#39;내부로 향한 자살 뿐 아니라 외부로 향한 폭력의 증가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된다.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약 1만 5천 년 전 부러졌다가 치유된 대퇴골을 고대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으로 보았다. 원시시대에 다리가 부러지면 스스로 사냥하거나 도망칠 수 없어 죽음에 이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러진 뼈가 회복된 흔적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다친 사람을 돌봐주고 식량과 안전을 제공했음을 뜻하며, 이는 곧 공존과 협력, 공동체 돌봄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상황이 어려울수록 사회적 굴욕감을 줄이고, 불평등을 누그러뜨리며, 다시 공동체적 안전망을 복원시키려는 그런 정치인들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동찬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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