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참여 센터 대표)
민주주의의 요람, 아테네가 제국주의의 독에 취했다. 델로스 동맹의 몰락은 맹주가 공동의 대의를 버리고 자국의 이익을 탐할 때 발생하는 비극의 고전이다.
페르시아의 위협이 걷히자, 아테네는 동맹을 노골적인 아테네 제국으로 변모시켰다. 공동 방위를 명목으로 거둬들인 공납금은 아테네의 금고로 유입됐고, 동맹국들은 군함 대신 현금 납부를 강제당했다. 이 막대한 자금은 파르테논 신전을 세우는 등 아테네의 번영을 위한 사업에 전용되었다. 동맹 기금의 델로스 섬 이전은 동맹이 단순한 연합체가 아닌 아테네의 속국임을 선포한 상징적 행위였다.
아테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동맹국들의 내정에 깊숙이 간섭하며 민주정을 강요했고, 탈퇴를 시도하는 도시국가는 군사력으로 무자비하게 굴복시켰다. 이러한 패권적 전횡에 대한 동맹국들의 불만은 임계점에 달했고, 결국 아테네를 견제하는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기원전 431년부터 27년간 이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의 패배와 델로스 동맹의 붕괴를 가져왔다. 이 전쟁은 그리스 전역을 쇠퇴의 길로 밀어 넣었고, 폴리스 체제는 힘을 잃고 결국 외부 세력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맹주가 연합을 제국으로 변질시킬 때, 이는 곧 자멸의 씨앗이 된다는 역사의 준엄한 교훈이다.
오늘날, 현대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이 아테네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전후 자유무역 질서의 설계자이자 수호자였던 미국의 역할은 패권적 이기주의 앞에서 퇴색하고 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는 안보(무역확장법 232조)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본질은 자국 산업 보호와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노골적인 경제 목표였다.
이러한 일방적 조치는 동맹 관계를 안보 우산의 대가를 요구하는 거래 관계로 격하시켰다. 한국, EU, 일본 등 핵심 동맹국들에게까지 고율 관세가 부과되었고, 관세 철회를 조건으로 대규모 투자와 구매를 압박하는 협상 전략이 구사되기도 했다.
미국은 관세를 단순한 무역 도구가 아닌, 지정학적 동맹 관계를 재편하고 경제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 행태는 동맹국들의 신뢰를 심각하게 저하시키며,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증폭시킨다.
아테네의 전횡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촉발해 패권 붕괴를 맞았듯,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강화는 장기적으로 동맹 네트워크를 약화시켜 스스로의 글로벌 영향력을 훼손할 위험을 내포한다.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이기심이 델로스 동맹을 해체시킨 역사는, 오늘날 미국이 직면한 패권적 위기와 민주주의의 딜레마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경고음이다. 패권은 영원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이기심에 의해 무너진다. (동찬 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