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절기로는 봄이 왔지만, 매서운 추위가 여전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농부는 추위에 움츠리기보다 묵묵히 논밭을 갈아엎어야 한다. 춥다고 파종을 미루다가는 가을에 쭉정이밖에 거둘 게 없기 때문이다.
외적이 쳐들어 오거나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며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던 것처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야 한다.
지금 미국은 격변의 시기에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같은 가치들이 흔들리고 있다. 아울러 이 가치들을 바탕으로 작동하던 사회 시스템이 빠르게 변하면서, 특히 소수계 이민자들은 초법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어서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위기 속에 놓인 한인 커뮤니티
지금 추방 명령을 받은 수많은 이민자들이 열악한 구치소에 수감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주권자를 포함한 합법적 체류자들도 과거 해결되었던 작은 경범죄로 인하여 이민구치소로 체포되고 추방되고 있다. 최근 국토안보부 예산이 대폭 증액되면서 단속 요원이 늘고 있어서 이런 상황은 더욱더 심해질 것이다. 또한 업소마다 I-9 양식을 요구하는 단속이 대규모로 들이닥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다.
이민단속으로 노동력 수급이 안되는 상황에서 관세로 인한 물가 폭등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한인들에게 생존의 기로를 묻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걸었던 공약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미래의 미국에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후세의 평가에 맡겨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거대한 격변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격변은 한인 커뮤니티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70~80년대 이민 1세대가 땀과 노력으로 일구어 온 스몰비즈니스들이 무너지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직능협회들도 급격히 와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곧 한인 커뮤니티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한때 맨하탄에는 뉴욕 한인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무역, 델리 그로서리, 세탁 같은 업소들이 이제 거의 붕괴되었거나 붕괴직전에 있고, 뉴욕 한인회만이 이제 맨하탄에 있을뿐이다.
새로운 씨앗을 심어야 할 때
이 위기 속에서 우리는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다. 한인 사회의 상징적 역할을 해왔던 한인회가 이제는 새로운 역할로 거듭나야 한다. 흩어지고 있는 한인들의 힘을 모아내고, 한인들의 실질적인 삶과 함께 하면서 커뮤니티를 실질적으로 지탱해 줄 커뮤니티 센터로 한인회가 변해야 할 것이다.
한인 밀집 지역 곳곳에 커뮤니티 센터를 세워 결혼식부터 장례식까지,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각종 사회복지 서비스와 권익 신장을 위한 활동을 펼치는 한인 사회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이 지속되면 2세대, 3세대가 어릴 때부터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커뮤니티 센터를 ‘자신들의 커뮤니티 자산’으로 인식하게 만들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커뮤니티 센터의 이사가 되고, 직원이 되고, 후원자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동포들이 추방당하고, 스몰비즈니스가 무너져 한인 커뮤니티의 근간이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격변기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방식의 커뮤니티로서 한인 커뮤니티 센터라는 씨앗을 심고 함께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동찬 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