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는 美 AI 기업들, 인프라 구축에 차질 불가피
트럼프 “반도체 관세, 예외 없어” vs 업계 “생산기지 이동 비현실적”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세계 최고의 AI(인공지능)를 개발하겠단 미국의 목표 달성에 치명적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18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반도체 업계 관계자 및 애널리스트들은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들이 관세 폭탄을 피해 미국 내 반도체 공장 및 AI 데이터 센터를 새로 구축한다면 수년이 걸리고 수많은 비용 출혈이 발생해 결과적으로 미국의 AI 개발 역량을 확장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라 경고했다.
컨설팅 기업 세미어낼리시스의 스라반 쿤도잘라는 “트럼프 관세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이 미국의 AI 우위 확보를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중국의 경쟁자들을 앞서기 위해 첨단 AI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에만 AI 인프라에 3000억 달러(약 427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들 기업들이 수많은 부품을 여러 나라에서 조달하는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AI 인프라 구축 등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오픈AI, 소프트뱅크, 오라클이 주도하는 5000억 달러(약 711조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스타게이트’ 개발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데이터센터에서 팬(fan) 스위치 같은 아주 사소한 부품 하나가 (관세로 인해 수입이) 지연돼도 전체 프로젝트가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반도체 관세 예외 없어” vs 업계 “반도체, 관세 부과 쉽지 않아…생산기지 이동은 비용 출혈 커”
현재 미국 정부는 반도체 및 관련 장비·소재·부품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 중이다. 이 조사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이뤄진다. 1962년 도입된 이 조항은 수입품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관세 부과 등 수입제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수입산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에 대해 232조를 근거로 각각 25% 관세를 부과했다. 그는 12일(현지 시간)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서비스) 트루스소셜에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다”며 반도체 관세 면제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대부분의 반도체가 스마트폰, 노트북, GPU처럼 이미 완제품에 내장된 상태로 미국에 들어오기 때문에, 이들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가령 엔비디아의 첨단 AI용 GPU는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에서 대형 언어 모델(LLM)을 훈련시키는 데 사용되는데 이는 서버나 서버랙 형태로 미국에 들어오고 수많은 국가를 거쳐 조립되고 가공된다.
미국 공급망 데이터분석 전문업체 Z2데이터의 최고경영자(CEO) 모하마드 아흐마드는 “GPU 자체가 관세에서 면제되더라도 구성 부품에 관세가 붙으면 전체 비용이 올라간다”며 “제품 카테고리가 워낙 많아 부품 하나만 문제 생겨도 공급망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세 폭탄을 피해 미국 내 제조시설을 구축한다고 해도 이는 수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비용 출혈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쿤도잘라는 “대만산 수입품에 32% 관세를 부과한다 해도, 여전히 미국 내 생산 비용이 더 비쌀 것”이라며 “이로 인해 미국 내 생산기반 재구축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트럼프 관세 폭탄에 직격탄을 맞은 애플의 경우, 관세를 피해 생산 기지를 옮기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이는 비현실적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투자회사 웨드부시의 애널리스트 댄 아이브스는 “현실적으로 애플이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공급망의 10%를 옮기는 데 3년의 시간이 걸리고 300억 달러가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