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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북> ‘그럴싸하게’ 오는 ‘그것’- 영화 ‘검은 수녀들’이 일깨워 주다

안지영 기자

” ‘그것’은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나  너무나  그럴싸한  이유로,  이름으로 오기 때문.”

지난 주,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집 가까운 곳 오버펙 파크 바로 지나 위치한 AMC에서 송혜교 주연의 한국 영화 ‘검은 수녀들’이 개봉됐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화제 였던 ‘검은 사제들’ 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 또한 엑소시즘을 소재로한 영화인데 무엇 보다도 구마의식 집전자가 ‘수녀’ 라는 점이 이색적이다. 그래서 였는지 머리 검고 한국어를 쓰며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검은 수녀들을 보러 들어가는 것 같았다.

평일 오후 였음에도 해당 상영관에는 자리가 꽤 채워져 있었다. 영화의 내용은 여기서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유튜브나 인터넷을 찾아 보면 얼마든지 영화 보다 더 찐한 리뷰들을 볼 수 있을테니.
조용히, 너무도 강렬히 내게 다가 온 몇 장면만을 놓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래도 너무 길어진 감이 있어  먼저 양해를 구한다.

장면 #1 박바오로 신부의 진료실
가톨릭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마귀 들린 소년(극중 이름 -희준)에 대한 구마의식을 할 것인가 과학적 치료를 할 것인가를 놓고 수녀 유니아 (송혜교 분)와 소년의 주치의인 박 바오로 신부 (이진욱 분) 가 논쟁하는 장면.

장면 #2 희준의 병실
잠든 희준 곁을 지키고 있는 엄마는 집주인으로 부터 월세 독촉 전화를 받게 되고 통화중 집주인의 갑작스런 모욕적 발언으로 희준의 엄마가 자해와 동시에 병원 복도 난간에서 투신하는 장면.

장면 #3 화염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유니아 수녀
영화 마지막 장면. 구마의식은 성공. 아이와 일행을 인근 성당으로 피신 시키고 희준에게 빙의했던 악령들을 그녀의 몸 속에 가둔 채 유니아 수녀가 불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가는 장면.

영화에서 특히 장면 #1, 2 두 개의 장면은 동 시간에 이루어지는데 적어도 내겐 ‘악’이 인간에게 ‘어떤 종류의 틈’으로 ‘어떻게’ 들어와 사악한 결과를 낳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희준의 엄마가 집 주인에게 월세 독촉 전화를 받고서 연신 사죄의 말을 반복하며 미안한 마음에 몸둘바 몰라 할때 유니아 수녀는 박 바오로 신부에게 희준이 구마의식을 받을 수 있도록 외출 허가를 강력히 요구한다. 이 때만 해도 박 신부는 의학 박사의 냉철함이 느껴지는 침착하고도 권위 있는 어조로 “희준이는 구마 보다도 치료가 필요한 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구마의식만이 아이를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하며 아이에게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며 외출허가를 청하는 유니아 수녀의 의지가 강해지는 동안 희준의 병실에서는 끔직한 일이 벌어진다. 희준 엄마는 안쓰러울 정도의 저 자세로 집 주인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있었고 집 주인은 아픈 아이 돌보느라 여력 없는 희준 엄마에게 돈 이야기를 하게 되 참 딱하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침상에 누워 있던 희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부터 양쪽 방의 인물들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나름 차분한 어조로 가려가며 말을 한다 싶었던 전화기 속의 집주인은 점점 흥분을 하는 듯 싶더니 급기야 해서는 안될 말을 쏟아냈다. “ 남편 잃고 혼자 아픈 애 키운다고 좀 봐줬더니 매달 돈 내겠다고 거짓말 이나 하고 사람 놀리는거야, 이 남편이랑 새끼까지 잡아 먹는 @@야! ” 라며 뭔가에 씌였나 싶을 정도로 쌍욕을 시전하며 그녀를 모멸감에 몸서리치게 했다.

그 순간 그녀는 환자식 쟁반 위에 놓여있던 젓가락을 들어 자신의 눈을 찔렀다. 같은 시각 박 신부의 진료실에서는 유니아 수녀가 희준에 대한 구마의식의 필요성을 더욱 힘주어 말하자 박 신부는 “섣부른 구마로 아이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며 “이 모든건 어린 희준이가 만들어낸 환상” 이라며 희준이 부마자 임을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로 일관하던 중 갑자기 표정과 눈빛이 완고하게 바뀌며 단호한 어조로 “부마는 없습니다” 라며 악령에 의한 빙의를 신뢰하지 않는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드러냈다.

박 신부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유니아 수녀가 병원 로비로 내려 온 순간 목도한 것은 젓가락에 눈을 찔린 채로 복도 난간에서 로비로 투신한 희준 엄마의 시신이었다.

장면에 대한 설명은 여기 까지로 한다. 나는 위에 언급한 장면들에서 어둠이, 악이 인간의 어떤 포인트에서 스며드는지를 어렴풋이 느꼈다.

결론 부터 말하면 악은 신과 인간의 선한 의지가 맞 닿는 자리( 이곳을 나는 은총과 은혜가 현존하는 영적/물리적 공간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의 가장 약한 부분으로 스며 든다는 것.
박 바오로 신부는 사제이자 의학박사이다. 영화 속 장면 중 박 신부가 “부마는 없다” 라고 단호하게 말한 순간 나는 ‘이거로구나’ 하고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처럼 학식이 풍부하고 자신만의 이론이 정립 된 학자들에게 어둠은 ‘이성’과 ‘합리’라는 속삭임으로 다가와 하느님의 진리에 세상의 옷을 입히려 든다. 그리고 ‘나의 이론이 옳다’ ‘나의 이론만이 해결 방안이다’ 는 교만과 불굴의 고집은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에겐 더할 나위없는 먹잇감이다. 구마의식을 통해 아이 부터 먼저 살리고 보자며 강하게 주장하는 유니아 수녀 앞에서 “부마는 없다” 며 사제로서는 해서는 안될 말을 결국 입 밖에 내 놓게 된다.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는 교회의 입장과 사제이자 정신분석의로서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균형은 깨져버린다.   아주 짦은 순간이었지만 박 신부 에게도 ‘그것’이 잠시 스며들었음을 이진욱 배우의 섬세한 연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악은 사회적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이 가진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스며들어 비극적 결말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집 주인의 태도 돌변과 희준 엄마의 죽음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가장 가엾이 여기신 세 부류(고아, 과부, 이방인) 중 하나인 ‘과부’ 이다. 영화에서 희준이 아빠가 세상을 떠난 연유, 희준이가 왜 부마자가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가난한 과부의 삶에서 짐작 할 수 있 듯 그들에 대한 사회와 개인의 ‘무심함’, ‘사랑의 부재’가 어둠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어 아이를 부마자로, 그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본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먹고 살기위해 그녀는 온갖 수모를 겪었을 것이다. 동시에 자존감은 계속 떨어져 바닥을 친지 오래였을 터. 아픈 아이를 돌보랴, 입에 풀 칠 하랴 육체와 정신은 지칠 대로 지쳐 걸레짝 처럼 너덜거린다. 집 주인의 입을 타고 들어 온 악은 그런 그녀에게 속삭였다. ‘새끼 하나 건사 못하는 너 같은게 살아 뭐해. 그래봐야 나중에 애 한테 짐이나 되지 안그래?’
또한 악은 이렇게 알량한 집 하나 갖고 세입자에게 각종 갑질로 위세를 부리는 집 주인들에게도 스며든다. 예수님이 유독 가난한 이들을 돌아 보셨던 이유,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지혜를 청하러 온 부자 청년에게 ‘가진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라고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작은 자선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영혼을 악으로 부터 지킬 수 있음을.

우리는 ‘부마자’ 라고 하면 피투성이에 몸 꺾이고 이상한 언어를 하며 그 주변에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는, 그간의 엑소시즘 영화가 제공한 이미지들을 주로 떠올린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가 전혀 아니어도 일상의 평온한 모습 안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 없이 스스로 얼마든지 부마자가 될 수도 있고 상대를 부마자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너무나도 ‘그럴싸한’ 이유로, ‘그럴싸한’ 이름으로 오기 때문이다. 때론 정의, 공정, 평등, 애국, 소수자 인권, 합리적, 이성적 등등…. 의 가면을 쓰고서.
각자가 받은 은총의 무게가 크면 클 수록 말이다. 늘 깨어있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끊임 없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영화가 무섭지만 무섭지 않은 (?) 영화인게 마지막 장면 때문 아닐까. 끈질긴 사투 끝에 악령의 이름을 알아낸 유니아 수녀는 자신을 희생 하기로 결심한다. 언제 다시 희준의 몸 속으로 들어갈지 모를 이 강력한 악령들을 자궁암 말기인 자신의 몸 안에 가두기로 한것. 그리고 악령들을 영원한 지옥의 불속에 감금 하기 위해 그녀 스스로 불 구덩이 속에 들어간다. “너희 더러운 영들아, 당장 떠나거라.” 라며 차갑고 위엄있는 목소리로 명령하면서… 그야말로 인내와 희생의 구마의식 이었다.

몸 안에서 요동치는 악령들에 맞서 온 힘으로 버티며 흐트러짐 하나 없이 뚜벅 뚜벅 화염 속으로 들어가는 유니아 수녀의 모습에 눈시울이 적셔지며 나도 모르게 성호를 긋게 되었는데…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린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이 장면에 대해 함께 관람했던 남편과 그의 친구는 나의 감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니아 수녀가 저렇게 목숨 까지 바쳐가며 희준이를 구했어야 하는 명분이 부족하다’ , ‘적어도 희준이가 아시아 최초의 교황이 될 아이 라는 계시를 받았다 정도의 암시가 있어야 유니아 수녀의 죽음에 무게가 실린다’ 등의 의견이 있었는데 영웅물에 익숙한 아저씨들과 결말을 놓고 입씨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감동이 차가운 겨울 공기와 함께 공중에 흩어질 것 같아서…

그리고 솔직히 명분이고 뭐고 아저씨들은 이쁜 송혜교가 극중에서 죽는게 속상해서 그랬을 것이다. 나도 잘 생긴 남주(남자주인공)가 죽는걸로 끝나면 무지 속상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흐르는 강물 처럼’ (93년작)에서 그가 죽었을 때 그랬다.

지금까지 봤던 엑소시즘 영화는 주로 외국 작품들이었고 남는게 ‘공포’ 밖에 없었는데 내게 ‘검은 수녀’는 이와 같은 ‘메시지’가 있는 유일한 엑소시즘 영화였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특히 유니아 수녀 역할을 한 송혜교의 연기는 보증수표.

그러나 이 영화는 혹평도 만만치 않다. ‘감독이 공부를 너무 안 하고 만든 영화’, ‘가톨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만든 각본’, ‘검은사제들’의 후광만을 바라고 만든 영화’ 등… 영화가 내게 준 묵상 메세지와는 별개로 천주교 신자로서 나도 혹평 한 마디 하자면 수녀들의 타로카드 읽기가 등장하고 강력한 구마의식을 위해 한국의 무속 까지 등장 한다는 것. ‘사람을 살리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유니아 수녀의 급진적 세계관을 반영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 개신교 신자들이나 비신자가 관람했을 때 가톨릭 구마의식에 대해 엄청난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마음 속에 진땀이 흐른다.

Cpbc 가톨릭 평화 방송에서도 영화 팩트체크 관련 보도를 통해 ‘픽션으로서 가볍게 봐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Cpbc 보도에 의하면 실제 구마 의식은 교구청에 허락을 받은 사제만이 할 수 있고 한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인 윤종식 신부는 인터뷰에서 “여러 검증을 통해 정말 마귀가 들렸는지 확인 됐을시, 교구장 주교님이 구마사제를 파견하도록 되있고 파견된 구마사제를 통해 재차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부마 확증 시, ‘대구마 예식’이라고 하는 교회가 인정한 예식이 이루어진다.” 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교회법 1172조는 구마사제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먼저 신심이 굳어야 하고, 학식이 있어야 하고, 현명해야 하고 , 생활이 완벽한 사람 으로서 그러한 조건을 갖춘 사제에게 교구장이 의뢰를 해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고 전했다.

Cpbc에 따르면 구마사제는 구마예식 중 마귀가 들린 사람에게 성수를 뿌리고 안수를 주고 십자가를 보여준다고 한다. 또 하느님을 향해 구마를 간청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직접 마귀에게 명령하는 양식도 있단다.

이 영화가 천주교인 만을 위한 내부 홍보용 영화가 아닌 바에야 어차피 판단은 일반 관객의 몫이다. 우리 안의 마귀, 악령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의 관람을 적극 추천 한다. (2/18 지영)

영화 <검은 수녀들>(영어명 Dark Nuns)은 현재 AMC 극장 리지필드 파크 12와 AMC DINE-IN shops At Riverside 9에서 2월 7일 부터 상영 중이다. 러닝타임은 1시간 54분.

주소: AMC 극장 리지필드 파크 12
75 Challenger Rd, Ridgefield Park, NJ 07660

AMC DINE-IN shops At Riverside 9
390 Hackensack Ave. Hackensack, NJ 07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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