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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90)

안동일 작

 “방낙아,  보록 처럼 나서 교회에 헌신 하거라”

이가환과 이기양은 이날, 요즘 표현으로 말하면 ‘악마의 변호사'(데블스 어드보키트)를 자임하고 나섰던 것이다.

다시 필자가 나서게 됐는데 여기까지만,  그러려 한다. 연재가 너무 어렵고 딱딱하다는, 한마디로 재미가 너무 없다는 불평이 여기 저기서 들려 온다. 조금만 참아 달라고 말씀 드리는 수 밖에 없다. 꼭 알려야만 하는 그리고 여러분들도 알아야만 하는 얘기, 정보들을 원용 하려니 그렇게 된다. 예수회의  적응주의와 초기 성조들의 배교 논란 같은 애기만 해도  ‘월드 프리미어’ (세계 최초 공개)다.  앞으로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게 되니 조금만 참아주시라. 이번 호와   몇 차레만 더…

아무튼   이날 모인 유자들 대부분 칠극과 천주실의 정도는 읽은 이들이었다.
이들의 큰 스승인 성호는 “칠극에는 유가에서 미처 펴지 못한 것이 있어, 예로 돌아가는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된다”면서 “다만 천당과 귀신에 대한 주장을 섞은 것은 해괴하니, 모래와 자갈을 체질하고 고명한 논리만 가려 뽑는다면 바로 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이를 두고 남인 유자들은 성호의 진의가 앞줄에 있다는 측와 뒷줄에 있다는 측으로 나뉘었는데 이날 만큼은 가환과 기양이 짐짓 모래와 자길을 걸러내는 선봉에 섰던 것이다. 심모원려가 깃든 결정이었다.

이날 수표동 시회는  가환의 제안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권일신을 비롯해 홍낙민이며 정씨 형제들이 이벽의 전셋집에서 이승훈으로 부터 세례를 받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남인들 사이에 퍼져 나갔고 모래 자갈파들은 잘못하면 자신들 남인 전체에 화가 미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던 때 였다.

당초는 가환이며 기양 등 몇몇 남인 중진들이 광암과 승훈에게 자초지종을 듣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는데 마침 서울에 올라와 있던 부호 유항검이 자신이 비용을 대겠다고하면서 많은  대중을 초청하는 시회로 하자고 나서  판이 커졌던 것이다. 유항검은 풍성한 식재료와 찬모 까지 불러 올려 음식을 준비했고 김범우도 한몫 거들어 외견상으로는 남인 유자들의 풍성한 잔치가 됐던 것이다.

<봄에는 맑은 잉애가 긴 소매 마냥 산을 두르고 / 높은 하늘이 우러러 보이도다. / 여름엔 안개와 노을이 빛나고 숲이 풍성하고 / 무지개가 피었다 사라지네. / 번개와 우뢰소리 사라져 가자 / 성긴 서릿발 낙엽을 재촉하네./ 밝은 햇살, 지루한 장마, 가뭄과 홍수, 폭설로 덮인 산촌/ 이 모든 이치에서 천주의 변화와 조화를 볼 수 있으리.>
광암이 이날 시회 초반에 선 보였다는 시다, 천주의 존재를 확인 하는 시란다. 명색이 시회 였기에 초반에는 시로 문답이 이루어졌단다.

사실 직암은 그때 시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 하지 못했다. 집안에 일이 있어 양근에 다녀 오느라 마지막 날 오후에야 참여 할 수 있었다. 시회의 처음과 끝을 꼼꼼한 정약종이 치부책 적어 놓듯이 모두 적어 놓았기에 나중에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약종은 광암 형님을 다시 보게 됐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천주의 존재와 그이의 전능함을 유학 경전을 두루 종횡 섭렵하며 설명했는데 그 박학함과 독창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 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용과 시경을 동원한 천주존재 예수독생 삼위 일체의 설명은 압권 이었다고 했다.  약종이 적어 놓은 수기 책을 보니 지난 봄 양근에 와서 동섬과 그에 관해 논쟁을 할때 보다 훨씬 논리가 정연해졌고 예시가 풍부해져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청산유수로 좌중을 압도하고 일필 휘지로  절구를 쏟아 내는지 정말 놀라울 지경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약종은 흥분해 있었다.

하긴 광암의 중용 해석은 진작 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중용은 사서 중에 주역과 함께 사변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상대적으로 난해한 경전으로 꼽히고 있는데 광암은 10대 시절 이미 이를 꿰뚫고 있었다.
중용은 첫 장(首章)을 통해‘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로 요약하고 있다. ‘하늘의 뜻이 성이요, 성을 따르는 것이 도이며 도를 닦는 것이 교 이니라’.   광암은 천명을 천주의 의지로 해석하고, 천도를 천주의 도, 즉 성도(聖道)로 보았다. 그리고 수도(修道)는 수덕(修德) 으로서 천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바른 가르침 이라고 치환 했던 모양이다.

“덕성(德性)은 상천(上天)이 명한 바이니 이를 높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문학(問學)이란 군자가 해야 할 떳떳한 업인데 이를 따르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군명(君命)을 받드는 자는 감히 악을 행하지 않고 반드시 덕과 은혜를 베풀며 천명을 받드는 자는 감히 악을 행하지 않고 반드시 효와  인(仁)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는 그대로 천주의 가르침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상천의 명이 천주의 명이요, 문학이 서로 사랑하라는 천주의 가르침입니다. ”

광암은 이 한마디로 천주학이 무부무군의 학문이라는 의구를 해소하려 했다.  광암은  중용과  천주 사상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인간 심성에 대한 긍정적 확신과 내재적 수양을 통한 절대적 가치의 구현이라는 점을 설파해 좌중의 지지를 이끌어 냈단다.

인간 심성에 대한 유가적 해석은 이퇴계의 주리적 이기관(主理的 理氣觀)의 손을 들어 주면서 . 이황의 이기론은  자연과 인간 현상의 해명에 그치지 않고, 당위론적 관점에서 인간 도덕 실현의 준거를 해명하려 하지 않았냐고 좌중에게 되 물었단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양심이 어디서 나왔냐는 얘기였다.

그런데 천주의 가르침이 중용의 변증, 이기론의 현상 파악을 한참  뛰어 넘는 실천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광암의 웅변이었다. 천주학은 실천 할 수 밖에 없는 가르침이라면서 도탄에 빠져 있는 조선의 정신세계와 현실을 구제할 수 있는 희망이라고 역설 했던 것이다. 애인,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베푸는 나눔을 실천 하라는 것이 하늘의 명령이라고 강조 했다.

광암은 그 실천에 있어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인간내면의 영혼은 항상 두렵고 송구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구원을 간구 할 때  천명, 천주의 위대한 의지가 실현될 수 있다며 천주강생, 구원의 원리를 설명했단다.

<우람하게 용립한 태산의 산봉우리, / 아득히 흐르는 위수의 물줄기. / 물줄기는 험함을 뚫고 나루를 찾아가며/ 산은 기어올라 봉우릴 지었도다. / 달팽이 집마냥 옹기종기 푸르게 이어간 산맥들과,/ 천리마처럼 밀려 왔다 밀려 가는 바다의 조수, /이 현묘한 변화와 아름다운 풍경을 유유히 바라보면 하느님의 신비가 놀랍지 아니한가>

” 천지현상에서와 신비적인 질서로부터 인간의 기적적인 온갓 능력에서 천주는 그 존재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 직접 느끼고 인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천주와 대면하게 됩니다.   일등 피조물과 창조주와의 만남입니다. 그러므로써 피조물인 인간은 겸손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천주를 공경하고 그 참 뜻이 무언지 참구함에 따라 어둡고 캄캄한 마음이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광암은  천주는 현상계를 초월한 절대자로서 인간과 늘 대면하고 있고, 인간의 영혼은 천주에 다가가기 위한 수양(또는 수덕)적 실천을 사명으로 갖고있다고 역설 하면서 천주의  성품은 인간  영혼에 깃들인 천성으로 자신은  심합이기설(心合理氣說)에 따라 마음에서 본체와 기질의 양면을 파악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발 기승, 이치에서 나와 체가 따르는  수양이란 천주의 존재에 대한 정성스러운 외경과 함께 두려운 마음으로 끝없이 자기반성을 하며 야소 기리스도가 인간들의 죄를 사함 받기 위헤 이 땅에 왔으며 그 때문에 죽었고 또 부활 했다는 사실을 믿을 때  진정한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역설 했다.

물론 좌중은 처음에는 대개 의아해 했다.  이벽은 부활이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라고 했다. 부활은 천주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간 구원을 위한 약속의 완성이라고 했다. 야소가 죽음에서 부활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새 생명과 구원의 길이 열렸음을 보여주는 사건 이었다는 것이다.

광암은 강생과  부활 이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  있을 수 없는 일이 역사적으로 일어 났고 이 때문에 인간 세상 전체가  변화 했고 지구 상의 삼분지 이가 이 사실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이를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면서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고 역설 했다.

“사람이 기물을 자기 쓰기에 알맞게 만들 줄은 알면서도 어찌하여 창조주 천주의 귀중한 그릇이 되기 위하여 덕을 닦지 않습니까?  진기한 보물은 창고에 비장 하지만, 그 보물을 마음 안에 깃들이는 이는 오히려 영원한 보배로 마음에 머금고 감추어야 합니다”하고 했다.

천주의 존재는 초월되어 있지만 한편으로 영혼이라는  생혼으로 인간의 심덕(心德)에 깃든 각혼을 누르고 내재하면서 이를 통해 스스로 명령을 내리는 성도(聖道)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덕을 닦고 열심히 도(道)를 구하는데서 천주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초월적이면서도 인간 내재적인  천주의 특성이 부각되는 상승의 논리다. 불가의 여래장 사상이 이랬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일체가 우리 인간에 강복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단도직입의  천주 신앙 설명이었다. 삼위일체는 강생과 부활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천주 신앙의 시작과 끝, 알파요 오메가 아닌가.

” 성부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성자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육신하신 야소. 성령은 믿는 이들 가운데 활동하며, 그들을 성화하고 인도하는 초월적 능력 입니다. 이 세 위격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워낙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였고 논란도 많아 천주교 내에서도 분규까지 나온 사안이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광암은 많은 예를 들었던 모양이다 .  약종의 서책을 보면  광암은 그때   , “물, 얼음, 수증기”라는 같은 본질이지만 세 가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비유를 들었고  또   태양이 빛, 열, 원형으로 존재하면서도 하나라는 비유를 들었다.  또  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하늘(천), 땅(지), 인간(인)의 조화나 삼강(군신, 부자, 부부) 등의 개념과 연관지어 설명  하면서  주역의 태극과 음양오행에서 “하나에서 셋이 나오고, 셋이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는 관념을 동원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참 대단 하구먼, 박람강기가 따로 없음일세”  직암이 약종에게 한 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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