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저는 죄인 입니다, 자신의 명예와 안위만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날 이벽의 집 대청에는 동쪽 한켠에 십자고상과 초를 켜놓은 제대가 마련 돼 있었고 대청 중앙에는 작은 탁자위에 성수 담은 백자 주전자와 성유를 담은 작은 병, 그리고 커다란 질 그릇이 아래 놓여 있었다.
제대를 향해 일동의 등을 지고 있는 승훈의 기도가 이어졌다. 그의 말씀 전례는 기도식으로 매우 짦게 진행 됐지만 커다란 내용이 담겨 있었다.
“ 하늘에 게신 우리 아버지 천주님, 오늘 이자리는 천주님의 은혜와 가피로 우리 조선의 성도들이 새로운 삶의 살기로 천주님 앞에 약속하는 자리입니다. 천주님 우리는 이땅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공동체를 결성하기 위해 세례를 받습니다. 부디 굽어 살피셔서 우리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의의 천주여, 우리가 간절히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늘 우리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은혜를 베푸사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이 모든 기도를 주 야소 기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통회하며 드리옵나이다. 아문”
천주교 신앙을 통한 공동체 건설, 교회의 성립을 최우선의 일로 생각 하고 있다는 것을 천명했던 것이다.
세럐를 받게 될 일신을 비롯 대부로 나설 이벽이 앞 줄에 서 있었고 정약전과 정약종 최창현과 김범우 그리고 이존창이 뒷쪽에 서 있었다. 유항검은 아직 당도하지 못했다. 승훈과 이벽, 그리고 정씨 형제들은 큰 갓을 쓰고 있었고 김범우 최창현은 촐랭이 갓이 부르는 작은 갓을 쓰고 있었고 셰례를 받게 될 일신은 갓을 벗은 맨상투 바람이었고 이존창도 맨 상투 차림이었다. 범우가 자신의 갓을 빌려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극구 사양 했고 이벽도 이를 가만히 보기만 했었다.
승훈의 짦은 기도에 모두들 연습한대로 ‘아문’을 따라 외쳤고 이때 대청으로 뜨거운 바람이 슬며시 불어 오는 것을 일동은 느꼈다.
승훈이 돌아서서 일신을 호명했다.
“세례의 영광을 안을 권일신 성도 어디 있습니까?”
“예 권일신, 지금 여기 있습니다.”
일신은 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대답한 뒤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서 무릎을 꿇었다.
승훈이 작은 탁자위에 놓여 있던 작은 성유 병을 들어 성호를 그은 뒤 성유를 자신의 오른손 엄지에 뭍힌뒤 무릎을 꿇고 있는 일신의 목덜미 뒤에 뭍혀주며 물었다.
그 손갈이 무척 따스했다.
“권일신 성도는 온갖 마귀의 유혹을 끊고 천주의 제자로 다시 나아가기를 앙망 합니까?”
“예”
“그러면 천주님께 자신의 통회와 각오를 아뢰십시오”
세례를 받는 일신이 통회와 각오를 구하는 순간이었다.
일신은 연습한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천주님’ 으로 시작해서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얘기와 앞으로 열심히 천주의 박애 정신을 펼치겠다는 뜻을 피력하는 것으로 짧게 끝내려 했는데 저도 모르게 길어 졌다.
“하늘에 계신 천주님, 저는 죄인 입니다. 정말 잘못 살아 왔습니다. 남들을 위한다 하면서 제 자신의 명예와 안위만을 추구해 왔습니다.” 하는 순간 가슴이 미어지면서 자신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펼쳐 졌다. 일신의 어릴적 별명이 권씨댁 충녕대군이었다. 셋째지만 출중하다는 애기였다.
“ 잘나지 못한 지식을 뽐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
7살때 입춘대길을 써서 대문에 붙혔더니 큰 형이 아주 잘썼다고 해서 우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글씨를 떼어내려 했던 아바지가 너무도 원망 스러워 며칠동안 밥을 안먹는다고 투정 부렸던 기억이 났다.
서당에 처음 가서는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떼었다고 뽐내고 훈장에게 대들었던 기억이 났다. 상처 받는다고 과거를 보지 말라고 했던 아버지와 큰 형님의 안타까운 심정은 모른채 원망스러워 며칠 동안 말을 안하고 아랫 사람들에게 공연히 역정을 내고 심통을 부려 그분들을 애태웠던 기억이 났다.
처음에는 죄를 통회해야 한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말을 기도를 형식으로 내뱉고 보니 정말 큰 죄였다. 칠극에서도 교만이 가장 으뜸의 죄라고 하지 않던가. 일신의 통회는 더욱 절절해 졌다.
“이 죄인은 천주님의 가르침인 서학을 공부 하면서도 뽐내려고만 했습니다. 알량한 지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하곤 했습니다. 천주님 오만한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가슴이 더욱 미어지면서 왈칵 눈물아 쏟아 졌다.
스승이자 장인인 순암 선생을 생각 하려니 더욱 눈물이 펑펑 흘러 나왔다. 그토록 자신을 아껴 그 고운 외동딸 까지 내준 어른인데 어째서 그 어른은 이 아늑하고 감동적인 가르침을 사악시 하는지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모두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남편 사이에서 마음 고생이 너무 심한 부인 안씨가 생각 났다. 그 곱던 처자가 이제는 중년을 넘어 서고 있었지만 따뜻한 말 한번 건넨적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천주는 남자가 외로울 까봐 여자를 만들어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아름답게 인생을 펼치라고 하셨다는데 자신만 생각했었다. 참회의 눈물이 뺨을 타고 계속 흘렀다.
그때 일동은 대부분 일신과 같이 두손을 맞잡고 기도 자세를 취한 채 그의 기도를 들었다. 더러는 눈을 말똥 뜨고 주변을 슬금 살피는 이도 있었지만 모두들 본심으로 진지하게 경청 했다. 주변을 살피던 이가 정약종이었다. 약종은 그때 마당의 감나무 잎사귀 하나가 떨어지는 광경을 목도했다. 낙엽이 떨아질 시절도 아닌데 살랑 바람에 그리 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시절인연이 있는 것으로 생각 됐다. 오늘 이자리가 바로 그랬다. 사숙의 절절한 통회는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문득 일신은 자신이 자리를 생각지 않고 정신없이 통회에 몰두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차차 고쳐 나가겠다는 각오를 아뢴 뒤 기도를 끝냈다.
“이 모든 말씀 야소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뢰었습니다. 아문.”
일신의 꽤 긴 참회 기도가 끝나자 승훈이 축도를 행했다. 승훈의 눈가에도 이슬이 머금어 있었다.
“세상의 죄악을 없애시는 천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길리애 일라선’”
마지막 ‘길리에 일라선’은 라틴어로 했다. 연경 탁덕에게 배운 것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세례를 거행하겠습니다. 대부 되는 분 나오십시오”
광암이 계속 무뤂을 꿇고 있는 일신의 뒤에 섰다.
“대부 세자 요안 께서는 권일신 성도의 신앙을 이끌고 그를 후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세례명은 무엇으로 정했습니까”
“방제각 사물략(方濟各 沙勿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으로 정했습니다.“
“동방 전교의 성인, 방제각 성인이군요, 뜻 깊은 세례명 입니다.”
이 말은 좌중더러 들으라고 설명한 말이었다.
승훈은 직암의 고개를 양동이 쪽으로 내밀게 했고 약간 옆으로 제쳐 이마가 보이게 했다.
“본인 청신사 이승훈 백다록은 천주님의 명에 따라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권일신 방제각 사물락 성도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
그러면서 주전자를 기울여 성수를 조르륵 흘려 내리게 했다. 세번의 같은 동작으로 세번 물을 흘려 내렸다. 일신은 처음에는 눈을 떠야 하는지 감아야 하는지 물이 눈에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 눈을 감았지만 옆 이마에서 눈과 눈썹 주위로 흐르는 물 방물, 물 줄기가 이마를 파고 들고 있다고 느꼈다. 아픔이 아닌 상처를 파내 아물게 하는 청량한 물줄기 였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들여 다시 태어니게 하오서, 길리애 일라선”
그랬다. 여기서 세번의 물줄기는 생명과 죽음 그리고 정화를 의미했다. 이 예식은 물을 부음으로써 야소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부활하신 천주 안에서 새 생명을 받아들임을 상징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