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천주의 가르침은 이해가 아니라 믿어야 할 신비의 진리”
동섬의 천주학에 있어서의 마귀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다.
“나는 천주 신앙에서 마귀가 등장하는게 격이 떨어지지 않는가 싶은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그것도 큰 비중으로 등장하지 않는가. 복음서들의 앞부분에 마귀가 유대 광야에서 야소를 시험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조금 전의 돼지떼 이야기며 귀신들린 소년 소녀들이 계속 나오지 않던가. 아무래도 나에게는 썩 와닿지 않는데… 마귀를 악령이라고도 하고 귀신이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맞는가? ”
“예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격이 떨어진다고 까지는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영혼의 존재를 확고하게 믿는 가르침으로서 선한 령 천사가 있다면 악한 령 마귀가 있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네만 그 악한령 마귀가 큰 능력, 이른바 권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일세, 뭐든 나쁜 일 잘못된 일은 마귀의 탓으로 돌려 버릴 수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지, 전능한 천주가 마귀를 만들었다는 것도 그렇고. 설사 그런 마귀들이 천사들의 반란으로 생겨 났다 손 치더라도 그들을 일거에 없애지 않은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 아닌가?”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 했는데 이 또한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천주님의 안배라고 생각 합니다. 복음서에도 마귀나 악령은 야소님께 대항을 하지 못합니다. 숙사가 말씀하신 야소께서 유대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는 장면에서도 마귀의 세 가지 시험에 야소는 정확하게 천주의 말씀을 사용하여 물리쳤습니다. 돌을 떡으로 변화 시켜라. 높은 성전에서 뛰어 내려라, 나에게 경배하라는 세 경우 모두 야소 께서는 옛 복음서, 구약의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라고 하셨죠. 세 번 모두 말씀으로 막아내셨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탄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명령하여 물리치셨습니다. “
“야소는 천주 자신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 한테는 그렇지 않지 않던가?”
“타락한 천사가 사탄입니다. 복음서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라고 나와 있다고 했습니다. 사탄이 이들 악귀가 된 천사 중 높은 지위에 있고 그가 타락할 때 함께 타락해서 따라간 천사들이 있어 이들이 사탄의 부하가 되어 있다고 교부들의 서책에 설명돼 있습니다. “
동섬과 직암은 게속 광암의 입을 주시했다.
“사람은 영적 존재인 영과 물질적 존재인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지만 천사는 물질적인 요소가 없으며 오직 영적 존재입니다. ‘악령’이라고 표현할 때는 천사가 타락할 때도 자기 중심으로 타락했고, 인간을 타락시킬 때도 자기 중심으로 타락시킨다고 했습니다. ‘마귀’라고 표현할 때는 그 활동하는 악령의 역사가 비교적 좀 적은 범위에서 움직일 때를 말한다고 하더군요. 말씀 드렸지만 그부분 저도 열심히 참구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교덕서들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습니다. “
동섬과 광암의 이 대화는 얼마 뒤 엉뚱한 후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또한 천주의 뜻이었을까.
“제가 알기에 사람은 몸과 마음과 영으로 나뉩니다. 몸과 마음은 물질로 된 것이며 악령에 붙들려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만들 때부터 천주님의 뜻에 따라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현상의 몸과 마음입니다. “
“그런가 그 얘기는 새롭군 그래, 마음과 영혼은 다른것이군. 하지만 현상에 있어 이런 마귀론에 집착 까지는 아니지만 큰 비중을 둔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조선땅이 지옥 처럼 변하고 있는 것도 마귀의 농간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조선사회를 개혁하고 바로 잡는 것도 마귀와의 싸움이라고만 한다면 추동력이 심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일세”
마귀론은 이쯤에서 접어졌지만 동섬은 야소의 재림과 심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평소의 궁굼증을 모 두 풀 심산인듯 했다.
“오늘 얘기가 나온김 모두 풀어봄세, 야소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가?”
재림과 심판은 부활과 더불어 천주 신앙의 또다른 요체이자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광암이 그토록 금과 옥조로 여기는 사도신조 에서도 야소가 다시 이 땅에 다시 와 심판을 행할 것을 믿는 다고 하고 있었다.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 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이 얘기는 세상의 마지막 때에 야소 기리스도가 지상에 다시 와 세상 시작부터 있어온 모든 사람을 심판하게 되는데 그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한 사람들을 최종적으로 구원하고, 믿지 않고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은 자를 영원히 벌한다는 교리상의 해설이다.
” 이미 죽어서 심판을 받아 천국이나 지옥에 가 있는 영혼들은 이미 확정된 자기 운명을 다시 판정 받게 되는 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신앙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이치를 넘어서는 신비적인 요소와 신도들을 다그치고 추동하는 요소가 필요 하다고는 하지만 다시 심판하러 온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네, 자네들은 어떤가?”
사실은 직암도 그 부분에 대해 이해가 부족 했다. 복음서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 날은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닥치므로, 기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지 않고 있다가 심판 때에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다고 돼있다는 것만 막연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광암이 나섰다..
“저도 이부분을 여러차례 살펴 보았습니다. 천주학에서는 마지막 최후의 심판을 공심판(公審判)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심판을 받아 천국, 지옥에 간다 할 때의 그 심판을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사심판 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비해 일컫는 것입니다. “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심판을 받아 천국이나 지옥에 가 있는 영혼들이 이미 확정된 자기 운명을 다시 심판 받는 것에 대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의문을 표하기도 하는데, 교리상에는 공심판이 진짜 심판이라고 명확히 되어 있습니다.”
광암의 설명이 이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최후의 심판 이전까지는 육신이 없는 영혼만의 상태로 있다가 마지막 때, 최후의 심판 때가 오면 죽어 없어졌던 자신의 육신과 다시 합쳐져 새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이지요.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 부활한 새 몸을 입고 들어간 의로운 신자들은 육체가 있기에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영원한 불지옥에 떨어진 죄인들과 불신자들은 육체가 있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부활과 영원한 삶이 천주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를 논리적이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마귀론에 비해 재림론과 심판론에 대해서 광암은 확고 했다. 동섬은 아직 미심쩍어 하는 기색이 역력 했다.
“그래도 그렇지 영원한 불구덩이라….자꾸 남의 나라 책 들먹이는게 안됐기는 하지만 실은 이 두가지 사항도 파사집에 나오는 이야기 일세, 파사집에서 청국 유자들은 이 두 교리가 너무도 미신적이며 잔인하다고 길길이 뛰면서 비판하고 있다네.”
그 무렵 광암 이벽은 유학의 기반위에서 특별히 사물마다 지닌 성체(性體)와 각 형상의 비례(比例)를 밝힌 논리를 체득하고 있었다. 얼마전 강학 때 이를 발표했는데 다소 난해 하기는 했지만 직암이 보기에 그가 거둔 큰 성과였다. 하지만 이날 동섬과의 토론 대화에서는 그 논리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10.
세례를 받은 이를 중심으로 천주학 공동체를 조속한 시일내에 발족하기로 한 것은 녹암 권철신 형님과의 토론이 있은 후였다. 어쩌면 재가를 받았다는 표현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 덕조 자네는 천주교 공동체가 우리 조선사회의 부조리를 혁파하는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된다면 어떤 점이 그런가 설명을 듣고 싶네”
녹암이 물었다.
“단연코 그 기틀을 마련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시일내에는 어렵지만 시일을 가지고 사람을 모으고 뜻을 펼치면 반드시 그렇게 될것입니다. ”
녹암, 직암 두 형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강성힌 라마(羅馬) 제국도 처음에는 천주학을 탄압했지만 종국에는 국교로 받아들여 서양 전체를 통치하는 큰 나라가 되지 않았습니까, 성서에도 ‘네 시작은 미약 하였으나 끝은 창대 하리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라마 제국을 평정한 천추학 공동체, 교회도 처음엔 열두명 야소 제자들로 출발 했습니다.”
녹암, 직암 두 형제는 다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조선 땅이 문제 투성이라는 것은 스승님과 숙사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땅이 이렇게 문제가 된것은 근본적으로는 천주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만심과 이기심의 인간 세계를 만들어 교만에 가득찬 차별의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천주학을 모르지 않았나.”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따라야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법 아니겠습니까. 스승님도 자주 말씀 하셨듯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