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천주의 가르침은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할 신비입니다”
이날은 동섬과 광암이 마을 앞 정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직암이 늦게 가세 했다.
“어서오시게나 직암, 강생구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네”
동섬이 반갑게 직암을 맞았고 좌정하자 마자 광암이 하던 강생구속 얘기를 계속 했다.
“처음에 원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사람은 이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나, 성자 야소 기리스도께서 이 모든 죄를 없애시기 위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시어 성부 천주의 뜻대로 십자가상 수난과 죽음을 겪으심으로서 부활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이들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를 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강생구속의 원리입니다.”
“천주학에서는 복음의 말씀에 따라,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자 인간 본성을 취하신 일을 ‘강생’(降生)이라고 부릅니다. 직암 숙사께서 그리 존숭하는 바오로 사도가 교회의 식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강생의 신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영혼과 육신을 취하시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으로 되셨습니다. 동정 마리아께서 야소를 잉태하여 낳으신 것은 성신의 전능으로이며, 천주 성자께서 강생하시어 사람이 되실 때에도 천주이시니 천주성을 버리지 아니하셨고, 또 사람이 되신 후에도 천주이셨 음에도 십자가 고난을 기꺼이 받으신 것은 우리 죄인들을 긍휼히 여겨 명확한 본을 보이신 것으로 그 수난공로는 천주적인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광암의 거침없는 웅변에 직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섬은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광암은 원리(原理)라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강생구속(降生救贖)이야 말로 천주사상의 집약이다. 강생구속은 예수가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한 일을 총칭하는 말이다. 4글자의 한자로 천주신앙의 정수를 나타내고 있다. 그 논란 많은 삼위일체론도 포함하고 있다.
강생(降生)의 강(降)은 내릴 강, 생(生)은 잘아는 대로 날 생 이다. ‘내리다’, ‘내려가다’ ‘탄생하다’ ‘낳다’ 를 뜻하는 글자인데 강생이라 하면 하나님이 사람이 된 사건을 가리킨다. 두글자에 엄청난 일이 담겨 있는 것이다. 강생 이라는 말은 화신(化身) 이라는 말로도 대치 되는데 화신(化身)은 문자 그대로 ‘몸으로 되다, 몸으로 변하다, 몸을 가지다”라는 말로 사전적으로는 어떤 추상적인 특질 또는 성격이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게 된 것을 뜻한다. 기독교에서는 성육신(成肉身)이라고도 한다. 강이라는 글자는 때로는 ‘항복할 항’으로 쓰여 남에게 굴복 하는 항복(降伏)할때의 항인데 이 뜻을 적용해도 많은 함의가 있다.
구속(救贖)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인데 여기에도 많은 함의가 있다. 구원할 구(救)자와 물건을 산다라는 말인 살 속(贖)자를 쓴다. 대가를 주고 구원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죄를 하늘이 대가를 지불하고 구원했다는 의미다.
두 단어를 합치면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내려와 인간이 지은 모든 죄의 댓가를 대신 지불했는데 그 대가가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희생제물(犧牲祭物)로 바친 일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세상의 구원을 선포 했다는 세속의 논리적으로는 이해 되지 않는 고도의 신앙차원의 순환적인 수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양근 땅 녹암정 에서의 세 사람 토론에서 라틴어와 영어의 어원에 대해서 까지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테지만 강생구속, ‘ 인카르나티오 아포루트로시스 ‘( incarnātiō- apolutrosis ) 야 말로 기독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그 말의 어원과 의미에 대해서 한번 살펴 본다.
천주인들은 예수가 강생한 하나님 즉, 하나님의 공현(Epiphany)이라고 믿는다. 앞서 살펴본 삼위 일체론이 그것이다. 삼위일체의 영어 표현인 트리니티 (Trinity, 라틴어 Trinitas) 가 오늘날 기독교의 상징처럼 쓰이고 있어 신학교를 트리니티 스쿨이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강생구속, ‘ 인카르나티오 아포루트로시스 ‘( incarnātiō- apolutrosis ) 야 말로 트리니티를 포괄하는 기독사상의 핵심이고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강생의 라틴어는 인카르나티오(incarnātiō) , 영어는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다. 인카르나티오는 인카르와 나티오의 결합어로 어원적 의미는 ‘육체를 입고 오심’이다. 심오한 단어다.
구속을 뜻하는 ‘아포루트로시스’ 는 속전을 받고 풀어 준다는 어원에서 나왔다. 그런데 영어는 이 어원을 따르지 않고 살베이션 혹은 리뎀션이라는 단어를 구원이라는 의미로 쓴다. 아무튼 ‘ 인카르나티오 아포루트로시스 ‘ (인카네이티브 살베이션)를 믿고 인정한다면 동정잉태와 부활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돼 있다.
다시 양근 녹암정.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동섬이 입을 열었다.
“듣고 보니 강생구속의 일이야 말로 천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겠다는 생각이 드네, 부활이 가장 믿기 어려운 미신적이며 신화적인 부분이라고 생각 했는데 덕조의 말을 들으니 부활은 작은 일일세 그려, 야소가 신인(神人)인데, 원래 죽음이 없는 신인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일어난 일이 뭐 대수 이겠는가? 아무튼 대단한 서사일세”
“서사라면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어낸 이야기라는 말씀이십니까?”
광암이 나섰다. 그의 목소리는 자소 격앙돼 있었다.
“솔직히 그렇다네, 나는 천주학에 대해 아직 공부가 부족하고 자네들과 같은 믿음은 없기에 천주 강생이며 동정잉태’ 부활 등의 일을 신화적 서사로 이해하고 있다네. ”
“그러실테죠, 그게 신앙의 출발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덕조가 급하게 들이 댈까봐 직암이 짐짓 나섰다.
” 그동안 나는 누가 세상을 만들고 날 만들었는가 라는 물음에는 해답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왔네. 왜냐하면 그 즉시 ‘그렇다면 천주는 누가 만들었는가?’ 라는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네.”
직암과 광암은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천주에게도 원인이 있어야 할 것이고, 어떤 것이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세상도 하나님처럼 원인 없이도 존재할 수 있어야 할 것아닌가? 원인이 없다면 세상은 생겨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세상이 항시 그렇게 존재해 있었다고 해서 안 될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 ‘세상은 시초를 가진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가설이기에 또 확인 증명 될 수 없기에 그 생각이야말로 우리의 상상력의 빈곤과 다름없다고 생각해 왔네”
이날 처음으로 동섬의 천주학에 대한 이해와 생각을 듣게 된 것이다. 그동안은 그저 알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측면이 있었다. 이날 동섬의 고백은 직암에게도 정문의 일침처럼 깨닫게 하는 바가 컸다.
동섬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하지만 세상과 인간의 근원이 어떤 신비하고 심오한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믿을 수 있네 그래서 큰 반감은 지니고 있지 않았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직암, 덕조 자네들과 같이 영민한 후배들이 이리 천착하고 있음에는 무슨 까닭과 기저가 있음이라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었지, 하지만 내 짧은 지식으로도 천주학이 주장하고 있는 인간 구원의 원력은 수긍되는 바가 크고 또 그 방편으로 박애와 애정을 말하고 있는 것에서 감명을 받기는 했다네. 그리고 무엇보다 그서사가 참으로 대단한 것 이었음일세”
말은 이렇게 했지만 동섬의 천주학 이해는 생각 보다 넓고 깊었다.
동섬은 구원과 재림 까지도 어느정도 이해 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부분에 있어서는 당시의 직암보다도 앞서 있었다.
동섬은 호혜적으로 불교를 이해하는 유자들 처럼 재림을 미륵 사상과 같은것으로 이해 하고 있었고 구원은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불을 염호하는 불교신앙의 모습과도 같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이 부분이 있어야 신앙으로 정착 될수 있다는 점을 십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위사진, 천주교 양근 성지에 복원 된 녹암정. 권일신 조동섬 이벽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