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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43)

 안동일 작

흥남 그리고  크리스 마스의 기적

클리어리는 흥남의 10 군단 사령부는 현재로서 민간인 철수를 도울 수 있는 어떤 방침도 세우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엊 저녁 식당에서 사령부의 작전 참모 레몬 중령을 만났는데 피난민 철수를 위해 배편을 마련할 수 있느냐고 직접 물어보았지만 레몬은  자신이 아는 한 배조건은 전무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무슨 길이 있겠지. 뛰어 보자고. 참 토비 주교님과는 연락이 됐는가?”

카트라이트가 클리어리에게 물었다.

“아직 직접 통화는 못했어”

토비 주교는 동경 극동군 사령부의의 군종 센터장 준장이었다. 카트라이트가 생각하기에 수만의 피난민을 구하는 작전은 아무래도 동경과 워싱턴의 내락이 필요한 일이었다. 현지의 군단장 독단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항구로 가는길에는 벌써 바리케이트 쳐져 있어 통행이 제한되고 있었다. 바리게이트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피난민 중에는 유난히 저보다 더 큰 남동생을 엎은 10세 미만의 소녀들이 눈에 띄었다. 진흥리에서 흥남으로 들어올 때 길에서 만난 소녀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존리가 “무겁지 않니?” 하고 물었을 때 그 소녀는 코를 훌쩍 들어 마시더니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거든요” 했다.

콘솔레이션 호는 당시로서는 최근 건조된 항공모함급의 최신예 대형 병원선이었다. 마치 본국의 대학병원을 옮겨 놓은 것과 같았다. 아픈 병사들이 누워 있는 곳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됐지만 깨끗하고 환한 것이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춥고 살벌한 전장터와는 당연히 달랐고 병사들의 땀냄새 바다 비린내 서려있는 수송선과도 천양지차였다.

사람이 살다보면 기가 승하고 하는 일 마다 잘 풀리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이날이 카트라이트에게는 그랬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뜨끈뜨끈 한 주님의 성령이 임한 날이었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런 말 생전 쓰지 않았고 그런 생각 않는 이지적인 카트라이트도 후일 생각해 봐도 그런것 같았다.
그날 저녁 스테파노 카트라이트 신부는 모처럼의 호사를 했고 모처럼 가슴에 있는 말을 쏟아 냈고 그리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고 감동을 던져 줬고 그일은 너무도 바람직한 후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다 주님의 뜻이 아닌가 싶었다.

콘솔레이션호의 군종 장교인 감자바위 아이다호 코튼우드 출신 루스틱 대위 신부의 안내로 그리핀을 위문하고 나오려는데 함장과 병원장이 만나고 싶단다. 콘솔레이션 호는 특수한 군용 병원선이었기에 선장 함장은 민간인 신분이었고 병원장은 준장 계급의 의무장성 현역 군인 이었다.
병원장실에 들어서니 두 사람이 모두 일어나서 카트라이트를 맞았다.
“ 신부님 어서오십시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눈물 까지 글썽해서 카트라이트의 손을 두손으로 잡는 선장의 손에는 묵주가 들려 있었다. 병원장의 손도 그렇게 따뜻 할 수가 없었다. 이 장면 하나로 더이상 두 사람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병원장은 저녁이 준비되고 있으니 함께 저녁을 먹고 가자고 했다. 클리얼리 신부와 군목 들의 얼굴에 희색이 돌면서 입이  벌어진다. 사실 이곳으로 오면서 이곳 병원선의 식당에 대해서 한마디씩 했었다. 당시 함흥 일원에서 최고의 음식이 제공되는 곳이 이곳이라 했다. 그럴만 했다. 이 전쟁통에 병원선은 그대로 미국 본토의 6백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식재료와 식기 등은 본토에서 공수된 최고급 이었다.  병원장과 선장도 이를 잘알고 있어 입항한 뒤 부터 저녁 마다 무슨 핑게를 만들어 10군단의 고위 장교들을 초대해 나름대로 위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함흥 일원 장교들은 병원선의 초대를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 병원식당의 초대가 대단한 초대였다. 바로 사선을 넘어온 해병 1사단 스미스 장군을 위로 하기 위해 알몬드 장군이 준비한 환영 저녁이라는 것이다.
“알몬드 장군이 직접 전화를 해 와서 부탁 한 일입니다. 해병 1사단 사단장과 주요 참모들이 오기로 돼 있습니다. “
판이 커져 있었다. 병원장은 카트라이트 더러 축도를 해달라고 했다. 간단한 식사 기도를 올리는 것이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몰골이 영 아니 올시다 아닌가. 고토리에서 피에 절은 군복이야 갈아 입었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누더기 였고 한달 가까이 샤워도 못하고 면도도 제대로 못한 몰골이 문제였다.
“이 몰골로 말입니까?”
카트라이트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샤워 하십시오, 옷도 준비 하겠습니다.”
병원장 루레이 준장이 루스틱 대위를 쳐다 봤고 루스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교롭게도 루스틱의 체격은 카트라이트와 거의 같았다.

이렇게 해서 카트라이트는 병원장 실 옆 복도에 있는 샤워장에서 모처럼 따듯한 물 샤워를 했고 깔끔 하게 면도를 할 수 있었다. 폐허나 다름없는 위생병원에 남아 있는 병사들과 7연대와 함께 고생하고 있을 존리가 잠깐 생각 났지만 그의 말대로 모처럼의 기회에 최고위 상급자 슈퍼리에 들에게 한마디 해야 겠다는 전의가 불타 올랐기에 머릿속이며 온몸에 퍼져있는 전장의 피얼룩을 열심히 닦았다.

 *위 사진,  625 때 활약 했던 당시 최신예 쌍동이 병원선 콘솔레이션호와 헤븐호 앞모습 

깨끗한 군복에 로만칼라 까지 착용한 너무도 달라진 카트라이트의 모습에 오히려 스미스 소장이 놀랐다. 스미스 소장은 깔끔히 꾸려져 있는 병원선 귀빈 식당에 병원장 일행과 카트라이트 일행이 먼저 원탁 테이블 하나씩을 차지해 자리 하자 마자 이내 도착 했다. 알몬드 소장과 함께 였고 군단 사령부의 참모들과 해병 1사단 연대장들과 참모들이 뒤섞여 뒤를 따르고 있었다.
카트라이트는 짐짓 일어서서 스미스를 향해 거수 경례를 했다. “‘셈퍼파이!” 구호 까지 붙혀서 였다.
스미스도 깜짝 놀란 눈으로 카트라이트를 보면서 멈춰서 거수로 답례 했다.
“이게 누구십니까? 우리 신부님이 이렇게 미남이셨습까?”
희색이 만면해 거수를 마치자 마자 두손을 잡는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어디가셨나 찾아 오라고 했는데 먼저 여기 와 계셨습니다.”
참모들을 동행해야 한다면 군종 참모인 자신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했다. 스미스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유난히 카트라이트에게 절친하게 대했다. 확인 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과학 기독교라는 신흥 개신교를 믿는다고 했다. 삼위일체, 동정잉태, 부활 이런 신비적이며 신화적인 내용을 뺀 기독교 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끔 던지는 질문이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냉철한 스토아 학파적 질문이기는 했다.

알몬드와는 간단한 악수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래도 스미스와 몇마디 주고 받느라 시간이 조금은 흘렀는데 알몬드는 지나쳐 가지 않고 옆에 서 있어주는 성의를 보였다.
실은 알몬드는 카트라이트와 악수를 한 뒤에도 테이블에 있는 클리어리며 군목들과도 일일히 떠들레 악수를 했다. 육군 군목들과는 친분이 있는 듯 했다. 스미스는 일행에게는 그냥 미소띤 목례만 하고 지나쳤었다.

병원장이 중앙의 작은 포디움 앞에 서서 인사를 했고 알몬드가 먼저 한마디 했다. 다행스럽게도 매우 짧고 간결했다. 해병 1사단이야 말로 10군단의 자랑이며 스미스 장군이야 말로 합중국의 영웅으로 앞으로 계속될 ‘다른 방면으로의 전진’ 에도 힘차게 앞장 서 줄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을 했다. 다른 방면으로의 전진은 이제 유행어가 된 모양이었다.
이어 스미스 소장은 이런 자리에 와보니 지난 20여 일이 꿈 만 같다면서 먼저 간 전우들과 이곳에서 아직 부상과 싸우고 있는 병사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충심으로 기도한다는 말로 역시 매우 간단하게 답사를 해 좌중을 잠시 숙연하게 했다.
병원장이 전장에서 오늘 돌아온 카트라이트 신부가 환자병사들을 포함하는 자신 병원 식구들을 대표해 오늘 모인 이 자리의 전장의 불사신들을 위한 축도를 해주겠다고 소개 했다. 카트라이트를 병원 식구의 대표라고 소개하는 것이 이채를 띠었다. 자신이 할말을 대신하라는 신호 같았다.

카트라이트는 존경하는 두 장군님이 훈시를 너무 짦게해서 시간이 많은 것 같아 식전 축도에 앞서 몇 말씀만 하겠다고 서두를 뗀 뒤 단도직입적으로 이 전쟁이야 말로 생명을 구하기위한 성전으로 공산 침략에 신음하는 한국인을 돕기위한 전쟁 이기에 하늘의 섭리에 따라 하느님의 백성 한국인 피난민들을 구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역설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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