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대통령 될 것” “독재자 김정은에 아부 안 할 것”
카멀라 헤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22일 민주당 대선 후보를 수락 연설에서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중산층 건설”을 최우선 목표로 제시한 그는 대외정책 분야에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강화를 강조하고 “김정은과 같은 독재자에게 아부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나흘간의 민주당 전당대회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11월 미 대선까지 남은 75일의 레이스도 본격 막이 올랐다.
비욘세의 ‘프리덤’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해리스 부통령이 손을 흔들며 무대로 성큼 걸어 나오자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를 가득 메운 당원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해리스 부통령은 “땡큐”를 거듭 외쳤고 ‘카멀라’ 푯말을 든 당원들은 “유에스에이(미국)”를 연호했다. 환호가 계속되자 그는 “할 일이 남아있다”며 당원들을 진정시킨 뒤 남편 더그 엠호프에게 “기념일을 축하한다”고 말을 건넸다. 그가 대선 출정식의 하이라이트인 후보 수락 연설을 한 이날은 부부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먼저 재선 도전 포기로 사실상 후보직을 내어준 조 바이든 대통령에 감사를 전하면서 “당신의 기록이 놀랍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줄 것이고, 당신의 인품은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당신의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인도 출신 어머니 사이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난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을 거쳐 2017년 상원의원, 2020년 부통령에 당선되며 권력의 정점에 올랐지만, 가족사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었다. 과학자이면서 민권운동에 참여했던 모친 샤밀라로부터 “불평하지 말고 무엇이라도 하라”(do something)고 배웠다면서 미셸 오바마 여사가 전당대회 둘째 날 연설에서 한 말을 소환하자 청중도 화답했다.
( 위사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2일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마친 뒤 남편 더그 엠호프와 포옹하고 있는 모습. 이날은 이들 부부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분열과 냉소의 과거로의 회귀냐 새로운 길을 개척할 기회냐”로 규정했다. ‘과거’를 상징하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름을 15차례 언급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연설 내내 성장 배경, 가치, 정책 등 모든 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선명한 대비를 꾀했다.
중산층 부활을 내건 그는 경제정책에서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경제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대규모 감세 공약을 중산층의 생활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트럼프세’라고 비판하며 “나는 중산층을 위한 세금 감면을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선 군 통수권자로서 동맹을 중시하고 인공지능(AI) 등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측 기조와의 차별화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를 응원하는 김정은 같은 폭군과 독재자에게 절대 아부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주의와 독재 간 항구적인 투쟁 속에서 나는 나와 미국이 어디에 속하는지 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트럼프식 대북 외교 접근이 아니라 북한의 핵 개발, 인권 침해 등 각종 문제에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미국 민주주의에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그는 “트럼프는 심각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를 백악관에 다시 돌려보내는 일은 극도로 심각한 일”이라며 차기 공화당 정부의 공약을 담은 ‘프로젝트2025’를 정조준했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면책 특권 주장을 일부 인정한 연방대법원 결정을 가리켜 “가드레일이 없는 트럼프를 상상해보라. 그는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힘을 오직 그의 유일한 고객인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검사 시절 경험을 들어 “내 평생 커리어에서 나의 고객은 국민 하나뿐이었다”고 한 것과 차별화한 것이다.
이날 해리스 부통령은 진보진영의 민주당 지지 이탈을 야기한 가자지구 전쟁 대응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언제나 이스라엘의 방어할 권리를 옹호할 것”이라며 이스라엘 지지를 천명하면서도 가자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끔찍했다” “가슴이 찢어진다” “절박하고 굶주린 사람들(난민들)”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특히 “바이든과 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존엄과 안보, 자유, 그리고 자기 결정권을 실현하도록 돕고 있다”고 말해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인정한다는 듯한 입장도 내비쳤다. 해리스 부통령이 발언을 마치자 청중석에서 가장 큰 환호가 나왔다.
‘해리스 대 트럼프’ 구도인 이번 대선의 첫 중대 국면은 다음 달 10일 ABC 방송 주최 토론이다. 무소속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이르면 23일 대선 후보를 사퇴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후보 간 초박빙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