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ykorea
연재소설 타운뉴스

<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26)

안동일 작

신앙 이란 무엇인가,  요순시대(堯舜時代)

그러면서 월봉은 상업을 장려하고 중국, 일본과의 무역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고려시대만 해도 송나라 땅 명주(明州)에서 7일 만에 예성강 벽란도에 닿아 교류가 활발했다는 얘기를 상기하고 있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외국선박의 내왕이 두절되었는데 나라에서 아예 큰 배를 만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때문에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어업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던졌다.

상업과 무역의 장려. 월봉의 주장은 탁견이기는 했으나 사농공상 신분질서가 엄연하면서 이를 무너뜨리게 되면 나라가 결딴 난다고 생각하는 사대부들이 엄존하는 이 나라에서는 요원한 일이었다. 상업은 억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조선땅에서 하나의 통념이었다.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농업인구를 감소시키고 가장 중요한 산업인 농업을 쇠퇴시킬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사대부들은 억상론(抑商論)을 주장했던 것이다. 물가가 등귀하는 원인이 상공인의 조작에 있다고 지적하곤 했고 수해나 한해(旱害)를  만나 굶주리는 사람이 속출하는 것은 백성이 농업을 버리고 말업인 상공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러면 형님은 어떤 나라가 바람직한 나라고 어떤 임금이 훌륭한 임금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직암의 설명에 말없이 있던 금대가 물었다.
“낸들 어찌 단정적으로 말 할 수 있겠나, 나야 사관의 한사람으로 고발하고 규명하면서 때론 한탄에 가까울 망정 의견을 제시하는 일이나 하고 있는 사람인데… 자네같은 영민한 인재가 나서 사람이 제대로 살 수있는 나라를 만들어야지, 하기는 사람 사는 이 세상이 온통 고해 바다인 걸,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괴로움을 안고 태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어려운 문제지. 나는 그래도 역사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역사속에 바람직한 나라가 있기는 했었습니까?”
“왜 요순시대가 있지 않은가? 물론 그때의 상황이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서도…”
“형님은 요순 시대가 실제 하는 역사라고 믿습니까?
여기서 의미있는 대답이 나왔다.
“그럼 믿고 있네, 믿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유학의 가르침이 모두 헛 것이 되는데…”
“형님이 유학 걱정을 하시요?”
“그럼 나도 유자인데 나중의 성리학 주자학의 어떤 부분이, 특히 이땅 조선에 도래한 그것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지, 온고지신의 원래 가르침 까지 잘못됐다고는 하지 않았네”
금대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고 동섬이 말을 이었다.
“ 요순 임금의 이야기는 그 서사가 감동적이지 까지 않은가? 그런 감동과 귀감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면 너무도 슬픈일이 아닌가?”

중국 역사상 堯(요)임금과 舜(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던 때 ‘요순시대’,  그때를 하나의 이상시대로 여겨오고 있지만 아무리 서경에 나오는 이야기 라고 하더라도 신화나 전설의 한부분으로 이해 하는 경향이 짙었다. 들어내놓고 허무맹랑한 가짜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요 임금의 치세가 100년 이었다거나 천제의 아들이었다라는 부분들이 그랬다.

요순시대(堯舜時代)는 곧, 덕으로 다스려지던 태평한 시대를 말한다. 그 시대는 어진 사람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는 시대였다. 3경 혹은 5경의 하나로 분류되는 서경(書經)에 명백히 나오는 이야기다. 서경은 ‘상고 시대의 기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요와 순 두 임금과 하, 은(상), 주 세 왕조에 대한 사관의 기록을 공자가 편찬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서경에 의하면 堯(요)임금은 ‘진실로 공손하고 극도로 겸양했기에 그 빛이 사방에 비치어 위와 아래를 모두 바로잡았다’고 했다. ‘덕을 능히 밝혀 구족을 친하게 하고 나니 백성이 올바르게 다스려졌다’ 고 한다.  서경에는 요임금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유교적 삶을 구현하고 농경사회에 중요한 역법을 확립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 시절에 舜(순)이라는 덕 높은 이가 있었는데  ‘그가 歷山(역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 그 곳 농부들이 모두 밭을 양보하였고, 雷澤(뇌택)에서 고기를 잡을 때는 그 곳 어부들이 다투어 어장을 주었고,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었다’ 고 한다.
순이 이처럼 훌륭하다는 소문은 온 나라에 퍼졌다. 그러자 대신들이 요임금에게 다음의 임금감으로 순을 추천하였다. 요임금은 순에게 娥皇(아황)과 女英(여영) 두 공주를 시집 보내고 아홉 아들 들을 보내 순의 생활을 직접 지켜보게 한 뒤 만족스런 결과를 보고 받은 뒤 선양했다.
순 임금은 지위가 달라졌다고 해서 교만하지 않고, 요임금의 뒤를 어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요순시대’라는 태고의 가장 이상적인 시대를 구현했다.
순은 음악을 좋아하여 ‘南風歌(남풍가)’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또한 악공들을 시켜 거문고를 개량하게 하고, 九韶(구소)라고 하는 악곡을 짓게 하였는데 후세에 공자는 순의 구소를 가장 완벽한 음악으로 칭송했다.

“이 서사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는 생각지 않네, 설사 이 이야기들이 전해 오는 이야기를 한데 묶어낸 것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절절했고 귀감이 됐으면 사관들이 앞다투어 기록 했겠는가. 그 사관들의 정신이 살아 있어 후손인 우리들에게 울림이 있다면 이는 역사요 진실이라는 것이 내 생각일세”

요순시대 문제에 관한한 공자도 사관이었고 맹자도 사관이었으며 사기의 사마천 도 그 몫을 했다.
동섬은 울림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동섬의 이말을 듣는 순간 일신에게는 정말 커다란 울림이 있었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천주교 성경과 관련된 의문과 의구가 단번에 풀리는 그런 큰 울림이었다.  강학에서도 성경, 특히 구약에서의 이야기들을 진실된 역사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지어낸 이야기로 보아야 하느냐는 논란이 줄기차게 있었기 때문이다.

동섬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에도 농경 사회에서 물을 다스리는 치수가 가장 큰 일이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인물들을 통해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 비교  하면서 우리에게 교훈을 던지지 않는가. 역사는 오늘의 거울이요 내일의 지침이 라는 얘기가 결코 헛말이 아닐세.”

두 임금이 다스렸던 지역은 황하문명의 발생지였던 황하지역.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강물이 수시로 넘치는 탓에 자주 골머리를 앓았다. 넘치는 물 때문에 애써지은 농사도 계속 망가졌던 모양이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이 강물을 다스리는데 굉장히 애를 썼다. 먼저 요임금은 ‘곤’이라는 인물과 함께 치수사업을 위해 애를 많이 썼지만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순임금도 자리에 오르자마자 치수사업에 매달린다.  이 때, 이 치수사업의 책임을  ‘곤’의 아들인 ‘우’라는 인물에게 맡기는데 우는 자기 가족과 자신의 안위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황하강의 범람을 다스리는데 성공하게 된다.

곤은 큰 제방을 쌓아 물을 막아 홍수를 막으려 했지만 우는 물길을 돌리는 운하 사업으로 치수를 성공으로 이끈다. 우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순임금은 다음 후계자로 ‘우’를 지목해 우는 순임금 다음으로 새로운 임금이 될 수 있었다. 우임금은  하나라를 세웠는데 그 후부터 세습왕조로 바뀌게 되었다. (계속)

 

Related posts

38대 뉴욕한인회 신임 이사장에 이강원씨

안지영 기자

수미 테리 사건에 대한 한국 대통령실 반응은

안지영 기자

“해리스·트럼프, 2차 토론 대신 CBS ‘60분’ 연속 출연 검토”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