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46 F
New York
September 20, 2024
hinykorea
연재소설 타운뉴스

<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18)

안동일 작

  천진암 강학 그날

“천주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닙니다. 여기에 우리의 살길이 있고 나라가 바로 서는 길이 있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살 길 이었습니다. 천주의 도리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있으나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여 하늘의 주재함을 알지 못하고 있는 데서 모든 문제가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험난해 진 까닭도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천주님은 우리를 자유롭고 복되게 살기위해 만드셨고 그 길을 제시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의 웅변은 거침이 없었다.
“무릇 선을 행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最高의 尊者’가 있어서 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믿어야만 합니다. 진정힌 人倫之 大倫이라 함은 만물의 주재자가 바로 천주 하느님 아버지이며 우리는 그 분의 뜻에 따라  세상에서 그분의 벼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세상을 이곳 조선땅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광암은 상기된 얼굴로 책의 한대목을 짚어가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 징표이자 열쇄가 바로 이 사도 신조입니다.”  광암은 사도신조를 벌써 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신상제 전능적부 창조천지적주 (我信上帝 全能的父 創造天地的主 ) 나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하 만물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순간 천주는 우리와 함께 있게 됩니다. 이후 이어지는 야소 그리스도의 동정 마리아 탄생을 진심으로 믿을 때 신앙이 태어납니다. 我信我主耶蘇基督 上帝獨生的子(아신아주야소기독 상제독생적자)  그렇습니다. 독생적자 이 오묘한 천지를 창조하고 질서를 세우신 천주 성부 께서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
기실 사도신조는 교요서론 말고도 여러 책에 소개 돼 있어 좌중도 몇번 훑어 봤던 내용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도가 되려면 천주의 천지 창조와 예수(야소)의 동정탄생 그리고 십자가 고난 또 부활과 재림을 믿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믿어야 한다기 보다 사도로서 신도로서 믿고 있다는 고백이다.
종교로 승화하려면 그렇게 신앙할 수도 또 고백할 수 있겠거니 하고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랬는데 그날 후광을 안고 열정적으로 열변을 토하는 광암의 사도신조는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섰다. ‘그럴수도 있겠다’가 아니라 “그랬었나? “ 혹은 “그랬구나” 였던 것이다.

그날 퇴촌의 산골 초라한 불교 법당에 천주의 성령이 찾아왔음이 틀림없었다. 직암은 광암의 열변을 듣는 내내 자신의 책상다리를 한 몸이 공중에 들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자주 바닥을 내려다 봐야 했다. 광암의 우렁찬 목소리는 마치 시원한 폭포수처럼 느껴 졌지만 그 내용은 마음속에 쏙쏙 들어왔다. 광암의 말이 마치 찰떡 경단처럼 입안으로 들어와 전신으로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광암, 덕조의 사도신조 강의는 새벽 까지 이어졌다. 덕조는 한 소식 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막힘이 없었다.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후일 곰곰히 따져보면 몇 군데 헛점과 비약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따질 엄두를 낼 수조차 없었다. 사도신조는 사도로서의 어느정도 신앙이 갖춰져 이를 고백하고 다짐하는 것인데 약간의 소양은 있다 하더라도 그대로 믿고 이를 받아들이기에는 좌중들에게 무리가 있었음에도, 또 사도신조에는 경세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지침이 들어 있지 않았는 데도 그랬다.

광암은 사도신조를 통해 하느님 천주가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인간이라는 생명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게 된다고 했다. 하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따르게 했고 모든 천하만물을 인간을 위해 복속하고 인간을 위해 쓰여지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십시오 이 호롱불 얼마나 아릅답고 오묘 합니까? 보십시오 저 벽에 새겨진 얼룩 조차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  깨우치고 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여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잠깐 눈을 붙혔던 그날밤 일동은 대부분 묘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때 직암과 그 동료들은 모두 성모 마리아 인지는 확신 할 수 없지만 그이로 짐작되는 여인의 꿈을 꾸었다.

직암의 꿈은 이랬다.
구중궁궐 같기도 하고 어느 큰 부잣집 큰 저택 안 같기도 했다. 미로 같은 복도가 계속 이어져 있었는데 직암 자신은 어딘가로 급히 향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랬는데 누군가 자신의 손목을 꽉 잡았다. 돌아보니 진토가 거의 된 백골이었다. 흉칙한 몰골에 놀라 뼈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힘이 너무 완강해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 한참을 실랑이 해야 했는데 오히려 백골쪽 으로 끌려 가는 형국이었다. 그때 직암은 “이 요물아 썩 꺼져라 나는 야소 마리아를 아는 사람이다. 내 뒤에는 야소 마리아님이 계신다.” 고 소리쳤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꿈 속에서 조차도 이상하게 생각 됐다.  생각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는데 다른 때 꿈속에서 만큼 답답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랬더니 그 백골의 힘이 스르르 빠지더니 신기하게도 가루로 변했다.  다행이다 싶어 휴 한숨을 쉬고 주위를 다시 돌아 보려니 저 앞에 화려 하지는 않지만 조선옷을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인이 아기를 안고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달려가서 아기의 모습을 보려 했는데 발이 무거워 뗄수가 없었고 여인은 스르르 사라졌다. 그리고는 꿈에서 깼다.   

만천 이승훈은 연병장에서 수많은 군졸들과 싸우는 꿈을 꿨는데 거의 죽을 위기에 처했을때 고운 조선옷 여인이 나타나 구해줬다고 했고 약종은 물에 빠지려는데 여인이 나타나  구해줬다고 했다. 녹암 형님은 빙그레 웃기만 했고 김원성은 그런 꿈 꾸지도 않았다고 냉소적이었다.

다음날  이후 부터 천진암 강학은 유학 경전을 작폐하고 천주서적 공부에 몰입했다.  광암이 들고온 사도신조를 담고 있는 교요서론이 그 첫 책이었다.  천주의 속성, 천지 창조, 영혼의 문제 그리고 십계등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중국식 한자 이름을 남회인(南瀤仁)으로 쓰는 벨기에 출신의 사제가 1670년(康熙 9)에 북경에서 간행한 책이다. 문체가 간결하고 명료한데 다가 유학적  논리를 차용하고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 중간되어 널리 읽혔으며, 언급한 대로 후일 건륭제의 명령으로 1781년에 편찬된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되었다.
본문은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천주의 속성, 천지 창조, 영혼 불멸, 천당 지옥 등 주요 교리를 서술하고 있고,  둘째 부분에서는 십계를 11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셋째 부문에서는 특별히 사도신경을 46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고, 넷째 부분에서는 주의 기도, 성모송, 성호경 등 주요 기도문을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한 다음 세례성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교요서론  강학은 사흘 쯤 계속됐다. 의외로 천주의 인간을 비롯한 천지의 창조에 대해서는 일동 대부분이 크게 의문을 제기 하지 않았다. 꼭 사람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최초의 인자를 만들어낸 그 어떤 절대적인 힘이 있다는 것은 이해 할만 하고 납득이 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의 동정 잉태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직암도 그때까지는 상징적인 신화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축이었다.  단군 이야기며 석가모니가 모친의 옆구리로 나와 태어나자 마자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했다는 설화처럼…
광암은 이 부분이 천주교 신앙의 요체이며 집약된 정수라고 강조했다.
“왜 진심으로 믿지 못하냐?”고 여러차례 반문했고 직암을 비롯한 일동은 고개를 지긋이 끄덕이기는 했지만 절실하게 다가서지는 않았다.
“우리 인간이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인 것은 천주께서 감사하고 감격하고 또 감탄하라는 뜻에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천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계속)

Related posts

<파리올림픽> 드디어 무기 쓰지 않는 종목에서 금메달

안지영 기자

내년 뉴저지 주지사선거  벌써부터 관심

안지영 기자

<박동규 컬럼>   트럼프  저격 사건을 보는 한 이민자의 소회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