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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9)

 안동일 작  

     2.  뉴튼, 그리고 파티마의 기적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밥 쿠글러 서장이었다. 반가운 전화였다.
“하이 밥, 정말 축하해”
“고마워, 다 미스터 안이 애써 준 덕분이지”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밥은 한인 밀집지역인 뉴저지 버겐 카운티 내 새들브룩이라는 타운의 경찰 서장이다. 그는 소문난 친한파 인사로 동양적 의례가 담겨 있는 공치사격 예절인사에도 밝은 편이다. 나와는 갑장으로 지난해 어머니 장례식 이래 매우 절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그는 천주교 신자였다.
며칠 전 그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자신에게 씌워진 불명예와 정치적 곤경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법원의 판결이었다. 뉴저지 주 지방법원이 주 검찰이 제기한 그의 부패, 직권남용 혐의 기소에 대해 2년여의 심리 끝에 최종 기각 판결을 내렸다. 재판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이다.

주 검찰은 지지난해 2021년 선거 국면에서 쿠글러가 새들브룩 경찰서장 직권을 남용해 자신이 가업으로 운영하는 장의사 고객들에게 경찰 차량 에스코트를 제공해 부당한 사적이익을 취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기소했었다. 미국에서는 경찰 공직자라 하더라도 가업은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이 기소는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쿠글러가 그해 공화당 후보로 카운티 보안관(쉐리프) 선거에 나서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새들브룩 시의회가 이 문제를 들고나와 요란스레 제기해서 서장의 직무까지 정지시켰고 역시 민주당 성향인 검찰이 기소까지 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정치적 이유에 의한 흠집내기였고 트집이었다. 미국에도 이런 일이 왕왕 있다.

미국에서는 장례 행렬에 경찰 에스코트 서비스가 종종 있어 한인 동포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서 있다. ‘장례 차량 에스코트 서비스’는 장례 행렬의 교통안전을 위해 교통경찰관이 순찰차량을 이용해 운구부터 장지 도착까지의 전 과정을 에스코트해 가족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 고인과 유족에게는 편안하고 안전한 발인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여기에는 지역사회 차원의 고인에 대한 예우의 의미도 있어 누구나 다 해주는 것은 아니고 시장, 시의원, 라이온스클럽 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지낸 이들은 경찰이 알아서 해주고 나머지는 가족이 신청하면 심사한 후 해주곤 한다.

그런데 밥 쿠글러를 곤경에 빠뜨리게 한 문제의 에스코트 서비스 세 경우 모두 한인들의 장례였다. 그러니 한인사회도 일단의 책임이 있었고 사태의 추이를 주시해야 했다.
그날 판사의 기각 결정으로 쿠글러 서장의 복직, 복귀가 즉각 이루어 지지는 않았다. 검찰측이 항소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항소심은 큰 이변이 없는 한, 같은 기각 판결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쿠글러는 시름을 놓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동안 못 받았던 봉급 한꺼번에 나오면 부인과 함께 한턱 근사하게 쏠께”
“그래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
경제적으로야 어려울게 없는 그도 지금 정지 돼 있는 봉급에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자네 아파트 뒷마당에 있는 성모님 아직 계시지?”
“그럼”
“그 성모님 한테도 고맙다고 인사 드리러 가야 할텐데”
“언제든 환영이니까 와.”
밥은 며칠 전 꿈에 그 마리아 상, 내가 글 쓰겠다고 약속한 그 마리아상이 나왔다고 했다. 성모님이 눈물이 글썽해 가지고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했단다. 신기한 일이다. 언젠가 함께 어디 가기 위해 나를 픽업해준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성상을 보고는 차에서 내려 그 앞에 섰었다. 그때 그는 성모송을 외웠다. 천주교인들이 가장 많이 읇조리게 된다는 성모 마리아 기도 성모송을 영어로 ‘헤일 메리’라고 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그때였다. ‘로사리 플레이어즈’가 정확한 명칭 이지만 더 친근하게 ‘헤일 메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홀리나 헤일이나 같은 말 이란다. 차에 앉아 성모송을 영어로 들려 달라 했더니 아주 천천히 외어 주었었다.
“ Hail Mary, full of grace, Blessed are you among women, …. Amen.”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 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여인 중에 복 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 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해 빌어 주소서 아멘)
천주교인들은 개신교인들의 우상숭배라는 말에 유난히 질겁 하면서 마리아님께는 함께 기도해 달라 부탁 하는 것이지 직접 마리아님을 부르는 기도는 없다고 애써 강조한다. 성부와 성자에 에게는 흠숭(欽崇)을, 성인들에게는 경배(敬拜)를 하는데 마리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그중 으뜸인 상경 (尙敬, 上敬)이라는 것이다.

밥 이야말로 역경을 겪으면서 신심이 깊어진 모양이다. 그는 말 그대로 태어나서 보니 자신은 가톨릭 신자였단다. 모태신앙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지 매주 성당에 나가기는 하지만 그는 뜨끈한 것도 없었고 특별히 신앙에 대해 강조할 것이 없었다고 했었다. 언젠가 천당이 있다고 정말 믿느냐고 물었을 때 한 5초 쯤 퍼즈가 있다가 “그럼 믿지” 했었다. 이어 내가 “그럼 그 천당은 우리 몸으로 가? 아니면 영혼이 가?” 했더니 “영혼으로 가겠지.” 했었다. 그런 그가 성모송을 강조하고 있었다.
밥은 “자네도 조만간 성모 마리아와 함께 기도를 올리는 기도가 얼마나 효험이 있는지 알게 될 것” 이라 면서 나보고 알씨아이에 잘 나가고 있냐고 물어왔다.
느낌에 교리반을 말하는 것으로 짐작했지만 짐짓 물었다.
“알씨아이가 뭔데?”
예비신자, 세례준비교육 프로그램을 Rite of Christian Initiation of Adults 줄여서 RCIA라고 한단다.
그는 내가 영어를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 듣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더 좋다.
그는 이번에 자기 얘기를 기사로 쓸려면 지난번 선거 때 물심 양면으로 성원해 준 많은 한인들에게 너무도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달라고 새삼 당부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해 줄까봐…

2021년 카운티 보안관선거에서 그는 본 투표에서는 민주당 후보에 앞섰으나 우편 투표에서 뒤집혀 근소한 차로 석패한 바 있다.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넉넉하게 이기고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잠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뒤집혀 있었다. 그때 아내의 속상해 하는 모습이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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