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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일 컬럼> ‘그때 거기, 지금 여기’의 각오

– 월드 프리미어  ‘순명’ 발표에 붙혀

안동일 (본보 대표기자)

오랫만에 컬럼 형식의 개인글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 뵙는다. 가끔 컬럼을 올리겠다고 약속을 했으면서도 이를 지키지 못했다.  실은 지난 1년여 동안 필자는 행복한 글 감옥에 갖혀 있었다. 오늘 하이뉴욕 코리아 지면에 연재가 시작된 대하소설  ‘순명. 그때 거기, 지금 여기’를  쓰기 위해서 였다.
여러번 말했듯이 긴글은 궁둥이가 쓰는 법이다.  지긋하게 앉아 피를 말리는 고통을 느끼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야 긴 글과 종국에는 책이 나오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런 재주와 끈기를 나에게 주신 신께 감사해 왔다. 그때의 신은 꼭 그리스도가 아니기는 했다.
그 행복한 글 감옥에 나 스스로를 영어 하느라 그동안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희생해야 했다.

발표된 실록 장편 소설의  제목을 보고 눈치챈 독자들은 대개 천주교인들 일 것이다. ‘순명’이란 말,  ‘지금 여기’란 말은 천주교인들에게 익숙한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글은 천주교만을 다룬 가톨릭 소설은 아니다. 이 땅 (실은 저 땅이지만 정서 상)에 천주학이 도래한 1700년대  중엽에서 현재인  2020 년대를 아우르는 3백년 가까운 세월을 담은 꽤 장구한 시간의  대하 이야기다.  많은 부분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 했기에 실록이란 이름을 붙혔다.  실제 실록소설은 다큐 소설의 한자식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글은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작가의 상상과 탐구가 더 많은 분량을 할애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글을 쓰면서 지난 일년여 동안 많은 것을 공부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천주교 박해에서 시작해 그를 밑거름으로 개신교가 전해졌고 그 개신교의 긍정적  정신이 이땅의 오늘을 이루게 했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고 이를 복기하고 분석하는  형식으로 전개 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겪는 분규와 질곡은 과연 무엇인가를 구명한다.   어렴풋이나마 해법을 제시해야 했기에 규명이 아닌 구명이란 단어를 쓴다.    물론 면면히 흐르는 우리 민족의 착한, 긍정적 에너지, 사상의 근원을 더 따져보면 “하늘이 두럽지 않으냐” “천벌을 받는다”는 말에서 알수 있는 우리 고유의 ‘경천애인’ 사상, 복을 지으면 극락에 가지만 업을 지으면 축생으로 윤회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밑바탕이었던 것도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이를 간과 하지는 않는다.

이씨 조선은 결국 천주교 박해 때문에 망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미국의 건전한 기독교 정신이 큰 영향을 끼쳐 이나마의 번영으로 나타 났다는 것이 이 이야기 속의 내 결론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민족은 천주교 전래 그 시기 부터 하늘에 의해 선택 받았다는 것이 또 하나의 결론이다. 견강부회 아전인수라는 느낌은 있지만…

이야기의 시작 주인공인 권일신 성조를 위시한 초기 천주교 선구자들의 생각과 믿음, 그 천주교의 희생을 바탕으로 , 숨은 천주교인 이었지만 개신교를 받아 들여(개종?) 이땅에 개신교가 전파 되는데 지대한 공훈을 세운 이수정 선생,  우리가 너무도 운좋게 만났던 아펜젤러며 언더우드 같은 빼어난 미국 청년 선교사들, 김구 이승만 여운형 같은 그들 제자들의 각성과 활약 그리고 그들의 한계가 이 소설의 주요 빼대다.  그 가운데 인간적으로 참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민족 대표 33인중 한사람이었지만 소문난 친일파로 전락했던 박희도 선생의 사연,  그리고 기독교 사상과 민족 사상을 융합해 민족의 장래를 생각 했던 유영모 선생,   우리의 의지와 바람과는 달리 전개됐던 해방과 6.25 동란 국면 에서의 미국 선교사 후예들의 역할,  6.25를 성전으로 알았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미군 참전 군인들과 종군 신부들의 이야기, 그 가운데 우리 피난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헌신 순명했던 빅토리아 메러디스호의 선장 출신 마리누스 수사의 이야기와 미국 가톨릭의 수난사가 밀도있게 펼쳐지게 된다.

실은 이 이야기는 아직 진행중이다. 지금까지의 구상이 그렇다는 얘기다. 긴 글은 궁둥이가 쓰는 법이지만 또 손끝에서 나오기도 한다. 한참 쓰다보면 처음 구상과는 달리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손끝에서 저절로 술술 풀어져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긴 대하 이야기는 지금 절반쯤 완성돼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피를 말리는, 그러면서도 살아있음을, 글 쓸 수 있음을 온몸으로 감사해하는 시간이 길어 질지 모른다.

실은 이글을 이렇게 일찍 공개 할 생각은 없었다. 알고 있는 독자들도 많이 있겠지만 그동안 필자의 이름으로 이 지면에 연재된 ‘영웅의 약속’ ‘구루의 물길’ ‘조선여인 금원’은 이미 책으로 묶여 발표됐던 글을 조금 손봐서 연재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북관대첩비’나 ‘안중근 장군 유해’를 연재 할까도 생각 했었다.
하지만 아내의 강력한 권유로 연재를 시작 하기로 마음 먹었다. 말하자면 이글은 ‘월드 프리미어’다.  나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제현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뜻이다.
말했듯이 내게는 소설, 르뽀집을 포함해 저서가 열권 쯤 있다.
책을 낸다는 일은 여러 인연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내 경우에는 늘 강조하듯   두 명의 확실한 독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아내와 출판사 편집자들이었다. 내 젊은 아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박학 현명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대리운전이라도 하고 주유소에 가서 펌프라도 잡겠다고 하면 집 나겠다고 생 난리다. 다 내 복이다. 또 편집자들도 내 글을 보고는 대단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까다롭지 않게 근사한 책으로 만들어 줬다.

이번에도 이 글을 시작하는데는 아내의 격려와 성원이 큰 힘이 되었다. 당초 한국의  출판사에 있는 후배와 연락이 돼서 그곳에서 일단 단행본으로 내려 했는데 사정이 생겨 무산이 됐던 것도 우리 지면에서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복이다.
아무튼 연재를 시작하면서 중반 이후 부분들의 집필에 매진 할 것이며 이미 쓴 부분에 대해서는 퇴고를 거듭할 작정이다.

동방의 낙후되고 가난에 찌든 나라를 위해 조선말을 배우고 꽁보리밥을 함께 먹으며 기꺼이 목숨을 버렸던 12분 프랑스 선교 사제님들,   그나마 지탱되던 선비정신을 일소 하면서 조선을 망하는 지름길로 몰고갔던 세도정치의 행악,  천주교인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낸 오가작통으로 인한 미풍양속의 절멸,  그후 당시 풍미했던 신앙적 영성보다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먼저 가르쳤던 미국 개신교의 엘리트 청년 선교사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으로 우리 민족이 살아있음을 만방에 알린 3.1운동,  하릴 없이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 할 뻔 했던 한반도를 반쪽이지만 미국 쪽에 서게 한 얄타회담 막후 얘기, 해방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며 자신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찢어 죽이라고 했던 민족대표.   미군이 유엔군의 모자를 쓰고 참전 할 수 있었던 50년 6월말의 유엔 안보리 비사,  장진호 그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동상걸린 손으로 소총을 움켜 쥐고 ‘몬테주마의 궁정에서, 트리폴리의 해안까지’ 를 힘차게 불렀던 미 해병 청년들과 수문교 다리 복구 때 나타난 성모 마리아… 신앙의 힘으로 아님 종교의 외피를 쓰고 매진했고 얼마만큼은 이루어낸 한국 민주화와 산업화의 뒤안길 그리고 미국 …

온갖 감동적이며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이 이어지게 된다.  이런 이야기 한편에는 작가인 나의 생각과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고 표출 되기에 이글은 50년 가까이 펜을 들고 있는 나의 자전적 이야기 이기도 하다.

지금으로서는 연재를 진행하면서 영문으로 번역해 이곳 미국 출판사들을 노크할 심산이다. 혹시 아는가 부커상 후보에라도 오르게 될지… 돌아온 탕자 처럼 10여년간의 귀국동포 생황을 끝내고 이곳 미국으로 돌아올 때 내 가장 큰 목적과 계획이 6.25를 제대로 다룬 글을 써서 한국과 미국에 여봐란 듯이 발표 하겠다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한 바 있다.

젊은 시절 나의 은사 탄허 큰스님은  80년대 초반, 서울 진관사에서  30년 쯤 뒤인 2010년 대에는 한국 가요가 자유의 여신상과 에펠탑에서 울려 퍼지게 될것 이라면서 나 또한 아주 큰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 예언 하시기도 했었다. 그때는 덕담쯤으로 여겼는데 싸이와 비티에스를 보면서 달리 생각하게 됐다. 정말이다.

‘ 순명. 그때 거기, 지금 여기’와  이글을 읽게 되는 독자 제현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6/3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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