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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94회

 안 동일 지음

38. 색즉시공 공즉시색

어스름 논에서 가을걷이를 끝낸 농군들이 낟가리를 쌓고 있었다. 일이 거지반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노적봉이 여러 개 쌓여 있었고 농군들은 허리를 펴고 두드리고 있었다. 농군중에는 수염을 기른 털복숭이 이필제도 있었다. 그도 낫가리를 쳐다보면서
가을걷이가 이처럼 설레는 일이라는 것을 필제는 처음으로 느꼈다.
“수고 했시유. 선달님.””자네들도 애썼네. 어르신도 ““선달님은 낟가리 쌓아본 적 없을 텐데 어찌 그리 손이 재바르답니까?”
“벌써 세 번째 낫가리 쌓기인데, 익숙해 져야지.”
필제가 쌓아놓은 낟가리를 만지며 대꾸했다. 그 높이만큼 기쁨과 대견함이 온몸에 차올라 있었다.
“먼저들 들어가지, 시장들 할 텐데.”“선달님은?”“나는 잠깐 볼일이 있어.”
“또 택견연습하시려우?”
“아니야.”동료들이 농기구를 챙겨 논뚝으로 올라갔다.
필제는 잰걸음으로 저쪽 길성이네 논판으로 몸을 옮겼다.

동료 농군들에게는 잠깐 볼일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라고 했지만 실은 까마귀와 참새들이 별빛 타고 와 곡식을 축 낼까봐 그것을 단도리 하고 들어가려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쪽 묶음이 부실한 듯 했다. 그만큼 낟알 하나가 소중한 피땀 이었다. 따지고 보면 땅이 준 것이고 하늘이 준 것인데 싶어 더 그랬다.
농부의 삶을 살고 있지만 정혁의 꿈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민초들과 함께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정확했다.
사람들은 대원군의 개혁에 박수를 보내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필제는 달랐다. 양반네의 결기는 필제가 보기에는 죽이었다. 쉽게 끓고 언제 식을지 모르는… 어차피 정혁은 민초들과 함께 해야 했다. 사대부 몇몇이 앞장서 궁중에서 벌이는 반정과 역모는 정혁이 아니었다. 이 땅의 민초 팔할은 농투산이, 농군이었다. 예전의 필제는 자신이 앞장서 나가면 민초들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거기에는 동학이 큰 역할을 했다. 열성신도 까지는 안 돼도 필제는 신임 교주 최시형과도 몇차례나 대면한 일이 있을 정도로 동학교도들과 가까웠다.

교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선생은 고종이 즉위한 이듬해 그러니까 대원군이 집권한 직후 사도난정의 죄목으로 효수형에 처해졌지만 이미 탄압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순교하기 전 최시형을 북접주인으로 정하고 해월(海月)이라는 도호를 내린 뒤 도통을 전수하여 제2대 교주로 삼았다.
수운 선생은 세상이 어지럽고 인심이 각박하게 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천명을 돌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의 인내천 사상은 당국의 탄압하면 할수록 노도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사람 섬기기를 한울처럼 섬기라’

낟가리 밑둥에 새끼를 한 번 더 두르려는데 생경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랫만에 느끼는 살기어린 기척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쯤 되는 것 같았다. 자신 손에는 변변한 무기도 없었다. 그나마 낫도 저쪽에 있었다.
필제는 강이 보이는 광천 언덕 쪽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그림자들의 속도도 그에 못지않게 빨랐다. 아니 더 빨랐다.

금원에게 전해진 흉보가 허황되고 틀린 소식은 아니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널문언덕 밑 솔밭에서 어깨에 칼을 한번 맞았고 너럭 바위 위에서 가슴 쪽에 칼을 한번 맞았다. 통증보다 피가 흘러 나오는 것이 문제였다. 배 쪽으로 들어오는 칼을 한번 더 맞고 필제는 달래 강 아래로 몸을 던졌다.

다음날 금원은 몇몇 식솔들과 함께 어스름에 동사로 갔다. 그리고는 법당과 요사채들에 기름을 부은 뒤 불을 놓았다. 저들에게 내주느니 빌미와 꼬투리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불을 놓는 게 낳았다.
타고 남은 재는 기름이 되는 법인데…
동사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금원은 그 모습을 눈을 크게 뜨고 주먹을 꼭 쥔 채 지켜보았다. 그러지 말자고 했는데도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초롱의 작은 손이 금원의 손으로 다가왔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머니.”
초롱이 의젓하게 말하면서 금원의 주먹을 펴면서 깍지를 끼어와 꼭 쥐었다.
순정과 인주도 슬며시 눈물을 닦은 뒤 금원의 다른 쪽 손을 함께 꼭 잡았다.
세 사람, 공양주와 사미승 그리고 우바이는 그때 함께 타버린 재가 기름이 되는 법을 떠올렸다. 태을 스님이 금강산으로 들어가시기 전 들려준 법문의 한 구절이었다.

달포 걸려 도착한 금강산 암자에서 만난 태을스님은 의외로 담담했다.
“얼굴이 많이 상했구만, 먼길 오느라고 애썼네.”
그럴 뿐, 전갈을 받으셨을 텐데도 끔찍한 일들을 먼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금원도 전국 각지의 용호단에 총궐기 명령을 내리는 회주의 社(사)자 지침을 생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며칠 밤 산길을 걷고 나니 그런 분기와 결기가 수그러 들었다. 이쪽의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승산은 없고 위험은 컸다 지금으로서는. 그랬다. 초롱의 말대로 끝난 게 아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이대로 끝내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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