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동일 지음
파국 그리고 시작
영화루에서 한나절 머물면서 백방으로 상황을 파악해 보았지만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동사의 사정이 궁금했는데 화영루 사환을 보내 이쪽의 상황을 전하고 그곳 사정을 알아오게 했더니 다음날이 돼서야 아직은 별일 없다는 전갈을 받았다.
총무스님은 동사를 비우고 주변으로 흩어져 몸을 피하고 볼테니 금원도 이런저런 상황 알아본다고 도성에 남아 여기저기 다니지 말고 일단은 몸을 숨기고 있어야 할 것 이라는 태을당의 당부를 담은 서한을 보내왔다.
하지만 금원은 스승의 당부를 따르지 않았다. 상황을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신대장과 연락이 닿았고 주상궁의 아랫사람인 항아를 만났다.
금원은 이를 악물어야 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이 그리 돌변할 수 있는가 싶다. 대원군은 그래도 금원을 생각해서 피신할 여유를 준 모양인데 그렇게 충심으로 대했던 또 친숙해 졌다고 여겼던 조대비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싶다.
모든 것이 조대비의 뜻이었다. 참으로 냉혹하기 짝이 없는 토사구팽이었다.
조대비는 그날 작심하고 흥선대원군을 불렀던 모양이다.
“대감, 을해결사라고 들어 보셨소?”
대원군은 처음 듣는다고 답했단다. 실제 그랬을 것으로 여겨지기는 한다. 금원도 태을도 을해 결사라는 명칭을 대원군 앞에서 입에 담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감 을유년 흥거에 관한 진천에서 올라온 상소문은 보셨소?”
“을유년 흥거라면?
“내 부군 효명세자가 돌연 세상을 떠난 일 말이오.”
‘예 그 일이야 알지만 상소문 얘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있소, 한번 보시오.“
대비가 탁자위에 있던 낡은 두루마기를 대원군 앞으로 던졌다.
무심한 표정으로 두루마기를 들어 읽어보던 흥선군의 표정이 점점 놀라움으로 변해 갔다.
그 표정이 오래된 항아리의 그것처럼 투박해 보였다.
“어떻소?”
“너무도 참혹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이 땅의 왕권이 이토록 형편없이 짓밟히다니…이 쳐죽일 놈들을…”
“대감도 이 상소의 내용을 그대로 믿소?”
“정황이며 상황묘사가 그럴듯하기는 합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흥거는 지나간 일이고 만동묘 철거로 어느 정도 대처는 한 셈 이라고 봐도 되겠지만 이 일을 빌미로 상민들이 왕권과 사대부의 권위에 도전해 오고 있음이 문제입니다.”
“허허, 그도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중 중인들이 가장 문제입니다. 요즘 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마마께서 걱정하실 만큼 그렇게 심상치 않은 정도는 아닙니다.”
“아무튼 대감도 역관 중인들과 이리저리 어울리다 나와 연이 닿게 된 것 아니요? 그래서 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고…”
“빚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서두…”
“경복궁 중건을 하시고 싶다고 하셨소?”
“예 마마.”
“조건이 있소. 이 상소의 초안을 세상으로 가져간 이필제라는 서얼 선달을 처리하시오. ”
“처리라면, 무슨 말씀이신지?”
“대감도 참, 영원히 입을 못 열게 하란 말이오.”
천하의 흥선군도 몸을 떨어야 했다.
“필제는 마마가 아끼는 금원당의 사람입니다.”
“내 금원도 내칠 참이오. 을해결사가 바로 금원과 필제가 양반 사대부를 쳐내고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만든 능상의 조직이라오. 이를 반드시 처리 하시오. 그러면 내 대감의 경복궁 중건을 적극 도울 뿐 아니라 전권을 대감께 드리도록 하겠소.”
대원군이 다시 몸을 떨었단다. 다음 말은 대원군의 몸을 더 떨게 했다.
“그리고 서원철폐 그쯤에서 접으시오.”
“네? 마마 그건…”
“만동이라고 들어 보셨소?”
“어렴풋이…”
“내가 바로 만동이오.”
“네?”
“아무리 만동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왔다고는 하지만 을해결사 따위의 천것들의 손에 우리가 놀아 날 수는 없는 일 아니오?”
흥선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만동을 확실히 접수하기로 했소. 물론 조금 손을 보기는 할 것이오. 아무려면 상것 잡인들의 결사만 하겠소?”
‘와장창 쨍르랑’
남한산성 수어장대로 올라가는 산길에 있는 개울 옆 농막의 정지간 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춘궁동 향교에서 청량산 남한산성 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고골 마을 끝 무렵 개울이 내려다보이는 산길에 있는 농막이었다.
농막 부엌에서 저녁을 지어 날라 오던 초롱이 방안에서 들려온 소리를 듣고 놀라라 상을 떨어뜨린 것이다.
금원과 초롱 그리고 녹번정과 동사의 식솔들이 일단 자리를 튼 곳이었다.
충청도에서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계원이 전한 비보였다. 필제가 죽었다는 전갈 아닌가. 한양서 내려간 소문난 살수 네 명이 암습해 쓰러뜨린 뒤 처절하게 난도질을 했고 달래강 절벽 아래 강물로 시신을 던져버려 장례도 치를 수 없게 만들었단다.
“어쩐답니까? 어머니.”
부엌의 난장판을 놔둔 채 방에 들어온 초롱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소란 떨 것 없다.”
금원은 점잖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도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