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ykorea
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88회

안 동일 지음

대원위 분부

흥선군, 그리고 조대비의 20여년 인고의 세월에 비해 너무도 짧은 즉위식이 끝났다.
조선의 왕들은 대부분 선대왕이 사망한 뒤에 왕에 즉위했다. 따라서 성대한 식을 거행하기는 어려웠고, 애도의 분위기를 담은 가운데 간략한 즉위식을 거행해야 했다. 상주인 국왕과 신료들은 즉위식이 거행되는 동안 잠시 예복을 입었다가 이내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13세 어린 익성군 명복이 즉위한 이날은 정식으로 선왕 장례의 상복을 갖춰 입는다는 성복일이기도 했다.

모든 신료들이 인정전 뜰에서 살아있는 왕의 아버지에게 와서 하례를 했다.
“감축 드리옵니다 대감.”
모두들 입은 그렇게 움직였고 고개는 숙였지만 원상 정원용과 좌상 조두순 등 몇만 빼고 나머지 인사들의 그것에는 진정성이 전혀 없었다. 일부는 아직도 군도령 시절의 흥선군을 대하듯 비아냥 거리는 투였다. 대원군이라는 칭호를 부르는 이는 아주 드물었다.
하지만 흥선은 이런 인사도 저런 인사도 흔쾌히 받았다.

대비와 신료들은 중회당에 다시 모였다.
중회당에 들어서서 발 뒤에 자리한 대비는 앉자 마자 ‘흥선 대원군 대감은 어디 계시냐’고 신료들에게 물었다.
식이 끝나고 구름재 사저로 돌아갔다고 하니 전에 없이 불같이 화를 냈다. 원상과 좌상이 나서 잘못했다고 빌고 나서야 화가 풀린 듯 좌정했다. 원상 좌상과는 사전 언질이 있었던 듯 싶었다.
작심한 듯 대비가 입을 열었다.
“그렇소, 이제 신왕이 즉위했으니 남은 일 한 가지를 확실히 정해야 할 것이오. 바로 대원위 대감에 대한 예우요. 그동안 일부 신료들의 억지만류로 정하지 못했는데 그러니 오늘 같은 무례를 범한 것 아니겠소. 격식도 법도도 없이.”
모두들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조대비는 내친김에 흥선군의 정치참여 이른바 서정참결을 밀어 붙였다.
“뒷방에만 있던 아녀자가 수렴첨정을 하려니 어려움이 많을 것 이 자명하오, 이럴 때 나는 대원군 대감의 도움을 받으려 하오.”
거의 통보에 가까운 언사였다.
“내 생각으로 섭정의 형식이 어떨까 싶은데…”
아무리 주눅이 들어 있어도 이 문제를 이대로 대비의 뜻대로 넘어가게 할 수는 없다는 듯 장김을 대표해 이판 김병기가 나섰다.
“마마 소신이 긴히 아뢰겠습니다. ”
그는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 장김끼리 며칠 동안 논의한 방안을 제시했다. 골자는 정치 참여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서정 참여는 선례도 없습니다.”
장김 수뇌 중 한사람인 김흥근이 거들고 나섰다.
“그렇습니다. 어디 정승 판서들은 허수아비랍니까? 대원군의 서정참여는 절대 불가요. 안 그렇소?”
결사적인 항변이었다.

그는 자신들 쪽 신료들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원상 정원용이 그에 맞서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날 회의의 화룡점정이었다. 사람이 변하면 이렇게 변할 수도, 용기를 가지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완벽하게 실증해 보인 예였다.
“이보게 이판, 이보게 호판, 다시금 척신 외척들이 전횡하려는가? 변변한 종친이 없어 왕부가 허했는데 다행히 어리신 주상전하의 생부가 계시어 본가에서 해온 학문도 봐드리고 말벗도 해드리면서 자성마마를 돕는 것이 어찌 부당한 일인가. 공들은 대체 언제까지 척신의 세도를 누리려는가. 제발 염치들 좀 가시시게.”
울부짓듯 호소하는 정원용의 말을 등는 장김 소두령 김병기의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정원용을 노려보는 그의 눈에서 불이 이는 듯 했다. 그가 무언가 한마디 대꾸 하려는 찰라, 발 속에서 조대비의 차분하면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하면 됐소, 여러 신료들의 생각은 알았소, 하지만 원상의 말씀대로 유구한 왕실 전통과 경들의 권유로 내가 첨정을 맡은 이상 국사를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대원군 대감에게 매사에 자문을 구하고 지혜를 얻으려 하는 것이오,”
대비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경들이 어디서 어떤 풍문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대원군 대감은 뛰어난 지략을 지닌 분이시오, 이제와 얘기네만 그분이 나이만 더 젊었더라도 직접 대통을 잇게 하서 싶었다는 것과 지금의 상을 선택한 이유가 대원위 대감에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들 주시기 바라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왕위를 직접 잇게 하고 싶기까지 했었다는 데야.

대왕대비는 창백하게 파래지는 장김을 향해 마지막 누르기를 양양하게 조여 왔다.
“도승지, 대원군 대감에 대한 예우 절목 일세, 잘 받아 적어 지체 없이 시행하도록 교서를 내리도록 하시오.”
대비의 분부는 전대미문의 파격적 예우였다.
‘첫째 대원군은 상감의 앞에 이르러서도 허리를 굽히지 않으며 신칭을 아니한다. 둘째 대원군의 사저를 운현궁이라 부르며 문밖에 하마비를 세워 백관의 공경을 받게 한다. 셋째 대원군의 출입은 군사들로 하여 호위케 하고 쌍호선을 받치게 한다. 넷째 대원군 위계는 3공의 위에 있으며 다섯째 운현궁의 경비는 내수사에서 부담한다.’
장 김은 거의 질식에 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55회

안동일 기자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41회

안동일 기자

<이민 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21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