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5 F
New York
September 20, 2024
hinykorea
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87회

안 동일 지음

상위복, 임금의 죽음

이윽고 봉영(奉迎)사 영의정 일행이 당도했다. 영의정 김좌근은 자성의 교서를 들고 도승지 민치상과 기사관 둘을 대동하고 운현재에 들어섰다.
“흥선군 이하응의 차자 명복은 자성마마의 명교를 받드시오.”도승지가 크게 소리쳤다. ;
명복은 노안당 사랑채에서 아버지와 함께 내려와 교서에 절하고 남향으로 섰다. 마당에는 평상이 준비돼 있었고 그 위에 책상이 놓여 있었다.
“군 마마의 함자를 일러 주십시오.”
도승지 민치상이 그의 이름과 나이를 묻고, 봉영대신으로부터 건네받은 대비의 서한을 상 위에 올려놓자 명복은 당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상 앞에 앉았다.
정면에 영상이 섰고 도승지가 교서를 읽었다.
“….열성조의 크나크신 은혜로 명복을 익성군으로 삼아 익종 대왕의 흉배로 입적해 그로 하여금 전국의 천세 대통을 잇게 하노라, 억조창생의 기운과 만백성의 흥복을 한 몸에 지니게 함이라…”
예가 끝나자, 대신들이 먼저 문 밖으로 나갔다. 명복은 집안을 한번 돌아보면서 따라 나갔다.
대문 밖에는 남여(藍輿)가 대기하고 있었다.
금원은 훌쩍이며 콧등을 훔치는 민 부인에게 명주수건을 건넸다.

32.  대원위 분부

궁에서는 대소신료들이 중회당에 모여서 신왕이 될 익성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소년 신왕이 회당에 들어와 대비 앞에 선 뒤 큰절을 했고 대비도 맞절을 했다.
“소자, 지엄하신 분부 받잡아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을 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마마”
소년의 첫 인사는 의젓했다.
“어서오시오 우리 익종의 대통을 이을 익성군.”
신왕이 자신의 양자라는 것을 장김 일파를 위시한 중신들에게 다시 확인시키는 두 사람의 언행이었다. 조대비는 소년의 손을 잡고 반가와 했다. 좌중을 둘러보는 그녀의 눈이 흥선군과 마주쳤다. 흐뭇한 표정의 눈인사를 던져 보였다.
지난 세월, 장김시어머니 순원 왕후의 그늘에 가려 살아왔던 그 세월의 아픔은 오늘을 보려한 인동초였던 것이다.

“마마 정말 잘하셨습니다. 지난 70년간 그 누구도 못했던 일을 하셨습니다.”
그날 저녁 금원은 대비전으로 건너가 대비를 칭송했다.
“별말을 다하는구나, 이제 겨우 첫 단추를 꿰었을 뿐인데.”

“아닙니다. 시작이 반 이라고 했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누가 우리 새 주상 그리 멋진 옷 만들어 입혔누? 금원 자네 생각이지?”

“예, 그럴 것 같아서 준비했더니 그게 그리 크게 쓰였다네요.”

“얼마나 근사한지 사실 나도 행색이 추레하면 장김 저 사람들한테 창피해서 어쩌나 했는데… 척 들어서는데 환하더군, 어찌나 흐뭇하던지…정말 고마우이”

대비도 부대부인 민씨도 여자는 여자였다. 입성에 그리 신경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금원은 두 사람의 신임을 한 단계 더 높였다.

계해년 섣달 아흐레. 한 겨울 답지 않게 포근한 날이 계속 되고 있었다.
오늘도 중회당에서 아침 조회가 열렸다. 조대비가 수렴 뒤에 앉아 회의를 주재 했다. 어제와는 달리 흰 소복을 차려 입었지만 한결 자신에 차 있었고 목소리에도 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대행왕의 초혼청 설치와 장례도감 구성 문제에 이어 사왕의 즉위식, 이어 임금의 생부에 대한 예우 문제가 안건에 올랐다.
“사왕의 생부와 생모에게 작위를 내리고 싶은데 경들의 생각은 어떻소? 당연한 일 아니오?”
이판 김병기가 장김을 대표해 즉각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옛 부터 이 나라에는 생존해 있는 대원군이 없었습니다. 익성군의 생부를 대원군으로 봉하면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뜨게 되는 모양새가 될 뿐더러 혹여 정사에 관여할까 두려우니 대원군 칭호는 그이의 생존 시에는 보류하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김좌근을 위시해 장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어떻게 해서든 대원군 작위만은 피해보려는 심산이었다.
“버젓이 임금의 아버지인 대원군인데 대원군으로 못 부른다면 효심 강한 어린 주상에게 얼마나 송구하고 딱한 일이겠소? 어린 주상의 입장을 생각해 보시오.”
“마마 그 문제보다도 즉위식과 관련해 분부 받잡을 일이 있습니다. ”
노회한 김좌근이 화제를 돌렸기에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원상이 뭔가 말하려다 참는 눈치였다.

계해년 섣달 13일. (양력 1864년 1월21일)
이날 오전 마침내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에서 신왕의 즉위식이 거행됐다.
품계석이 늘어선 정전 뜰에 문반과 무반이 좌우로 도열한 가운데 신왕이 탄 가마가 문에 도착했다. 원상 정원용이 신료를 대표해 가마의 문을 열었고 새 왕이 그의 손을 잡고 내렸다. 전각 계단 위에 마련된 어좌로 이동을 시작하자 음악이 연주됐다. 국상중이어서 규모를 최소화한 장악원 악대의 연주였다.

어린 신왕이 자신의 앞을 지날 때 도열한 신하들은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어좌 뒤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던 대비와 왕대비도 자리에서 일어나 신왕에게 경의를 표했다. 엊그제 각의에서 철종비 중전 홍씨는 공식적으로 왕대비에 올랐고 조대비는 대왕대비에 올랐다.
마침내 왕이 어좌에 앉았다.
영상 김좌근의 선창으로 “천세” 소리가 궁궐에 메아리 쳤다.
“상감마마 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문반이 서 있는 오른쪽 맨 앞자리에서 흥선군은 금관조복 차림으로 누구보다 더 우렁차게 천세를 불렀고 누구보다 힘차게 팔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자신의 야망의 성취에 대한 기쁨의 표현이기도 했고 지난 세월 설움과 수모에 대한 스스로의 칭찬이자 보답이기도 했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 실록(實錄) 소설 > 순명(順命) ,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1)

안동일 기자

<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8)

안동일 기자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57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