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전 AP 특파원
헤즈볼라에 납치돼 6년 넘는 기간 인질로 붙잡혀 있기도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테리 앤더슨 전 AP 특파원이 21일 별세했다.
AP는 이날 앤더슨 전 특파원이 최근 받은 심장 수술 합병증으로 76세의 나이에 숨졌다고 밝혔다.
1947년생 오하이오 로레인 출신인 그는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저널리즘과 매스커뮤니케이션, 정치과학을 전공했다. 베트남전 참전 이력도 있다.
AP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특파원을 거쳐 수석 중동 특파원으로 일했다. 아시아 특파원 시절이던 1980년 한국 광주에서의 취재 기록을 미국으로 송고, 5·18민주화운동을 세계에 알렸다.
이와 관련, 문화체육관광부는 1980년 5월22일~26일까지 앤더슨 전 특파원이 취재한 기록 원본과 관련 보도 등을 2020년 공개한 바 있다. 자료에는 “광주 시민들은 기자들과의 담화에서 시위는 처음에 평화롭게 시작됐으나, 공수부대들이 일요일과 월요일 오전 시위자들을 무자비하게 소총과 총검으로 진압하면서 격렬한 저항으로 변했다고 말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4일 간 군과 경찰에 맞서 벌인 거리 시위로 인해 최소 64명이 살해당하고 4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고, 시민들은 거리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관계자들은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용어인 ‘불순분자’들이 광주 시위를 부추겼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시위에 ‘불순분자’가 개입됐다는 확인은 되지 않았다” 등의 내용도 있다.
그는 2020년 자사 특파원들의 취재기를 담은 저서 ‘AP, 역사의 목격자들’에서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3명이 사망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실제 광주에 갔더니 첫날 한 장소에서만 179구의 시신을 목격했다는 내용을 서술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아시아·아프리카 특파원을 거쳐 중동 특파원을 지내던 시절인 1985년 시아파 무장 단체 헤즈볼라에 납치돼 6년이 넘는 기간 인질로 붙잡혀 있기도 했다. 휴무일 테니스를 치며 휴식하던 그는 차에서 끌려 나와 납치됐으며, 억류 기간 구타는 물론 사슬로 벽에 묶이거나 머리에 총이 겨눠지는 등의 학대를 받았다고 한다.
위 사진은 석방당시 환하게 웃던 모습, 안경테 한쪽이 없는 것이 이채롭다.
그럼에도 인질을 대표해 지속적으로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다른 인질들과 암호를 만들어 소통을 유도하는 등 행동을 했다. 1991년 미국으로 송환된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환 이후 대중 연설자로 나서거나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등 생활을 했다. 이란 동결 자산 수백만 달러를 억류 보상금으로 받았으나, 투자 실패 등으로 대부분을 잃고 2009년 파산 신청을 했다고 전해진다.
줄리 페이스 AP 수석부회장은 “테리는 현장에서 목격한 일을 보도하는 데 깊이 전념했다”라며 “자신의 저널리즘에서, 또 인질로 잡힌 기간 동안 위대한 용기와 결의를 보여줬다”라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