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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83회

 안 동일 지음

흥선군과의 담판

그 모습을 보고 대비는 ‘우리 나비가 대감을 낙점했구료, 이제 어쩌시려오?’ 했단다.
대원군은 고양이를 차거나 밀치지 않고 그냥 둔 채 대비에게 인사를 올렸고 몇 번 쓰다듬어 주니까 나비는 살며시 사잇방 털 보료 자기 자리로 돌아가더란다.
“그것참, 더러 여자들한테 다가서는 것은 보았지만 우리 나비가 남정네 한테 그러는 것 처음보았소. 신기한 일이네.”
대비의 말이었단다.

세 번째 만난 날
마침내 두 사람은 속내를 완전히 터놓고 일종의 밀약까지 맺었다.
조 대비와 흥선의 사이에 성립된 밀약은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장래 여차한 상황에 이르면, 여차한 결단을 할 것이며 그러고 나면 여차한 정책을 베풀겠다는 막연한 의논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그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단다. 마치 일이 다 이루어진 것 마냥.
비록 막연한 의논이나마 이후 만약 그런 날, 조대비가 궁중 최고의 어른으로 나라의 명운을 건 실권을 행사 하는 날, 그런 날이 온다면, 조대비는 다른 모든 왕족을 제쳐놓고 흥선을 부르고, 그때 불리기만 하면 흥선은 조 대비를 위하여 견마의 지로를 다하겠노라는 약속이었다.
“내 대감을 친붙이와 같이 믿겠소.”
“망극하옵니다 마마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대비는 이날 감격에 겨운 하직 인사를 올리려는 흥선을 가까이 오라 하여 어깨를 두드렸고 큰 누님처럼 손까지 잡아 주었단다.
“영민하다는 대감의 둘째 영식 이름이 뭐라고 했소?”
“명복이옵니다. 목숨 명, 복 복.”
이번에는 고양이 나비가 그런 흥선군의 얼굴을 빤히 쳐다만 보더라는 것이다.

32. 만동의 화불단행

내의원에 들어가 있는 초롱에 따르면 심상치 않은 약들이 계속 지어져 대전으로 들어가고 있단다. 쉬쉬하고 있지만 임금의 환후가 위중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 임금의 나이 설흔을 조금 넘겼을 뿐 인데 그리 심각하다니 사람 건강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금원은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금원은 얼마 전 부터 궁에 머물고 있었다. 대비의 분부이자 배려였다. 대비는 금원에게 장악원 사범과 침선당 서리의 내명부 직함을 내려 궁중출입 쉽게 했다.
금원과 만나는 시각은 주로 새벽녘이었고 명목은 글공부 였다.
대비의 남편 효명세자가 책을 읽던 낙선재가 대비와의 공부 장소이자 금원에게 배정된 처소였다. 대비전 바로 뒤쪽 낙선재는 그동안 비어 있었지만 남편을 생각하는 조대비가 자주 찾는 곳이어서 잘 관리되고 있었다. 대비는 중간 방을 쓰라고 했지만 금원이 사양해서 입구의 작은방을 택했다. 바로 뒤쪽에 궁궐의 의상 제작소인 침선당이 있어 금원이 활동하는데 편했다.
미리견의 흑인 노예의 애환을 담은 ‘도마 숙숙의 오두막’을 언문으로 읽은 대비는 많은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아랫사람들에게 부쩍 잘 했다.
다른 책도 읽어 보고 싶다 해서 도박하는 심정으로 홍길동전을 디밀었다. 의외로 조대비는 너무나 좋아했다. 그렇지 않아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차마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있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홍길동전 또한 대비에게 많은 것을 시사했다.
무슨 책인지 모르면서 궁중 최고 어른이 타계한 남편의 서재에서 아침마다 여선생과 함께 글을 읽는 모습은 궁안 사람들이며 대소신료 들에게도 좋은 인상으로 다가갔고 귀감으로 까지 여겨졌다.
낙선재 큰방에는 아직 수백권의 책이 서가에 남아 있었는데 어느 날 금원은 ‘한비자’를 발견했다. 추사가 생전에 필제와 금원에게 보여주었던 한비자와 같은 필체의 필사본이었다. 추사의 책들은 지금 예산의 추사 생가에 가 있었다.
아마도 세자와 추사 그리고 조민영대감은 함께 한비자를 읽고 합리적이고 튼튼한 법(法)위에서 집행되는 바람직한 권력을 꿈꾸었을 게다.
이런 정황을 알리고 그 책을 함께 읽자고 했더니 대 환영의 반응이 대비에게서 나왔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었다. 한비자야 말로 성리학에 찌든 조선에서는 무시 받았지만 제대로 된 권력이 바람직한 통치가 무엇인지 일러 주었다.

낙선재는 금원 수양딸과 제자들의 궁궐 수련장이 되기도 했고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초롱이는 내의원 견습 내의녀 였기에 궁 출입이 자유로왔고 순정도 침선당 외거 무수리로 적을 올렸다. 이경실은 대비가 총애하는 조카며느리였기에 궁 출입이 활발했다.
어느날 순정이 경실에게 은밀히 묻는 소리가 금원에게도 들렸다.
임금이 워낙 허약해서 여자와의 동침을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허양(虛陽)만 동해서 매일같이 궁녀의 치마폭을 잡고 놓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언니 그럴 수 있어요? 거동도 못하면서?”
“글세 잘은 모르지만 사내들은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그 생각 한다는데…”경실은 저도 민망한지 얼굴이 빨개졌다.
그때 금원이 나섰다.
“얘들이 못하는 소리가 없어. 망칙하게.”둘이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경실이야 혼인을 한 성인이라지만 순정이 너는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니?”
“침선당 항아님들이 다들 그러던데요.”
“쯧쯧 못된 것들 아닌가.”
혀를 차기는 했지만 사실 그랬다. 말기에 철종은 허리를 못쓰고 거의 누워서만 지냈다. 궁녀들이 좌우에서 부축해 일으켜도 머리가 어찔어찔하고 눈에서 오색 불똥이 빙빙 돌다가 눈이 먼 듯 앞이 캄캄했다. 누워 있기 지루해 앉아 있으려 해도 혼자는 몸을 가누지 못해서 등 뒤와 좌우에 궁녀들을 앉히고 기대 있어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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