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46 F
New York
September 20, 2024
hinykorea
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81회

 안 동일 지음

청주성 감옥의 필제

가장 늦게 녹번정에 들어선 오경석이 의금부와 승정원에 알아보고 오느라 늦었는데 어제 오늘 청주부에서 올라온 급변 장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 했다고 하자 분위기는 한결 느긋해 졌다. 역모나 그에 준하는 작변 발고는 즉각 보고 되게 마련이다.
금원은 유대치와 함께 충주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나마 흥선군이 충주 목사에게 보내는 서찰을 써준 것이 큰 힘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충주 목사으로 있는 신율이 외직이지만 흥선군의 몇 안되는 현직 측근의 하나였다. 조카 사위뻘의 친척이기도 하단다. 그리고 대치와는 교분이 깊은 사이였다. 여러 가지 일로 이필제와는 악연이었던 흥선군이 의외로 흔쾌히 나왔다. 자신은 필을 좋아한다고 했다. 흥선군은 아직 필제를 필로 알고 있었다.
충주에 도착해 백방으로 수소문 해 보니 상황이 만만치는 않았다.
필제는 감영 옥사 중에서도 중죄인이 갇히는 특사에 있단다. 그리고 계속해서 관련자들이 압송되고 있다는 것이다. 충청도 감영이 임란 이후 공주로 이전했다고는 해도 충주는 감영이 있었던 대도호부 급으로 분류되는 큰 목이었다.

충주 목사는 종2품 부윤으로 불렸다. 형방도 다른 군현 과는 달리 형부 도승이라고 불렀다.
전갈을 받은 신 부윤은 숙소인 객점으로 김훈이라는 도승을 보냈다.
김 도승은 닳고 닳은 아전들과는 물이 다른 사람이었다. 깐깐하고 고지식했다.
“부윤 나리의 분부가 있어 나오기는 했지만 워낙 위중한 사안이니 소직에게 뭘 기대하시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가 수인사 대신 던진 말이었다. 들어보니 사안이 엄중하기는 했다.
필제가 진천의 향약계원들을 모아 놓고 세상을 뒤엎어야 한다고 선동을 했단다. 그것도 여러번. 거기다 거사를 위해서는 자금이 있어야 한다면 돈들을 내라고 해서 몇몇은 작게는 몇십 냥에서 크게는 수천냥 까지 돈을 낸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상을 뒤집을 것인지 그 방도까지 논의가 됐답니까?”   금원이 도승에게 물었다.
“고변장에는 무장 작변을 일으키려 한다고 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방도는 논의되지 못한 듯 하오. 진천에서 보내온 공초에도 그렇게 되어 있소.”
금원과 대치는 이곳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장 작변을 하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고 규율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구체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작변을 일으키겠다고 하는 곳이 경상도 영일이었다.
“별일 아니군 그래, 워낙에 허풍이 심한 이선달의 과장이었군 그래.”

대치와 금원은 짐짓 그렇게 말했다. 금원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방으로 움직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는 필제의 허풍으로 상황을 몰고 갔다. 금전적 사기사건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문제는 고변을 한 측이었다. 그 뒤에 장김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남녀 타는 숭록대부 김만기와 모사꾼 김성순이 있었던 것이다. 장총관이 나서 알아낸 일이었다. 금원과 대치는 그쪽은 무시하기로 했다.
부윤을 계속 얼르고 달랬다. 형방도 부윤이 적극 협조적으로 나왔기에 깐깐함을 죽였다.

“이제는 사건을 종결 지으시지요 도승나리.”
“죄인을 풀어 주란 말이요?”
“어찌 거기까지 바라겠습니까? 죄는 있으되 변란 주동은 만부당입니다.”
“어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부윤께서 재판장이신데.”
“도승께서 처결문을 쓰시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여기 형조참판의 서찰도 있습니다.”
“허 그것 참.”
“만약 이 일이 정말로 무장 작변 기도라면 진천 현감도 또 그를 감독하는 부윤 영감에게 까지도 화가 미친다는 것을 왜 모르시오?”
“감영 형부실에 ‘대명강목 집요’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꼭 살펴 보시지요.”
대명강목 집요는 명 청의 법령과 그 정신을 해석한 책이었다. 20권으로 분량도 꽤 되는 엄청 값비싼 책이었다.

필제는 근린 귀양의 처결을 받았다. 부당한 금전사취의 죄목이었고 사취한 금전은 변상해야했다. 1년 동안 진천에서 살지 못하고 옆 고을인 제천으로 가서 살라는 벌이 내려졌다. 형식적인 처벌이다.
장김이 이제 조선 땅에서 큰 힘을 쓰지 못하게 된 모양이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하거늘 어찌 그리 대범했다는 말이오?”
필제가 감영 옥에서 나오던 날 이렇게 말했더니 그는 멋쩍게 씩 웃기는 했지만 사람이 달라져 있어 그 말을 한 것이 멋쩍을 정도 였다.
필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심한 고신에 사람의 얼이 빠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눈매가 살아 있었다.
대치가 고신은 많이 당하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도 피씩 웃기만 했다.
청주성 앞의 객점에 가서 국밥과 탁배기 한잔을 먹고 나서야 필제는 본심을 쏟아 놓았다.
“너무도 고맙습니다. 금원 누님, 대치 형제, 그리고 많은 분들께 죄송합니다.”
필제는 이번 옥살이에서 커다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바로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는 것이다. 옥에서 백성들의 실상과 그리고 그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백성의 기상을 보았단다. 그동안 자신의 정혁에는 말로만 백성을 위한다, 백성 때문이다 했지만 정작 그 속에 진정한 백성은 없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안에서 절절한 인연을 만났음에 틀림없다.
대치는 그의 이 말을 듣고 손을 덥석 잡아 주었다.
“선달님 드디어 진정한 혁명가의 길에 들어서셨습니다. 그려.”
대치가 또 혁명이라고 해서 철렁하기는 했지만 필제가 백성들, 민초의 마음을 알았다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우리 아우님이 정말 비싼 보약 드셨네 그려.” (계속)

Related posts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63회

안동일 기자

<장편 역사 소설> 구루(句麗)의 물길(勿吉) – 연재 제2회

안동일 기자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71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