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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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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76회

 안 동일 지음   

임술의 함성

민초들의 함성은 진주에서 그치지 않았기에 남쪽에서 올라오는 파발과 해동청이 분주해 져야 했다. 진주에 이어 단성에서 동조 봉기가 일어나더니 며칠 뒤 전라도 익산에서 작변이 일어났다. 역시 농촌계와 상두계가 중심이었다.
익산의 수천 농민은 군청으로 달려갔지만 악덕 군수 박희순은 벌써 도망간 뒤였다. 박은 부임한지 넉 달도 되지 않는 자였다. 장김에게 매관으로 벼슬을 샀기에 이를 일거에 찾으려 광분 했던 모양이다,
익산에 이어 함평에서도 상두꾼과 초군들의 함성이 울렸다.
함평의 초군들도 아전과 방백을 무릎 꿇리고 관아의 창고를 열게 했다.

보고가 조정에 올라오자 상감도 종래와 달리 노염을 감추지 못했다. 재상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어릿어릿하기만 하던 상감이, 이 때 만은 궁녀들의 부축으로 앉아서 영의정김좌근을 힐책했다.
“영상, 이게 웬일이오니까? 어제는 진주, 오늘은 익산과 함평, 이게 무슨 일이오니까? 영상 대감만 믿으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백성에게 죄가 있는지, 모두 내가 불민한 탓 입니까?”
영상 이하 신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진주의 안핵사 박규수는 민요를 일어나게 한 주범 백낙신을 제주도에 위리 안치시키고 목사 채병원을 파직했다.

“이번 작변들이 성공해서 새 세상이 올 가능성은 영 없는 겁니까? 스승님.”명례방 모옥 큰 방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태을당에게 그렇게 물었다.
“글세 두고 봐야겠지만 아직은 그럴 여건이 아니라고 보는데…”
상황이 이렇게 고양된 판에 역량을 총동원해 일거에 나서 정혁으로 새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왕조를 갈아엎어 새 왕조를 세울 것이 아니라 법랍성이나 미리견 같은 나라처럼 왕을 백성이 뽑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 까지 나왔다.
필제의 벗들이 틀림 없었다. 하지만 청계 내에서는 신중론이 우세했다.

민요는 계속 북상하고 있었다. 그 봄이 가기 전에 경상도 개령(開寧)에서 백성들의 함성이 울렸다. 개령과 때를 같이하여 같은 경상도의 성주에서도 초군이 들고 일어섰다. 향촌계와 상두계가 중심이 돼 일으킨 작변이었다. 수천 초군들은 마을을 돌며 악질 부호를 결박해 가두고 죽창을 들고 관아로 몰려가 현감을 욕보인 뒤 고을 밖으로 쫓아냈다. 아전과 토호의 집 수십채가 불탔다. 개령의 초군들은 악덕 향교를 박살냈고 옥문을 부쉈다.
초군들의 함성은 다시 전라돌로 휘감아 돌아가 장흥에서 횃불이 올랐다. 그런데 장흥은 전직 군수가 소요의 주동자가 되어 이목을 끌었다.

을해결사 청계회의가 명례방에서 다시 열렸다. 여섯 노사들이 모두 모였다.
현봉이 참관했고 금원이 지침을 받아 적는 서기를 맡았다.
“이제는 총궐기로 나서야 할 것이오. 전국에서 무기를 들고 일시에 나서면 승산이 있지 않겠소?”
“아니오. 그랬다가 돌아오는 것은 무참한 피해 뿐이오. 아직은 우리 힘이 약합니다. 진주며 함평의 사람들 같이 죽고 다치는 사람만 늘게 됩니다.”
진주 작변의 주동자들이 참수돼 성문앞에 효시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기에 의견이 더 분분했다.
“그래요 최후까지 저들에게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평화적으로 나서야 할것이오.”
전인회주 태을은 양쪽 모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결정은 후자를 좆았다.
청계는 지방으로 지침을 내려 보냈다. 지역의 결사 맹원들과 제휴하가로 한 향촌계나 상두계에 내린 지침이었고 호소였다. 일단 여건이 허락한다면 총궐기로 나서 봉기에 동참해 평화적으로 민의를 모으되 쓸데없는 살상을 삼가고 격문에 꼭 장김 세도 독재가 오늘의 화를 불러 왔다는 점을 꼭 명시하라는 점을 강조했다.
용호단이 각처로 파견 됐다. 그들의 숨찬 호흡과 땀방울이 전국에 아로 새겨졌다.

여름이 오기 전 민요는 더 북상해 한양의 턱밑인 경기도 여주에서도 초군의 함성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민요가 여주에까지 북상하면서 청계내에서 다시 격론이 오갔다. 이번에는 중 장년층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분임회의 쪽에서 강한 의견들이 나왔다. 몇몇은 동사로 태을스님을 찾아오기도 했다.
아직은 나라 전체를 뒤엎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준비가 덜 돼 있다, 그렇게 나섰다가는 엄청난 피바람이 불어오게 된다는 판단이 현실적이었고 압도적이었다. 회주의 뜻이 그랬다. 대신 역량을 시험할 겸 총동원해서 사람들이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참여하자는 절충론으로 중지를 모았다 그리고 평화적 횃불시위로 끌어 나가기로 결정했다.

춘궁리 상두계 꼭두와 계원 세명이 동사로 몰려 왔다. 명례방에서 돌아 온지 며칠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평소 태을과 현봉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현봉 스님이 저들을 맞았다. 큰 스님은 주유 중이었다. 마침 금원도 있을 때였다.
“무슨 일로 이렇게 신 새벽에 몰려 왔는가?”“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이렇게 왔습니다.”“아무리 그렇다고 남이 장에 가니까 따라가는 형세가 돼서는 안될 터인데…”“그게 아닙니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민요가 있었던 군현은 민원을 들어주는 척 이라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군현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이오?“
꼭두 정씨와 그의 동료들은 그간 준비해 왔던 내용을 털어 놓았다. 현봉과 금원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계획이었다.
광주의 향촌계와 상두계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광주부는 예하 면이 23개나 되는 경기 일원에서 가장 넓고 큰 부였다. 동사 식구들과 편조계의 회원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광주부 전역의 향촌계 상두계 사람들이 가세를 해 세가 상당히 커졌다.
거사날인 오월 열사흘날 저녁, 횃불을 든 광주의 초군이 동헌으로 가는 길을 가득 메웠다. 흰옷을 입고 든 사람들의 행렬이 끝이 없었다. 송파가 속한 중대면에서 부터 곤지암이 있는 실촌 까지 광주 전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모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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