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ykorea
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74회

 안 동일 지음

 민요. 민심은 천심

“누 누구시오?”모처럼 안방에서 혼자 자다가 목덜미에 차가운 금속 기운을 느낀 김익순은 혼비백산 해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복면을 쓴 사내가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것이었다.
“목숨이 아깝거든 내 하라는대로 해야 될 것이다. 돼지같은 늙은이.”
“왜 이러시오.”“일어서시오.”복면사내는 촛불을 켰다. 그리고는 김익순을 서탁에 앉게 했고 자신이 부르는 것을 받아 쓰게 했다.
다음날 아침 집안사람들은 해가 중천에 뜨도록 나오지 않는 주인영감 때문에 안방에 들어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야 했다.

김익순은 경상도 함양의 소문난 악덕 부자였다. 함양사람들은 그의 땅을 밟지 않으면 하루도 살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넓은 전답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함평사람들은 그의 땅을 밟으면서 침을 뱃곤 했다. 그는 처음부터 부자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타지인 이었다. 안동에서 함양으로 터전을 옮겼을 때만 해도 기와집 한칸 겨우 마련한 수준이었다. 그러더니 그의 아들을 함양 군수로 만들고 자신이 함양의 청계서원 장의가 된 뒤 부터 부쩍 전답과 재산이 늘더니 10년 사이 함양현을 거의 다 집어 삼키다시피 했다. 현감등 지방관의 임기는 2년이었는데 김익순의 아들 김용근은 어찌된 셈인지 2년을 연임하고 한번 쉰 뒤 다시 돌아오는 요술을 부렸다.
전형적인 환곡제도의 악용이었다. 장리를 갚지 못하는 농민에게 도저히 갚지 못할 더 높은 장리로 양곡을 꿔주고 이를 빌미로 전답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일군 재산이었다. 그런 그와 그의 아들 김현감은 온갖 나쁜 짓은 도맡아했다.
그런 그가 자기 집 안방에서 밤사이 갑자기 풍을 맞아 쓰러 졌다. 창고의 곡식을 고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라는 편지를 책상에 펼쳐둔 채. 그런데 벽에 태양, 명일이 그려져 있었다.

“살려 주시오, 내 잘못했소. 다시는 그러지 않을테니”“무얼 잘못했다는 말이냐?”“다 잘못했소 다.”
꽁꽁 묶여 눈까지 가려진 젊은 선비가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두들겨 맞고 바닥을 딍구느라 흙이 묻어 있었고 구겨져 있었지만 입은 옷은 고급 비단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것이었다.
그를 양쪽에 막대로 꿰어 들고 가는 복면 장한들이 가고 있는 곳은 거름통 이었다.
정선교는 지난번 식년시 과거장에서 난동을 부렸던 망나니다 아비인 정운연이 호조판서를 지낸 인사. 그런데도 그는 과거 그것도 대과 급제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그가 한양의 아현방 시장통에서 행패를 부리다 복면 장한들에 의해 제압당해 끌려 왔던 것이다.
그는 결국 똥투깐에 던져 졌고 똥물을 하도 마셔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비의 권세를 믿고 패악질이란 패악질을 다하던 소악마의 말로였다. 그의 이마에도 명일이 그려져 있었다.

“뭐라, 못 내겠다고, 저놈을 묶어라”
오늘도 병사(兵使)의 지긋지긋한 질그릇 깨지는 목소리의 호통 같지도 않은 호통이 병영 마당에서 터져 나왔다.
무장이란 작자의 목소리하고는…
목소리 뿐 만아이라 사내다운 구석,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작자 였다. 탐욕만 가득 차 있는 전형적인 탐관오리였다.
이 작자가 종3품 경상 우도 병마마절도사 백 낙신(白樂辛)이었다.
오늘도 지역 양민을 잡아다 수탈하려다 말을 듣지 앉자 곤장을 치려 하는 것이다,.
지난해 병사로 부임한 후, 갖은 수단과 방법, 온갖 협박과 공갈을 동원하여 백성들로부터 쌀 1만5천석, 한석이 4냥 꼴이니 돈으로 따져 6만여 냥이나 되는 거액을 징수했는데 새로 7만냥을 더 거둬야 한다고 생난리였다. 진주는 큰 고을이기는 했다. 하지만 큰 만큼 부역도 컸다. 백성들은 진주목 관아만 해도 힘든데 병영까지 떠 안아야 하니 더 죽을 맛이었다, 병부가 이토록 탐학스럽게 나오는 예는 드물었다. 그만큼 백가가 병사가 되기 위해 쓴 돈이 컸고 급했던 모양이다. 거기다 진주에는 옆 고을 함양까지 합쳐 큰 서원이 다섯 군데나 있었다.

만동의 자경단과 계속 부딪치면서 양쪽의 상대에 대한 전의도 증폭되고 있었다.
통문 살생부라는 것이 지난달 하순부터 돌았다.
통문계에서 자신들 일에 걸림돌이 되는 조야 인사들의 명부였다. 자신들 일이 아니라 만동과 장김에 불만을 가진 유력 인사들의 명부였다.
거기에는 태을 스님과 백결노사가 앞부분에 들어 있었다. 다행히 현봉은 들어 있지 않았는데 덕배 아재는 들어 있었다. 어쨌든 놀랄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지방의 인사들이 벌써 몇몇은 결딴이 났다는 소식이다.

결사로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전면전이야 아니면 후일을 기약하고 일단 피해야 하는가 선택을 해야 할 순간에 직면 했던 것이다.
관과 결탁한 만동과 장김의 대대적인 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믿을만한 곳에서 나온 정보였다. 통문검계의 고수들과 날랜 수하 전원이 소집돼 관군과 함께 패를 나누어 용화종과 이쪽 주요 향촌계의 거점으로 일거에 쳐들어 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83회

안동일 기자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64회

안동일 기자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제9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