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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73회

안 동일 지음

 민요. 민심은 천심

지난달의 일이었다. 서국에 나가 있는데 필제가 찾아왔다. 녹번정에 갔다가 여기 있다고 해서 찾아온 길이란다. 긴요한 용무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만동 얘기가 먼저 나왔다. 중요한 지재가 있었다. 근자에 필제도 이를 알아낸 모양이다.
탄탄하던 만동이 거의 내분 지경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태평천국이 거의 몰락 지경에 빠지면서 그동안 태평천국 지원을 주도했던 본원, 회정과 당주에 대한 불신임이 대두됐다는 것이다. 장김이 그 선봉에 서있단다. 언제부터인가 만동은 본원을 會頂(회정)이라고도 불렀다. 만동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부터였다.
“그랬다고 하는군.”금원이 필제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누님은 참 모르는게 없으십니다.”   어쩐지 말에 뼈가 있었다.

“선달 아우야 말로 아는 게 많으시지.”

“아닙니다. 나는 헛것만 아는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동패인줄 알았던 사람들을 도통 알 수 없으니 모른다고 할 밖에요. 나만 쏙 빼는 것을 보면 동패라고도 할 수 없을 지도 모르지요.”  필제는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지난번 을해결사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필제는 나름대로는 커다란 용건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뜸을 들였던 것이다.
필제의 말은 이제 만동도 내분에 휩싸였고 시절이 무르익었으니 정혁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금원에게 물적 기반을 제공하라고 했다. 돈을 마련해 달라는 얘기였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명확한 설명 없이 거금을 내 놓으라는 것 아닌가. 빠를수록 좋다는 말을 덧 붙였다. 난감한 노릇이었다.
“뭘 정확하게 알아야 준비를 하던 말던 하지.”
금원은 일단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필제는 대뜸 이렇게 나왔다.
“금원당은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못 믿습니까?
“이 선달은 늘 이런 식으로 일을 해요? 밑도 끝도 없이? 그러지 않았잖아요.”
“한번만이라도 내말을 믿고 따라 줄 수는 없겠습니까?”
“아니 이게 보통 문제여야 잔말 않고 따르지요. 이 선달.”
필제가 대답은 않고 금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선달이 말하는 정혁이 그리 간단한 게 아니잖는가? 여러 사람 목숨이 달린 일 아닌가? 그러니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지.” 부아를 꾹 참고 화제를 구체적인 쪽으로 돌렸다.
“그래 준비가 어디서 얼만큼 됐는지나 한번 들어 봅시다.”

막상 들어 보니 별것 없었다. 경상도 끝 쪽 영일 포항 쪽에 믿을 만한 동무들이 있어 그쪽에서 정혁의 깃발을 올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한양하고 제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정부군이 들이닥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그쪽을 꼽은 큰 이유였다.
“지금 상태에서 그 정도 준비로 무장작변으로 근거를 마련한다. 깊은 산속에 산채라면 또 몰라도 명색이 있는 고을에서는 전혀 가망성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돌려요.“진심이었다.
이 사람을 지금껏 그리 믿었단 말인가 싶다.
“남들은 다 따르는데 내가 믿고 의지하는 누이가 이렇게 나오니 내가 슬프기 짝 이없소.”
필제는 화를 버럭 내고 떠나갔다. 너무했나 싶기도 했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서 경상도 해변 고을에서의 무장봉기는 시기 상조였다.
‘이 봉이 같은 선달을 어쩐단 말인가?“
금원은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가 맞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세상을 바로 세우는 정혁의 일을 하겠다면서 앞뒤 다 재고 안전한 길만 뒤에 숨어서 하겠다는 것은 그 또한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 아닌가. 필제는 날개까지 달린 흑마였다.
어쨌든 불같은 야생마 필제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금원은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현봉당에게 상의를 했고 현봉의 말을 들은 태을당은 아예 통 크게 마침 한양에 올라올 백결노사와 함께 필제를 달래 놓겠다고 했다.
“그릇마다 쓰임새가 있듯이 필제는 필제 대로 크게 쓰일 때가 있음일세. 내가 볼 때 그는 큰 그릇이야.”
이렇게 말한 태을당이 오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자네가 말하는 무장 작변 이라는 게 그게 쉬운 게 아니란 말이지. 지난번 홍대장의 서북 작변 때 피해가 얼마였나? 또 그 이전 무신란 때는 어땠고?”백결의 설득하는 표정 까지도 절절했다.
“새 역사를 이루려면 희생이 따르는 법입니다.”하지만 필제는 완강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거지.”“때론 때를 만들어야 하지 안남유?”“백성들을 한번 믿어 보세나.”“민심이 천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평범한 곳에 진리가 있음일세. ”“이선달, 자네가 아주 애쓰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네, 또 자네의 상황판단이 아주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함세, 그러나 우리가 볼 때는 아직은 덜 무르 익었다는 얘기일세, 때가 되면 우리가 적극적 으로 도와주기로 약속 함세,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닐세, 조금만 더 참고 분명한 때를 기다려 주시게. 아시겠는가?”
태을 스님의 간곡한 말에 더 반발은 안했지만 그래도 불만인 듯 심통이 난 표정을 풀지 않고 있다.
백결 노사가 필제 쪽으로 바짝 몸을 기까이 가져갔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춰 필제에게 무언가를 당부하는 듯 햇다. 손짓까지 써가며 꽤 오랫동안 그랬다. 필제의 표정이 근엄해 졌다가는 다소 환해졌다.
태을당에게는 들렸을 텐데 태을당도 빙긋이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밤늦은 시각이었음에도 세 사람은 급히 녹번정을 빠져 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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