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회 아카데미시상식 ‘패스트 라이브즈’의 수상은 불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석권하며 시상식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10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엘에이(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오펜하이머’는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를 수상했다. 한국계 셀린 송 감독이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라 관심을 모았던 ‘패스트 라이브즈’의 수상은 불발됐다.
유독 상복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위 사진)은 ‘덩케르크’이후 두번째 감독상 도전으로 마침내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오펜하이머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킬리언 머피는 오스카 전초전으로 일컬어지는 주요 상들을 휩쓸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는 “20년 배우 생활 동안 가장 창의적이고 만족스러웠던 작품”으로 ‘오펜하이머’를 추켜세우며 “우리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사람이 만든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이 땅에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말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 영화에서 오펜하이머의 정적인 루이스 스트로스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45년 연기 경력에 처음 아카데미 수상 이력을 새겼다.
여우주연상은 ‘가여운 것들’에서 대담한 연기 도전으로 화제를 일으킨 에마 스톤이 수상했다. 2017년 ‘라라랜드’에 이은 두 번째 수상으로 에마 스톤은 ‘소년은 울지 않는다’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힐러리 스왱크와 함께 2000년 이후 30대 나이에 두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된 여배우로 기록됐다. 사진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에마 스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가여운 것들’의 제작도 맡았던 스톤은 무대에 올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을 향해 “벨라로 살게 해줘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11개 부문에 후보를 올리며 ‘오펜하이머’와 경합했던 ‘가여운 것들’은 여우주연상과 분장상, 미술상, 의상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여우조연상과 각본상 역시 예상대로 ‘바튼 아카데미’의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와 ‘추락의 해부’의 쥐스틴 트리에가 각각 가져갔다.
이날 사회를 맡은 지미 키멜은 시상식 도중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회자를 폄하하며 “시상식이 지루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소개하며 “트럼프 대통령님,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감옥에 안 가셨다니 놀랍네요”라고 말해 객석에 웃음을 던지기도 했다. 트럼프는 2020년 ‘기생충’이 수상했을 때도 맹비난한 전적이 있다.
시상식 중간에 진행된 영화인 추모 무대에서는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배우 이선균의 모습이 등장해 영화인들의 추모를 받았다. ‘타임 투 세이 굿바이’ 노래 공연에 맞춰 진행된 추모 영상에서는 제인 버킨, 매튜 페리, 티나 터너 등 지난해 세상을 떠난 영화계 관계자들이 등장했고, 노래가 끝날 때쯤 이선균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이름이 새겨졌다. 이선균은 2020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시상식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시상식에 스타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휴전을 촉구하는 빨간 배지를 단 채 등장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NYT는 가자 전쟁에 침묵해 온 할리우드의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배지를 착용한 연예인은 후보로 참석한 가수 빌리 아일리시, 배우 마크 러팔로 등이다.
할리우드 전쟁 반대 예술인 연대 ‘아티스트포시즈파이어'(Artists4Ceasefire)가 제작한 이 배지는 “즉각적·영구적인 휴전, 모든 인질의 석방,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지지하는 연대”를 상징한다. 한편 시상식 현장 일대가 가자 전쟁 반대 시위로 혼란에 휩싸여 교통 정체로 일부 시상식 참가자가 지각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뉴욕타임스 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