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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62회

안 동일 지음

은사스님과 필제

“우린 걱정하지 말아, 내일이라도 또 누가 가져와 시주하게 돼있어. 세상에 부처님 걸어놓고 굶는 중 봤어?”정말 스님 말이 맞았다. 오늘 금원이 쌀 열가마 실어 왔던 것이다. 절 살림이야 현봉이 잘 건사해 궁색하지는 않았지만 큰스님이 이런저런 구휼을 하시려면 금원 같은 이가 부지런히 가져다 대야 했다.

상담자들이 다 나가고 은사 스님과 금원 둘만의 시간이 됐다.
“무슨 근심이 있는가?, 얼굴이 조금 말라 보이는군.”“아닙니다. 저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스님은 좋아 보이십니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갔고 스님이 금원의 동무들에 대해 물어 오셨다.
보안재 시회 계원들이며, 위항 직지시회, 그리고 기녀 출신녀들의 해어화 사발계, 이런 저런 금원의 활동반경을 노스님은 꿰고 있었다.
“그래 모든 일에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고 하지 말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 자네의 소임일세. 그리고 무슨 일 이던지 즐겁게 긍정적으로 해야 할 것이야. 자네는 소중한 사람이니까.”“명심하겠습니다,” 박규수 대감이며 유대치 역관 등 몇 사람 근황이 거론되다가 이필제가 화제에 올랐다.
“그 떠들레한 필이라는 청년은 어찌 지내는가? 여전히 정혁인가?”“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 정열은 누구도 말릴 수 없지요.”“그럴것 같으이.””요즘도 여전히 그렇게 자네를 따르고?“
“쉴 틈을 주지 않지요. 과하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흐흠 무슨 경계가 그리 많아. 자네가 무슨 출가라도 했다는 말인가, 비구계 비구니계라도 받았나?” 스님이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가늠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둘이 친해지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닌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스님이 서국과 책쾌 일로 화제를 돌렸다. 책쾌 일은 잘 굴러가고 있었다. 그 일이 없었으면 녹번정이며 계회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뻔 했다.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데 변대감도 요즘은 형편이 녹녹치 못했다. 장김에게 엄청나게 뜯기기 때문이었다.

“서국에 여자들도 종종 오는가?”
“여자들은 주로 심부름으로 오곤 합니다.”“자네는 앞으로 일을 하는데 있어 각별히 여자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친해지도록 애쓰시게.”
그러면서 사대부 고위층과 궁궐에 접근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평소 스님답지 않은 구체적인 지시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또 편조스님의 일화를 들려 주었다.
편조 스님이 공민왕에게 다가서기 까지 가장 먼저 가깝게 지낸 사람들은 바로 개경의 부인네 들이었단다.
특히 외롭고 쓸쓸한 과부들에게 먼저 다가갔는데 그들과 친해진 것을 발판으로 권력자들의 부인들, 그리고 노국공주에게 까지 다가갔다는 것이다.
“여자들 치마폭이 역사의 큰 구멍이기도 하고 때론 빛이기도 한게야.“
“스님, 별말씀을 다 하세요.”
“전인은 아무나 하는 줄 아는가?”

참으로 평소의 스님 같지 않은 말씀이다. 오늘, 스님은 들떠 있었다.
“참 스님, 진작부터 여쭙고 싶었는데 우리 결사의 회주님은 어떻게 선출합니까?”
금원이 목고리를 낮춰 물었다.
“전임 회주가 원로 노사들과 상의해서 선출해서 의발과 신표를 전수 하지.””의발도 있긴 있군요. 대개들 스님들이셨던 가요?”“아닐세, 해인 초대 傳人(전인) 이래 열일곱 분의 전인회주가 계시고 내가 19대 전인 인데 스님은 반승반속 이었던 어른을 포함해 예닐곱 분밖에 되지 않네”
유생 진사도 있었고 창우(唱佑) 상두 농부 초부 등 다양한 이들이 의발을 전해 받았단다. 하지만 아직 여인은 없었다고 했다.

“자네가 한번 첫 여성 전인이 돼 볼텐가?”

“스님도 참, 오늘 정말 이상하십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

실은 빈말이 아니었다.
태을당이 마음속으로 결사의 첫 여성 전인으로 금원을 염두 하고 있음을 금원은 알 리가 없었다.
얼마전 고골 방죽에서 한 젊은 사내가 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으려 했던 일이 있었다. 안골에 살던 농부였는데 생활고와 환곡 빚 때문이었다.
그 사내의 자살을 막고 얼르고 달래고 호통치면서 그에게 살아야 할 용기를 심어주고 집으로 돌려 보내는 금원이 모습에서 태을은 장문인의 재목을 보았고 가슴에 담았다. 다른 노사들도 금원의 됨됨이와 일솜씨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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