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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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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60회

 안 동일 지음

  나합 도내기

안채 대청에 탁자위에 난데없이 커다란 천리경이 놓여있었다.
“이건 또 무엇인가?”
“아 그거요, 우리 영감 애태우고 골려주는 도구지요.”
“천리경 아닌가. 먼 곳을 가까이 보는.”
“이리 와보시지요 형님들.”
나합이 천리경을 들고 저쪽으로 금원과 지선을 이끌었다.
안채 끝 쪽에 가니 휘장이 쳐있고 튼실한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 소문이 영 허언은 아니었다.
천정과 지붕을 뚫고 누각 같은 작은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성님 올라가서 한번 보시요 잉.”
금원이 사다리에 올라섰다. 키 높이쯤 올라가니 앞채며 앞집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한양 성내를 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천리경을 눈에 대니 경복궁터 왼쪽 끝자락과 서촌 누상동 적선동 효자동이 바로 지척이다.
과장 좀 보태 어느 집 밥상에 반찬 가짓수도 셀 수 있을 정도다.
“자네는 이러고 놀고 있구먼”
그런데 밑에서 도내기가 올라오는 기색이더니 금원의 치마 속으로 얼굴을 쑥 집어 넣더니 장딴지를 만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뭐 하는 짓인가. 망칙하게…”
나합의 손은 허벅지 까지 올라왔다.
“그만 그만 이 사람아.”
“형님 우리 영감이 매일 이런다요.”
“예끼 이 사람아…”
“지 별명이 뭔지 아시지라? 나주 조개요 조개. 영감이 조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느날 김좌근이 짐짓 “세상 사람들이 왜 그대를 나합이라 부르는지 아는가?”라고 물었단다. 그러자 나합은 “나주 조개(蛤, 조개 합)라는 뜻이지요, 영감이 젤로 좋아하는…”라고 받아쳤단다. 이 얘기를 금원도 듣고 지선과 함께 박장대소를 했다.

여자 셋만의 거한 주안상 이었지만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술이 꽤 올랐다.
금원이 더 취하면 곤란하겠다 싶어 나합의 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도내기 자네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니 대견하기는 하지만 내 오늘 꼭 할 말이 있음일세.”
“예 형님, 혹 우리네 사발 계에 관한 말씀 아니신지요?”
나합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갑 옆에 놓여 있었던 푸른색 보따리를 들고 왔다.
“금앵 형님 하시는 일과 우리 계를 위해 쓰시라고 준비한 것입니다.”
보따리를 풀자 노란 기름한지 봉투에 든 ‘어험’이 먼저 나왔고 나무상자에는 은괴와 엽전 꾸러미가 가득 들어 있었다. 어험은 종로통 육의전에서 발행한 기와집 한 채 상당의 큰 액면가였다. 육의전 어험이야 말로 확실한 돈표였다.
지선과 금원은 눈이 동그래져야 했다.
“자네 손도 크이. 잘 받겠네.”
“손이 큰 건지 그만큼 많이 해먹었다는 얘긴지는 들어보고 따져봐야죠. 뭐”
지선이 생글생글 웃는 소리로 뼈있는 소리를 하며 도내기의 볼을 꼭 손가락으로 콕 찍었다.
“예, 형님 이럴 때 쓰려고 악착같이 긁어모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고 뭐라고 욕하는지 잘 압니다.”
도내가가 지선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속은 살아있었군 그래.”
“형님, 제가 형님들보다 산 세월은 적지만 세상 풍파는 더 겪어서 아는데요, 세상 독하게 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줬다, 저만큼의 돈을 내놓은 만큼 그 정도 사설, 자기 자랑이야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우리 기생년들이 언제 사람대접 받아본 적이나 있습니까? 형님들처럼 학문 높은 일패들이야 조금 다르겠지만 나 같은 몸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하짜들은 마소만도 못하당께요. 특히 돈 있고 권세 깨나 있다는 놈들이 우리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나합은 잔에 술을 넘치듯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옛날 불우했던 시절 생각을 하면 열불이 나는 모양이다. 왜 그러지 않겠나. 기생일이야 말로 천역 중에 천역이요, 기생이야 말로 천인중에 천인 인 것을.
“누가 자네 더러 하짜라 했는가. 자넨 어릴적부터 재주가 뛰어났네. 마음씀은 얼마나 고왔게.”
나합 얘기가 나올 때면 지선은 금원에게 도내기가 매번 뒷방 배고픈 생각시들에게도 주안상에 올랐던 약과며 곶감, 부침개까지 숨겨서 가져다주곤 했던 배려 깊은 여자였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나합은 재미있는 것이 자신의 악명이 높아지면 질수록 사내들의 태도가 더 공손해졌고 아부하는 빈도와 강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어떤 작자들은 칭송까지 해대더라는 것이다.
“그런 놈들한테는 지가 가끔 선물로 눈요기 시켜 주지요 잉, 이렇게.”
뒤쪽으로 물러나 치마를 턱 치면서 한쪽 무릎을 세우며 앉는데 어찌된 셈인지 겉치마 속치마가 함께 썩 벌어지면서 허연 허벅지 안쪽이 살짝 보이는 것이었다. 한두 번 연습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사람도, 그러니 그런 흉측한 소문이 돌지.”
“사내놈들이란 지가 이러고 앉으면 게슴츠레 해져서 뭔 짓을 하라도 할 기세더랑께요.”
“그래 그래 됐어.”
“설마 소문처럼 이방에서 사내란 사내, 반반한 놈들을 다 잡아 먹었겠습니까? 애기 때 지선 선상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았소? 계집은 비싸게 놀아야 한다고.”
사이를 두었다가 한마디 더했다.
“이 도내기,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성님.”
“한강에 쌀밥 열가마를 버렸다는 얘기는 뭔가?”
“설마 지가 그랬겠소, 모래에 횟가루 섞어 그런 것이요.”
나합도 저간의 소문을 알고 있던지 대뜸 그리 대답했다.
정작 쌀은 미리 서강과 마포의 깍쟁이 패들에게 나눠 주었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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