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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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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노트북> 내가,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는 발렌타인 데이

안지영 기자

2월 14일은 무슨 날일까요? 하고 물어본다면 열 명 중 아홉은 발렌타인 데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메리크리스 마스, 해피뉴이어 라는 인사의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나의 참새 방앗간 중 하나인 샾라잍  마켓에는 Be My Valentine이 새겨진 풍선이며 인형이며 쵸컬릿, 화분 등이 시선을 강탈 하고 있었다.

초컬릿을 품은 인형들의 감촉은 또 얼마나 따스하고 보드랍던지! 그러나 와이프만 어항 안에 넣어 두고 낭만은 어항 밖 어딘가에 둔 것 같은 허즈는 그저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아주 잠시 영화 ‘토이 스토리’를 떠올린다. 나에게 간택 받을 수도 있었던 선반 위의  발렌타인 인형들과 그곳의 다른 인형들이 밤에 우르르 찾아와  나의 허즈를 물어뜯는 상상을 해본다. 속도 조금 시원하고 웃기기도 하다.
부부나 연식이 된 연인들 에겐 오래 전 오늘에 대한 어떤 기억이 있을까.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기억하며 오늘을 보낼까,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오늘은 얼마나 설레이는 날일까.

발렌타인데이 유래는 3세기(269년)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의 클로디우스 황제는 로마군인, 특히 사병들에 대해 금혼령을 내렸다.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면 아내와 자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군기가 빠지고 탈영할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인테람나의 주교였던  발렌티노 성인은  병사들의 혼인 성사를 비밀리에 집전하다가 발각 돼, 곤봉으로 맞고 돌팔매를 당한 후 효수 됐다고 전해진다.  축일이자 그의 시신이 매장된 날이 바로  2월 14일이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이날을 축일로 정해 해마다 사랑하는 이들의 날로 기념해왔던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

그런데  대체 발렌타인 데이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렛을 주며 고백하는 날이라고 누가 그랬을까. 그러한 공식(?)이 형성 된데에는 한국의 경우, 일본의 영향이 컸다.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본은 당시 발렌타인데이에도 큰 관심을 보였단다. 그러던 중 1936년 ‘고베 모로조프제과’ 라는 회사에서 ‘고마운 분들에게 초콜릿을 전하자’라는 캠페인을 펼치며 2월 14일이 되면 초콜릿을 전하는 문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전운에 휩싸이기 시작한 시대로 그 캠페인은 그다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전후 1950년대부터 가부장 사회인 일본에도 우먼리브 운동과 같은 페미니즘 활동이 크게 번지면서 여성도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남자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를 간파한 ‘모리나가’와 같은 일본 대기업들은 판촉 행사에 나서게 돼 이후 발렌타인데이에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문화가 한국에도 전해지게 됐단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제과 업체들은 한발 더 나가 언젠가 부터 발렌타인 데이 한달 뒤인 3월 14일을 화이트 데이라 해서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을 주는 날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4월 14일은 블랙데이라 해서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 데이 때 아무것도 못 받은 남녀들이 모여서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는데 이 날들은 누가 만들었는지 출처가 불분명하다.

글을 쓰다보니 발렌타인 데이를 앞두고 친구들과 함께 초코렛을 고르고 정성껏 포장 하던 기자의 중고등 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나의 초코렛을 받아 먹은(?)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기자의 남편 처럼 마트만 가면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아저씨들이 되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2월 14일 저녁, 허쉬초코렛 한 봉지와 생기 없는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집에오는 생존남이 되있을 지도 모를일 ㅋㅋ.

 발렌타인 데이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

그런데 2월 14일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기도 한데 그들에 의하면 일본이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상술로 초코렛을 주고 받는 날로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위와 같은 주장은 2000년대 들어 인터넷 댓글 문화가 확산되면서 제기된 내용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생일, 사망일, 의거일 등은 그다지 기리지 않으면서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만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려는 행동이다’ 며 밸런타인 데이를 묵살하고자 하는 작위적 행동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얼마전 기자가 속해 있는 어느 단체 카톡방에도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가 아니라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 이라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옥중 아들에게 보낸 비장한 내용의 편지와 함께 ‘앞으로 2월 14일에는 초코렛은 사지도 주지도 말자’ 는 마무리의 글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에 웃으면서 초코렛을 나눠먹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는 글쓴이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극단적이라는 느낌은 나만의 것인가. 초코렛을 주면서 안중근 기념관으로 데이트를 가도 될 것이고, 또는 ‘오늘이 그런데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이래’ 라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리마인드 해주면 될 일이고, 아니면 기자의 남편 안동일 작가가 쓴 <고독한 장군 안중근>이라는 책과 함께 초콜렛을 주고 받아도 될 것을… 누군가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의 날일 수도 있는 오늘을 저렇게 극단으로 말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이마에 바르는 ‘재의 수요일’

기자는 이 글을 올리고 성당에 가려고 한다. 오늘은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첫 날인 Ash Wednesday, 재의 수요일이기 때문이다.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해 이마에 바르는 예식에 참여 하기 위해서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창세기 3,19)라는 말을 신부님으로 부터 들으며 내 이마에 재가 발려질 것 이다. 누군가에겐 고백으로 설레이는 날, 누군가에겐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 그리고 누군가 에겐 뜻깊은 부활의 40일 전인, 사순시기의 첫날로 기억될 오늘, 이 발렌타인데이가 어떠한 결이 됐든 모쪼록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사랑’의 날이 되기를 바래본다.  Be My Valentine !

재의 수요일은 매해 날짜가 달라지는데 (사순 제 1주일 직전 수요일),  올해는 우연히도 발렌타인 데이와 겹쳤다.  (2/14 지영)

2022년 Ash Wednesday의 기자의 모습. 당시 cnn 인기 앵커였던 크리스 쿠오모 처럼 하루종일 저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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