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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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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49회

안 동일 지음   

 흥선군의 경복궁

“다른 이들 한테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인정하오. 정권을 잡겠다는 이유가 어찌 정궁 재건 만이겠소. 정궁재건이야말로 특정 일문의 전횡과 세도를 막고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상징적인 일이기 때문 아니겠소?”
“그래도 소인은 백성들이 감당해야 할 신역이…”
“아까 어느 대감이 말씀하셨지 않소? 대역사 큰 건축일은 신심에서 이루어진다고…”
“어떤 신심이냐가 문제겠지요.”
“나라의 기강이 잡히면 자연 정궁재건의 얘기가 나오게 돼 있소, 백성들 사이에서 나라와 조정에 대한 충심이 일게 된단 말이오. 그리고 장김 일문이 근 백년간 노획한 재물을 환수 받으면 너끈히 재원조달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낳지도 않은 아이 이름 가지고 싸울 필요 없었고 우물에서 숭늉 달랠 일 없는 터에 금원도 그 얘기는 그쯤에서 접기로 했다. 잘한 일이었다. 후일 알게 된 일이지만 흥선의 정궁에 대한 집념은 대단한 것이었다. 수년전 동지사로 연경에 갔다가 자금성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흥선에게 정궁 재건은 필생과업이 되었던 모양이다.
“허허 우리 고운 삼호당, 표정 좀 푸시오, 예쁜 어깨에 궁궐 돌짐 지우지는 않을 테니 말이오.”그러면서 흥선군은 소리내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한양 도성쪽으로 찌렁찌렁 울렸다.
아무튼 흥선군은 금원의 추측대로 발톱을 숨긴 사자였다. 흥선군의 호탕한 웃음은 장김 저들과 적당히 어울리면서 저들의 긴장감을 늦춰주고 있는, 속에 칼을 감추고 있는 소리장도였다.

  19. 녹번정 시대

 

금원은 변광운 대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스님들과 노사들이 적극 찬동한 일이다. 어쩌면 태을 스님과는 미리 얘기가 됐었는지도 몰랐다. 결사의 숙원이었던 상층부 양반네와 나라 안 중인 최고 실력자들과 연계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한양 도성이 지척인 곳에 근거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연락처 하나를 확보하는 유익한 일이었다. 그런 점 에서 자하문 밖 무악재 넘어 녹번리는 제격인 지역이었다.
녹번이라는 지명에 제폭구민의 훈훈한 미담이 담겨있는 것도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조선 초 청렴한 조정의 관리들이 설・추석 등 명절이 다가오면 이곳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라에서 받은 祿(녹)의 일부를 이 고개에다 남몰래 슬며시 놓아두었는데, 이를 당시 사람들이 관리가 녹을 버린 것이라 생각하고 이 고개 이름을 ‘녹을 버린 고개’라 하여 ‘녹버리고개’라 불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담 아닌가.
또 이 고개 부근에서 自然銅(자연동)의 일종으로 푸른빛을 띠는 광물질인 山骨(산골)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산골은 뼈와 상처에 좋다고 알려져 있었다.
금원은 자신의 새 거처를 녹번정이라 명명했다.
녹번고개가 시작 되는 초입 언덕에 소 바위가 있었는데 그 주변 높다란 평지에 우뚝 서 있는 아담한 기와집이 바로 녹번정이었다. 변광운 대감은 초막이라고 했지만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뒤뜰 정자를 지닌 제대로 격식을 갖춘 기와집이었다. 정자와 그리고 별채가 초가로 되어 있는 것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관악산 연주암에 있던 동무 진서를 불렀고 예전 용산 시절 함께 했던 원주댁이 돌아왔다.
장쇠며 몇몇 일손은 변 대감이 구해 줬다.
변대감이야 말로 진정한 부자였다. 그에 의하면 대대로 이어진 그 집안의 부의 비결은 간단하다. 다른 이에게 더 많이 줄 방법을 찾으면 된단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단다. 더 많이 행동하고 더 많이 베풀고 더 큰 존재가 되면 된단다. 그러면 더 많이 벌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변대감의 배려는 녹번정 뿐이 아니었다. 금원을 冊儈(책쾌)로 만들어 주었다. 역관들이 청국이며 왜 그리고 간혹 구랍파에서 들여오는 책들을 거간하는 일을 하게 했던 것이다. 이 또한 태을당과 진작부터 얘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마침 인사동에 오경석의 집안이 소유하고 있는 점방이 비어있어 이를 빌어 책방도 냈다. 그 이름도 녹번 서국으로 명명했다. 책방에는 글과 서화에 재주 있는 조희룡 어른의 조카 두 명을 상근하게 했기에 금원은 가끔씩 나가 보면 됐다. 책 수입상인 역관들과의 거래는 거의 다 녹번정에서 이뤄 졌다. 시절이 하수상 했어도 조선 사람 특히 얼치기 유자들의 책 과시욕은 여전했기에 장사는 처음부터 번창했다.
녹번정은 이내 보안재 시회 계원들 뿐 아니라 중인 문사인 위항시인들이며 화공들의 집합처가 됐다. 조희룡 영감과 유최진 영감이 충실히 중간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장안의 재주 있는 인사들이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녹번정을 찾았다.
저녁이면 위항인들의 시회가 열렸고 고담준론과 격론이 오갔다. 위치가 절묘했기에 엿 보는이, 엿듯는 이 없어 어떤 말이라도 이곳에서는 할 수 있었다.
관할 관청이 고양군이었는데 고양군수는 변대감과 아주 친한 사이였다. 그는 가끔 순라꾼을 보내 도와줄 일 없는가 하고 묻곤 했다.

노인 대감들 특히 변대감은 시회를 공학(共學) 이라고 까지 부르면서 참으로 열심이었다.
그동안 청국 학자 위원의 해국도지를 교재로 한 공부와 허균에 대한 공부와 토론이 있었다. 말 그대로 함께하는 공부였다.
해국도지야 널리 알려진 책이고 그 내용도 서양 제국들의 사정을 알리는 지재(知財)였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허균을 공부 한다는 것은 자칫 큰 경을 칠 일이기도 했다. 이상향을 꿈꾼 홍길동의 작가 허균 이다. 광해주 시절 역모를 꾀했다 해서 끔찍한 능지처사를 당한 그. 왠만한 이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신원 됐건만 왕조와 기득권 사대부 집단에게 밉보여도 단단히 밉보인 허균 만은 감감소식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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