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46 F
New York
September 20, 2024
hinykorea
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48회

안 동일 지음

 관악산과 흥선군의 경복궁

등산객인지 기도객인지 사람들 몇이 앉아 있다가 나이 든 양반님네들이 나타나자 바삐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섰다.
“대단하이 이렇게 높은 곳에 이런 큰 절을 다 세우고…”“다 부처님의 은혜와 신심이 하는 일 아니겠소.”“영감도 그런 말 쓰시오?”“나는 이런 건축물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고생을 했을까 걱정이 돼 안쓰럽습디다.”그때 금원의 동무 진서가 극락전까지 나왔다. 금원이 그녀를 일행에게 소개를 했다.
“이곳에서 공양주 노릇을 하고 있는 제 동무 진서입니다,”
진서도 금원과 비슷한 풍의 개량 승복을 입고 있었다.
“허허 조선의 고운 아녀자들은 모두 불문에 들어 있네 그려.”
진서의 합장 인사에 어느 대감이 응대하면서 던진 말이다.
그녀도 금원과 비슷한 처지였다. 삼호정 시회도 같이 했던 시기(詩妓) 출신 양반네 후실이었는데 그도 서방이 세상을 떠났다. 진서는 남쪽 전라도 나주가 고향이었다.
“주지스님 곧 나오실 겝니다.”
“우리가 찾아가야지, 굳이 주지가 나올 것 까지야…”
“공양들 하셔야지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몇 분이 오실지 몰라서…”

진서가 저만큼 갔을 때 흥선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연주대까지 갔다 오겠습니다. 영감은 안 가시려오?”
옆의 변대감에게 물었다.
“그렇지, 가야죠, 여기까지 왔는데.”
변광운이 눈짓으로 금원도 함께 가자고 권한다. 흥선군도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금원은 연주대의 탁트인 절경을 보고 싶었기에 서슴없이 일어섰다.
연주암에서 연주대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기는 했어도 옆에 지탱할 바위며 나무, 지형물이 많아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맞배지붕 양식의 작은 암자가 절벽 꼭대기에 세워져 있었다. 매우 특이한 형태다. 연주대였다. 연주대를 옆으로 조금 더 돌계단을 오르면 정상이다.
마침내 관악산 꼭대기 너른바위에 올랐다.
정면으로 사당리 노량진을 지나 한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좋습니다. 가슴이 탁 트입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날이 쾌청했기에 한양의 성과 궁궐이 밥상을 대하는 것 같이 분명히 보인다. 삼각산 바로 아래 소나무와 전나무가 고리처럼 둘러서 빽빽하게 들어 선 곳이 경복궁 대궐터 였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복원되지 못하고 나무만이 대궐 안에 심어져 있었다. 전나무와 소나무의 구별은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법인데 그만큼 경복궁터가 빤히 자세히 보였다.

흥선군은 그곳을 향해 한참이나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전에 없이 진지한 모습이다.
“정궁이 바로서야 나라가 제대로 서는 법이거늘…”
고개를 든 흥선군이 혼잣말처럼 한마디 했다.
“그렇게 정궁을 중건 하고 싶으시오? 대감”
변광운이 아직 형형한 눈을 감추지 않고 있는 흥선군에게 물었다.
“기필코.”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결기가 묻어났다.
“이보오 삼호당, 흥선군의 평생 서원이 저 경복궁 중건이랍니다.”
광운이 금원쪽으로 고개를 돌려 무심한 듯 들려준다.
“그래요? 보통일은 아니겠습니다.” 금원은 대뜸 백성들의 신역을 생각 했다. 청국도 서태후가 궁궐을 새로 짖다 저렇게 나라가 결단 났다는 사실이 보안재 모임에서 몇 번이나 거론된 바 있었다. 그 말이 나왔던 그 시회에 흥선군은 없었다. 하지만 금원은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았다. 어차피 한 종친의 바람인 바에야…
“그래서 대감은 자신이 정권을 잡아야겠다고 생각 한다는 게요.”

광운의 이 말에 흥선군의 표정이 잠시 멈칫했다. 변광운은 작심을 한 모양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삼호당은 추사 스승님이 인정하신 우리 동지입니다. 대감 굳이, 감출 필요 없습니다.”
흥선은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
정권을 잡겠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요원한 일이다.
왕족은 정치 참여가 법으로 금지돼 있지 않은가. 더구나 왕을 새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벼슬을 차지해 권력을 잡겠다는 얘기인데 안동 김문이 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한 어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삼호당이 하고 있다는 불교의 결사도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계가 아니요? 장김의 전횡을 혁파하자 이것 아니겠소? 전국 방방 골골의 이렇다 할 스님들과 교도들, 그리고 창우패와 상두패들이 다 삼호당과 그 스승 스님의 계에 들어 있지 않소?”
흥선군 들으라는 듯 과장해서 확인해 왔다. 광운은 을해결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 없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하게 부정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힘을 모아야 할 때 입니다.”

변광운은 흥선이 금원의 결사를 잠재력 막강한 결사로 알았으면 하는 모양이다. “삼호당도 지금이 힘을 모아야 할 적기라고 생각하시오?”
흥선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왔다.
“아직 저야 계의 말석에 있는지라…어르신들의 판단에 따르고 있습니다.”
“어째 겸양의 말씀 같소.”
잠시 사이를 두었다 흥선이 금원을 빤히 쳐다보며 물어왔다.
“뭐 하실 말씀 있으시오?”
금원의 표정을 읽은 모양이다.
“말씀을 하시니까 여쭙는데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정권을 잡아야 겠다는 말씀에 적극 찬동하기에는 소인의 궁량으론 어렵습니다.”

“그렇소?”  흥선이 금원을 쏘아보는 눈이 다시 매서워 졌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42회

안동일 기자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30회

안동일 기자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82회

안동일 기자